(10)세정의 창을 통해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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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30세에 대구세무서 총무과장으로 국세청에 들어간 후 지금까지 29년째 세금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습니다. 27년은 공직에 있었고, 최근 2년은 세무사로 근무 중입니다. 보기에 따라선 전반부 27년과 후반부 2년은 일의 성격이 180도 다르다 할 수도 있겠지만, 본질에는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회를 끝으로 글쓰기를 마무리하며 칼럼 제목처럼 그동안 세정의 창을 통해 경험한 세상과 세상살이를 말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사적으로 겪은 일과 그 단상이어서 글쓰기를 주저도 했지만, 같은 시대를 함께한 사람들의 경험과 별 차이가 없어 공감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용기 내 써보기로 했습니다.

다양한 사람과 사건

입사 초기에 세무서에서 과장으로 일할 때였습니다. 세무조사를 받던 납세자 한 분이 늘 소형차를 타고 세무서에 왔습니다. 성실하고 바른 사람처럼 보였지만 담당 팀장은 일부러 소형차를 타고 오는 것이니 그분이 하는 말을 모두 믿지는 말라고 했습니다. 조사가 끝난 후 우연히 그분을 다시 만났는데, 당시 귀한 외제 차를 타고 있었습니다. 속은 듯한 마음도 들었고, 그 뒤부터는 외관을 보고 납세자를 평가하는 것을 조심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면서 소형차를 타고 세무조사를 받으러 온 그분의 행태도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당시 풍요의 상징이었던 외제 차를 타고 세무조사를 받으러 오는 용기가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겁니다. 제가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속은 듯한 마음도 들었던 것이겠지요. 다양한 일을 겪고 나서야 삶의 지혜도 쌓인다는 것을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조금이나마 알게 됐습니다.

1999년은 국제통화기금(IMF) 위기에서 지나가던 시기였습니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국의 팀장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석유류 거래에서 가짜로 영수증(세금계산서)을 주고받는 사례가 많아 유통과정을 조사하게 됐습니다. 혐의가 있는 수백명의 중간상인, 주유소 주인을 일일이 불러 확인했습니다. 그때 만났던 한 중년의 사업자를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긴장된 표정으로 사무실에 들어온 그분은 변명만을 늘어놓던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실물 없이 영수증만 받은 사실을 금방 인정했습니다. 그리곤 눈물을 흘리며 IMF 위기로 퇴사한 후 어렵게 주위에서 돈을 빌려 주유소를 열었는데 지금 세금을 맞으면 너무 힘들어진다며 선처를 호소했습니다. 그 당시 모두가 정말로 힘든 상황이었고, 많은 사람이 가짜영수증을 주고받던 시절이어서 혹시 선처할 방법은 없는지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도와줄 방법은 없었습니다.

마음은 아팠지만, 법대로 처리했습니다. 한참 뒤 전자세금계산서를 주고받는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가짜영수증을 주고받는 일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적절한 시스템을 만드는 일은 사람들의 행태를 바꾸는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전자세금계산서는 사업자와 세무공무원 모두의 고통과 번뇌를 미리 제거해주는 좋은 시스템의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당시에 전자세금계산서 시스템이 있었다면 그분은 그런 일탈을 하지 않았겠지요. 지금 그분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해집니다.

지방 중소도시에서 세무서장으로 일할 때였습니다. 하루는 사무실 밖에서 고성이 들렸습니다. 알아보니 민원인이 서장을 만나게 해달라며 소란을 피운다는 것이었습니다. 담당 직원은 그 사람이 자기가 잘못하고도 몇 년째 저런다며 괜스레 저한테 미안해했습니다. 어떤 분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방으로 모셨습니다. 70대 중반으로 보이는 민원인을 자리에 앉히고 찬찬히 직원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대화 중에 그분은 수시로 저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돌발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한동안 우리에게 욕을 하고 고성을 지른 후에 경찰서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지금도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담당 직원의 말에 제가 공감하는 듯해서 그러지 않았나 추측해봅니다. 출동한 경찰관도 주기적으로 있던 일이어서 그랬는지, 잠시 보고는 그냥 돌아갔습니다. 지금도 갑자기 봉변을 당했던 그때 상황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소란을 피울 때 그 사람의 눈빛은 광인의 것과 같았습니다. 그 후에도 유사한 민원을 몇 번 더 겪었습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민원인에게 당하는 봉변의 후유증은 만만치 않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민원 담당 직원은 이런 일을 상시적으로 겪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본청 근로장려금 담당 국장으로 있을 때의 일들도 생각납니다. 내부의 직원 전자게시판에 민원을 제기하는 근로장려금 수혜자에 대한 불만이 폭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수혜자는 약 600만명이고, 일선의 담당 직원은 약 4000명이었습니다. 수혜자 1%만 민원을 제기해도 직원 한 사람당 15명을 상대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 15명 중 몇 사람은 조금 이상한 사람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공사 간 모든 분야의 민원 담당자들에 대한 보다 세심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2014년 12월 22일 국세청 세종청사 현판 제막식 모습 / 경향신문 자료사진

지난 2014년 12월 22일 국세청 세종청사 현판 제막식 모습 / 경향신문 자료사진

복잡한 세상사, 법보다 중요한 것

마지막으로 입사 초기에 겪은 일 하나만 더 말씀드리고 글을 맺고자 합니다. 아내와 사별 후 오래 혼자 사시다가 할머니를 새로 맞은 할아버지가 계셨습니다. 할머니와 살림을 차리느라 가지고 있던 땅을 팔았는데 세금을 내지 않았습니다. 자식들은 자주 찾아뵙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땅을 판 후에 시간이 좀 흘러서인지 국세청 전산망에 할아버지 재산은 하나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본인이 안 내면 받을 방법이 없었지만 설득해 결국 대부분을 받아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할아버지와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분이 낸 세금은 노후자금으로 가지고 있던 마지막 돈이었습니다. 직업상 세금을 받아내야 했지만, 안쓰러운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오래전 한 권력기관의 장이었던 분이 퇴임하면서 가진 인터뷰에서 한 말이 생각납니다. 이제 중간 간부로 일한다면 정말로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고백이었습니다. 법이 중요하지만, 법은 세상을 기계처럼 규율하는 규범일 뿐입니다. 복잡하게 얽힌 세상사를 법으로만 재단할 수는 없습니다. 연륜과 상식, 관용이 더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했습니다. 서민의 삶과 관련해서는 더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현직에 있을 때 그렇게 일하지 못해 아쉽고 미안합니다. 후배들은 그렇게 일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읽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호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함께하는 세상(稅上) 이야기’를 사랑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조정목 세무사·세무법인 광화문 대표>

조정목의 함께하는 세상(稅上) 이야기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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