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이 외로움을 어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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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픽사베이

초등학생 때 전학을 두 번이나 갔다. 친구를 사귈 만하면 학교를 옮겼다. 2학년 때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는 방과 후 집에 오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동네 친구들과 놀고 있을 때도 해 질 녘이면 ‘밥 먹으라’는 엄마들의 부름에 아이들이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가고, 놀이터엔 덩그러니 나 혼자 남았다. 내 외로움은 그렇게 시작됐다.

혼자 밥 먹는 사람이 늘고 있다. 1인 가구도 늘고 있다. 혼자 사는 사람만 외로운 게 아니다.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외로움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나이 든 사람만 외로운 게 아니다. 요즘 청년들은 더 외로워한다. 우리나라 20대 10명 중 6명이 외로움을 느낀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온라인으로 오프라인으로 빽빽하게 연결된 네트워크 과잉 시대에 살고 있는 요즘 사람들에게 외로움이라니.

외로움은 인간의 숙명이다. 어머니 자궁 안에서 완전한 충만감을 느끼던 태아는 탯줄이 끊어지며 그 완벽한 세상과 결별한다. 어머니로부터 분리되고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가 갖는 서러움. 살면서 문득 느끼는 외로움은 그곳을 그리워하고, 그곳으로 회귀하려는 원초적 욕구 같은 것 아닐까.

우리는 여러 경우에 외로움을 느낀다. 누구도 내 마음을 몰라 줄 때, 나를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사람이 없을 때 느끼는 소외감도 외로움이다. 나를 이해해주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아니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으면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은 걸 보면 그렇다.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고립감도 외로움을 불러온다. 인간은 타인과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불안한 존재로 진화해 왔다. 주변 사람에게 배제되고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으면 위태로움을 느낀다. 모두가 나를 외면하고 주위에 아무도 없다고 느낄 때 외로워한다.

외로움은 무언가 비어 있는 허전한 느낌이기도 하다. 결핍이 있거나, 자신이 기대하는 삶의 조건과 실제 생활과의 괴리가 있을 때 우리는 외롭다. 외로움은 타인과의 비교에서도 온다. 다른 사람에 비해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무엇을 빼앗긴 듯한 박탈감이 몰려올 때 우리는 쓸쓸하다.

외로움은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 외로움이 깊어지면 불안과 무기력에 빠지고 부정적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더 우울해지는 악순환에 빠진다. 이는 급기야 우울증을 불러오고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을 높인다. 신체적으로도 면역력 저하와 함께 각종 질병에 걸릴 확률이 올라간다. 외로움을 심하게 느끼면 담배 15개비를 피는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조사 결과가 있을 정도다. 뿐만 아니라 기억력과 인지 기능 저하로 창의력, 의사결정 능력을 떨어트리고 치매 발병 위험을 키운다.

이처럼 많은 문제를 야기하는 외로움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외로운 이유와 원인이 다양한 만큼 외로움을 떨치는 방법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첫째, 외로움을 누구나 겪어야 하는 감정으로 받아들이고, 끝까지 함께할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는 마음으로 견딘다. 나는 방송하러 라디오 부스에 들어갈 때마다 혼자라는 사실을 절감한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절대 고독의 순간. 나는 그때마다 내가 독립적이어서 외로운 것이라고 생각하며 버틴다.

둘째, 관계를 확충한다. 우리 뇌에는 배고픈 상태에서 음식을 봤을 때 활성화되는 영역이 있다. 그런데 이 부위는 외로움을 느낄 때 사람들이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 똑같이 활성화된다고 한다. 허기와 외로움, 식욕과 관계 욕구가 같은 맥락에 있는 셈이다. 배고프면 먹어야 하듯 외로우면 관계를 맺어야 한다.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사람을 사귀고 사람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때 주의할 것은 관계에 과도한 기대를 걸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남의 눈에 들기 위해 안간힘 쓰지 않고, 남의 눈 밖에 나는 걸 두려워하지 않을 때 외롭지 않을 수 있다. 관계에 전적으로 의지해서도 안 된다. 혼자 서는 게 먼저고, 관계는 다음이다. 혼자 있을 수 있어야 함께할 수 있고, 외롭지 않다.

셋째, 심취할 수 있는 대상을 찾는다. 나의 몰입 대상은 글쓰기다. 글 쓰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일이다. 오직 나의 집중력과 상상력만으로 써야 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글을 쓸 때 나는 외롭지 않다. 대통령 연설비서관 시절 원고 마감 하루 전날, 저녁을 먹고 들어오면 청와대 본관 2층에는 오로지 나 혼자였다. 천장은 왜 그리 높고 방은 얼마나 휑한지. 외로움이 두려움으로 몰려왔다. 무엇보다 다음 날 아침까지 원고를 쓸 수 있을지 불안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YTN 방송을 묵음으로 켜두고 글을 썼다. 글 쓰는 외로움으로 외로움을 물리쳤다.

독서 또한 개인적 고립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된다. 책의 저자, 등장인물과 만나고, 그들의 생각에 맞닿으며 삶과 마주하는 것이다. 이밖에도 그림 그리기, 사진 찍기, 등산, 낚시, 악기 다루기 등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이렇게 혼자 취미를 즐기다 보면, 자연스레 그런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넷째, 외로움을 고독으로 승화시킨다. 독일 신학자 폴 틸리히는 이런 말을 했다. “외로움은 혼자 있는 고통을 의미하지만, 고독은 혼자 있는 즐거움을 뜻한다.” 일리 있는 말이다. 고독은 홀로 있어도 편한 상태이고, 외로움은 홀로 있어 느끼는 불편한 감정이다.

우리는 때때로 고독해야 한다. 사람 사이에서 시달릴 때, 주위 사람들에게 지칠 때 고독은 안식처가 된다. 고독한 시간에 우리는 자신을 들여다보고 돌아본다. 자신과 대화하고 스스로에게 다정해진다. 뿐만 아니라 고독 없이 정신적 성장은 있을 수 없다. 경쟁심과 시기심, 우월감과 열등감에 파묻혀 사는 일상은 외롭지 않지만, 정신적으로 피폐하다. 고독할 때 영혼이 깃든다.

다섯째, 사회적으로 해결한다. 영국에는 외로움 담당 장관이 있다. 외로움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전염병으로 분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 1등이다. 앞으로 10년 후에는 혼자 사는 가구가 둘 이상 사는 가구보다 많아질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우리나라도 국가적 차원의 대처가 필요하다.

초등시절 느꼈던 외로움이 지금도 스산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억울하지 않다. 인간은 너나없이 외롭다.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사람도 외롭고, 곁에 있어도 보고 싶은 것처럼 사랑할수록 더 외롭다. 외로움은 모두의 숙명이다. 자신을 한 뼘 성장시키는 동력으로 활용해 보자.

<강원국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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