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지나온 다리를 불사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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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것같이 만나고, 다시 안 볼 것처럼 헤어진다. 틀렸다. 금세 헤어질 것처럼 만나고, 영원할 것같이 헤어지는 게 맞다. 거자필반이라 했다. 만났던 사람은 다시 만난다. 헤어진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

25년간 직장생활을 했다. 그사이 아홉 번 직장을 그만뒀다. 그때마다 사람들과 헤어졌다. 모든 만남은 헤어짐을 낳는다. 내 기억 속 헤어짐은 어머니와의 이별에서 시작됐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게 내가 열한 살 때였는데, 지금껏 그 이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만남은 짧았고 헤어짐은 길었다. 학창시절과 직장생활 동안 만났던 무수한 사람과도 그렇다. 노무현 대통령을 모실 때는 그 시간이 힘들어 임기 끝나는 날만을 고대했다. 마침내 그날이 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영영 헤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길면서 짧았던 그와의 5년은 나에겐 가장 소중한 추억이 됐다.

잘 헤어져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과 헤어지기 달포 전, 봉하마을을 찾았다. 대통령께서 만난 후 처음으로 “원국씨”라고 부르셨다. 그 전엔 ‘연설비서관’, ‘강 비서관’, ‘강원국씨’가 고작이었다. 그분에게 “원국씨”는 다정함의 표현이었다. 그날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분의 사람이 됐다.

많은 사람이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것같이 만나고, 다시 안 볼 것처럼 헤어진다. 틀렸다. 금세 헤어질 것처럼 만나고, 영원할 것같이 헤어지는 게 맞다. 모든 만남에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한다. 다른 직장으로 옮겨야 했을 때, 평소 관계가 좋지 않던 후배 직원이 선물을 내밀었다. 그 친구에게 나는 잔소리만 하던 꼰대 같은 존재였으니,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후련해할 법도 하건만, 그는 작은 선물로 아쉬움을 표했다. 이젠 내게 잘 보일 필요가 없는, 아니 보지 않아도 되는 관계가 됐으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을 텐데, 선물을 전하는 그 마음이 고마웠다. 그동안 서먹했던 마음의 앙금이 눈 녹듯 사라졌고, 이를 계기로 두고두고 연락하는 사이가 됐다. 헤어지는 순간이야말로 작은 행동, 말 한마디로 관계를 호전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일찍이 대문호 셰익스피어도 그러지 않았는가. “끝이 좋아야 다 좋다.”

헤어짐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도저히 아니다 싶으면 헤어지는 게 맞다. 더 나빠지기 전에, 미련 두지 말고 떠나야 한다. 직장에서 사사건건 부딪치는 상사를 만났다. 처음에는 고진감래란 말을 믿고 버텨봤다. 그런데 지나가는 터널이 아니었다. 갈수록 깊이 빠지는 수렁이었다. 도무지 참고 견뎌서 될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직장을 나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당시 나는 한겨울 바닷가를 서성이는 사람이었다. 싫어하는 사람에게 몸을 던져 그의 품에 안기지도, 그렇다고 그 해변을 떠나지도 못하는 신세였다. 떠나기로 결심했다. 지금 생각해도 잘한 결정이었다. 때로는 인내가 미덕은 아니다. 우유부단함일 뿐이다. 헤어질 용기가 필요하다.

“슬퍼하지 말아요. 다 끝난 거 알아요. 그러나 인생은 흘러가고 이 오래된 세상도 계속 돌아가고 있어요. 그냥 기뻐하기로 해요.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있으니. 불타는 다리를 바라볼 필요는 없어요.”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배우인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이 부른 ‘포 더 굿 타임’의 가사인데, 헤어지는 연인이 나누는 대화다. ‘불타는 다리’는 깨진 관계나 지난 추억을 말하는 듯하다.

