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텐도는 왜 강할까 40년 전 사건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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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의 비디오게임 마리오 시리즈의 주인공인 마리오(오른쪽)와 루이지 / Photo by Ravi Palwe on Unsplash

닌텐도의 비디오게임 마리오 시리즈의 주인공인 마리오(오른쪽)와 루이지 / Photo by Ravi Palwe on Unsplash

가정용 8비트 게임기의 원조인 닌텐도 패미컴이 40주년을 맞이했다. 일본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기업들도 이를 축하하는 컬래버를 기획하는 등 그 의미는 각별한 듯하다. 닌텐도는 젤다의 전설 신작이 대성공하는 등 전 세계에서 여전히 가장 사랑받는 게임회사로 남아 있다.

닌텐도가 지금의 게임회사가 된 결정적 계기로 ‘동키콩’을 꼽는다. 동네마다 오락실이 있던 시절을 기억한다면 우리 역시 잊을 수 없는 이름이다. 위기는 곧 기회임을 알려주는 일화가 여기서 시작한다.

당시 닌텐도는 소프트웨어를 짜는 기술력이 거의 없어 외주 회사에 의존하고 있었다. 오락실용 게임기도 만들고는 있었는데, 이 또한 외주를 줬다. 브라운관과 조이스틱이 달린 거대한 캐비닛에 담긴 타이토(Taito)의 스페이스 인베이더나 남코(Namco)의 갤럭시안이 세계적으로 잘 나가는 모습에 장난감 회사인 닌텐도도 급히 뭐라도 만들어야 했던 차였다. 급히 미국지사를 차리고, 야심 차게 예산을 탈탈 털어 오락실용 슈팅 게임기 ‘레이더 스코프’를 3000대 주문했다.

당시 닌텐도는 개발 능력이 없어 이케가미통신기(池上通信機)라는 회사에 개발 및 기판 제작을 맡기고, 자사의 캐비닛을 씌워 유통하고 있었다. 하지만 배편으로 4개월 만에 미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슈팅 게임의 유행은 끝. 2000대의 불량재고라니, 당시로선 거액이었다.

이 2000대의 기판과 캐비닛을 재활용하지 않으면 지사는 곧 망할 상황이었다. 한 젊은이에게 파격적인 기회가 찾아왔다. 그 캐비닛을 디자인하고 홍보물을 만들던 디자이너 미야모토 시게루. 그는 주인공이 점프하는 만화 같은 게임을 기획했다. 이 게임은 원래 ‘뽀빠이’로 기획됐지만, 라이선스 문제로 급히 브루터스와 뽀빠이의 대역을 찾아야 했다. 스스로 그려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바로 고릴라와 멜빵맨 콧수염.

경험이 부족한 디자이너를 이런 중요한 프로젝트에 투입하다니 위험한 선택처럼 보일 수 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2000대 재고에 벌벌 떨던 미국 지사는 6만 대를 팔아대며 자리를 잡았다. 이름도 없던 멜빵 콧수염은 그후 이름도 가지게 되는데, 집세를 못 내 쩔쩔매던 닌텐도 아메리카에 줄곧 찾아오던 집주인 이름이 바로 마리오였다.

운도 따랐다. 킹콩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소송을 걸어온 것. 세 번이나 승소하면서 동키콩에는 더 없는 홍보 효과가 되고 말았다. 지금은 유명해진 ‘커비’ 시리즈의 그 이름은 당시 닌텐도를 돕던 변호사 존 커비로부터 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닌텐도는 법무에 강한 회사로 알려져 있다. 각종 소송에 휩싸인 덕이다. 미야모토 시게루가 기획했어도 개발은 이케가미통신기에 맡겼는데, 대박이 난 후 보상이 충분치 않았다며 소송을 걸어온다. 거의 10년을 끈 소송은 닌텐도가 동키콩 프로그램 저작권을 취득하지 않았고, 심지어 후속작 동키콩주니어는 이케가미의 동키콩을 리버스 엔지니어링해서 만들기까지 한 것으로 드러나고, 결국 비공개로 합의하게 된다. 닌텐도가 기술 내재화와 오리지널 캐릭터를 고집하는 것도 이러한 역사 때문이다. 젊은이를 중용하면 위기는 기회가 된다는 것도 이때 깨달은 일일 터이다.

<김국현 IT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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