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아 카루아나는 여러 편의 할리우드 TV 시리즈에 출연한 촉망받는 배우다. 하지만 그는 최근 할리우드 배우 노조 파업(SAG-Aftra)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촬영 현장에서 당한 황당한 경험이 그를 파업으로 이끌었다. 제작사 측은 보조 배우로 화면에 삽입하기 위해 그의 전신을 스캔하는 작업을 두 차례 강제했다.
그가 연기로 지불받은 일당은 단 하루치. 나머지 촬영분은 스캔받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AI가 생산한 이미지로 대체한다는 계약이었다. 심지어 그 이미지는 제작사가 소유하고 동의나 보상 없이 영구적으로 활용한다는 독소 조항도 포함돼 있었다. 웬만한 TV 시리즈의 주연으로 캐스팅되지 않는다면 그가 카메라 앞에 설 기회는 서서히 잠식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점차 규모가 커지고 있는 할리우드 배우 파업은 기계와 인간의 관계가 예상을 벗어나고 있다는 상징적인 신호다. 인간을 위하는 기계가 더 이상 주류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메시지이기도 해서다. 튜링 테스트 이래로 인간에 가까운 존재임을 입증하는 테스트는 기계에 강제됐다. 하지만 할리우드 파업이 시사하듯, 이제 기계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인간을 데이터 수집의 시험대에 올리고 데이터에 인간을 꿰맞추는 일이 점차 흔해지고 있다.
1999년 발명된 캡차(CAPTCHA)는 관계 전도의 전조였다. 웹사이트 계정이 자동으로 생성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 개발된 캡차는 처음부터 기계를 테스트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반대로 인간이 기계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기계가 제출한 질문에 답을 해야 했다. 공개 튜링 테스트라는 의미를 품고 있지만, 접근법은 완전히 달랐다. 캡차는 리캡차로 변주하면서 인간의 사물식별 노동을 데이터화하는 데 동원됐다.
얼마 전 영국 일간지 가디언 인터넷판은 영국 코번트리 지역에 있는 아마존 BHX4 물류창고 노동자의 파업 사례를 소개했다. 인터뷰에 응한 한 노동자는 “그들에게 우리는 인간이 아닌 로봇과도 같았다.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사소한 것들까지 갈아넣게 만든다는 걸 느꼈다”며 분노했다. 이들은 장시간 노동과 함께 작업 속도가 너무 빨라 일하는 중에 부상률이 높고, 감시도 심하다고 지적했다.
아마존의 생산성 모니터링 시스템은 기계가 요구하는 속도와 분량에 인간 노동자가 맞출 것을 강제했다. 험한 작업을 기계가 대체해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는 ‘인간주의적 기계 설계’와는 애초부터 거리가 멀었다. AI를 다루는 자본주의의 속성을 여실히 드러낸 사례다.
기계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인간을 시험하는 테스트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기계를 보조하기 위해 인간의 노동을 최적화하는 작업도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레아 카루아나의 사례처럼 기계 학습 최적화를 위해 인간을 정량화하는 흐름은 서서히 주류로 넘어가는 중이다. 인간을 보조하는 기계보다 기계를 보조하는 인간이 더 익숙한 사회로 진입하는 건 아닌지 자문해볼 시점이다. 결국 선택과 결정을 가르는 기준은 비용이고 돈이다.
<이성규 미디어스피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