살아오면서 지키려는 원칙 가운데 하나가 ‘건너온 다리는 불사르지 말자’는 것이다. 거자필반(去者必返)이라고 했다. 만났던 사람은 다시 만난다. 헤어진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 악연일수록 질기게 돌아온다. 세상사가 그렇다. 오죽하면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했겠는가. 어떤 이유로 헤어졌건 헤어지고 나서 욕하면 안 된다. 상대방의 잘못으로 헤어졌을수록 더욱 그렇다. 회사나 공직에서 새로운 상사가 왔을 때, 전임 상사를 깎아내리며 지금의 상사를 치켜세우기도 하고, 과거 잘못을 전 상사 탓으로 돌리며 헐뜯기도 한다. 그런 직원을 새로 부임한 상사는 어떻게 볼까. ‘내가 나가고 나면 내게도 저런 소리를 하겠구나. 믿을 수 없는 사람이군.’ 십중팔구 이렇게 생각한다. 이는 직장을 옮겼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전 직장을 깎아내리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누워서 침 뱉기다. 마치 새로운 애인을 만나면서 이전에 만났던 연인을 욕하는 것과 같다. 그런 사람을 보면 정나미 떨어지지 않던가.

‘건넌 다리는 불사르지 않는다’의 연장선상에 있는 게 ‘꺼진 불도 다시 보자’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회생하고 부활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정권이 바뀌면서, 혹은 새로운 사람이 기관장이나 최고경영자로 오면서 운이 다한 줄 알았던 사람이 화려하게 부활하거나, 인생 전반전에는 맥을 못 추다가 후반전이나 연장전 들어 승승장구하는 사람을 봤다. 참으로 인생은 알 수 없다. 누구나 인생에 불씨 하나씩은 갖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다 타버려 재가 된 것 같지만 어떤 계기에 불씨가 되살아 활활 타오를지 모른다.

이전부터 잘 알고 지내는 사람 가운데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이 있는가. 그래서 홀대하고 있는가. 자나 깨나 불조심해야 한다. 어느 불씨에 불이 붙을지 모른다. 나아가 주변을 살펴야 한다. 한직에 밀려나 있는 사람이나 찬밥 대우받는 사람에게 관심을 보여줘라. 전화 한 통화, 문자 메시지 한 줄 같은 작은 관심 표명이 나중에 어떤 기회를 가져다줄지 모른다.

인간관계는 물처럼 흘려보내지 말고 저장해야 한다. 돈을 저축하듯, 돈보다 더 귀한 사람과의 관계를 축적해야 한다. 관계는 세 종류다. 가족이나 직장동료와 같이 매일 만나는 관계, 누군가에게 소개받거나 모임에 나가서 새롭게 만나는 관계, 그리고 간혹 연락해서 밥 먹고 커피 마시는 관계가 있다. 모든 관계가 다 소중하지만, 이 세 번째 관계가 특히 중요하다. 일 때문에 만나기도, 친분을 유지하기 위해 만나기도 하는 이 관계에 헤어진 사람도 포함해서 관리해야 한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사람은 잠시 헤어진 사람이다. 가끔은 휴대전화 속 연락처를 들여다보고, 그런 사람을 떠올려 약속을 잡아 보자. 만남이 다소 부담스럽다면 직접 만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전화나 문자로 잊지 않고 있음을 알려만 줘도 괜찮다. 겪어본 사람은 안다. 아무런 용건 없이, 그저 생각나서 연락했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그와 소원했던 관계가 전화 한 통화로 시공을 뛰어넘어 다시 회복되는 그 기분 좋은 경험 말이다.

인생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다. 잘 만나는 것만큼 잘 헤어져야 한다. 현재 같이 있는 사람과의 관계만큼, 헤어진 사람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나와 헤어진 사람의 말 한마디에 내 이미지가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한다. 험난한 인생길에 동무가 되기도 하고, 적이 되기도 한다. 모든 인연을 자신의 성장 동력으로 삼아보자. 서로가 서로에게 머물고 연결하는 정거장 같은 존재가 되어준다면 우리 인생이 얼마나 풍요롭고 행복하겠는가.

<강원국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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