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싫은 사람과 더불어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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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든 사람과 잘 지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한 사람이라도 나를 싫어하면 견디기 힘들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어느 집단에나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그럴 때 나는 나와 원만한 관계에 있는 아흔아홉 명은 젖혀두고 나를 싫어하는 한 사람에 매달렸다. 어떻게든 그 한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만들 방도를 찾았다. 찾은 방법은 그때그때 상대에 따라 달랐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첫째, 한배 타기다. 증권회사에 다닐 적에 불편한 동료가 있었다.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아래인데, 입사는 1년 이른, 애매한 선배였다. 말을 트고 편하게 지내면 좋으련만 그가 원치 않았다. 서너 살도 아닌 한 살 터울이어서 더 어정쩡했고, 사사건건 신경전을 벌였다. 그러다 우연히 그와 내가 같은 주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후 관계가 돌변했다. 주식 가격이 등락할 때마다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함께하는 사이가 됐다. 그때 깨달았다. 불편한 관계일수록 이해득실을 함께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후 그는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로 이사까지 오게 됐고, 아파트 가격의 오르내림에 따라 기쁨과 슬픔도 같이하는, 그야말로 고락을 함께하는 동지가 됐다.

한배를 타는 가장 흔한 방법은 같이 일해 보는 것이다. 어떤 사람도 알고 보면 나쁘지 않다. 그 사람이 이해되기 때문이다. 평소의 그에 관한 선입견이나 소문, 평판 등으로 인해 왠지 싫었던 사람도, 같이 일해 보면 좋은 사람인 경우가 의외로 많다. 특히 힘든 일을 함께 해내거나 위기 극복의 경험을 공유하면 죽마고우 부럽지 않은 관계가 될 수 있다. 그러니 함께 일해 보기 전까지는 사람에 대한 판단을 유보해두는 게 맞을 듯싶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 쓸 수 있는 두 번째 방법은 공동의 적을 만드는 것이다. 회사에서 과장으로 승진하면서 다른 부서로 가게 됐다. 그런데 그 부서에 오래 근무한 만년 대리가 있었다. 직급은 내가 높았지만, 일솜씨는 그가 한 수 위였다. 기 싸움이 시작됐다. 그는 직원들을 부추겨 은근히 나를 따돌렸다. 보고는 면피하는 수준에서 건듯건듯하기 일쑤였고, ‘일은 과장인 네가 알아서 배우라’는 식으로 업무 파악에도 비협조적이었다. 밥도 사고, 술도 마셔봤지만 나를 대하는 태도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옆 부서 과장과 시비가 붙었다. 처음에는 조용히 옥신각신하더니 점차 언성이 높아지고 주먹다짐까지 오가는 싸움으로 번졌다. 나는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그의 편을 들었다. 급기야 옆 부서 과장과 내가 싸우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그날 이후 그와 나는 함께 전쟁을 치른 전우가 됐다. 주변에 사이가 안 좋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 함께 미워할 대상을 찾아보라. 그 대상을 물고 뜯고 씹으면서 둘은 어느덧 서로에게 겨누던 총구를 돌려 합동작전을 펼치는 끈끈한 결사체가 돼 있을 것이다.

셋째, 냉전 상태 유지하기다. 싸움이 일어날 소지를 차단하면서 냉랭한 가운데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싸우지도 않지만 굳이 화해무드를 시도하지도 않는다. 군대 한 번 다시 왔다 생각하고 긴장을 유지하면서 그 사람과의 불편한 관계를 견디는 것이다. 가끔 마주칠 때마다 서먹하고 기분이 싸악 나빠지긴 하지만, 나와 상관없는 사람으로 간주하고 관심 끊고 살면 된다. 형식적으로 지킬 건 지켜주되, 만나는 자리를 가급적 피하고, 말도 최소한으로만 섞으면서 말 그대로 데면데면 지내면 된다. 그러다 보면 부딪칠 일도 미워할 일도 없어진다. 데탕트에 대한 기대만 내려놓으면 이 방법도 나쁘지 않다.

넷째, 아슬아슬한 관계가 힘들다면 툭 터놓고 겨루는 것도 방법이다. 고름은 살이 되지 않는다. 곪은 데는 터트려야 한다. 한 번 터트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상처는 덧나게 마련이다. 서너 번은 터트려야 한다. 그러다 보면 터트린 데에 딱지가 내려앉는다. 미운 정이 들고 굳은살이 박인다. 참기 힘들거든, 속 썩이지 말고 털어놓아 보라. 술이 곁들여지면 좋고, 그렇지 않아도 된다. 왜 진즉 이렇게 하지 않았는지 스스로 의아해할 수 있다. 다만 선은 지키면서 말해야 한다. 거리낌 없이 털어놓다 보면 아예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널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다섯째, 관계보다 일을 우선하기다. 직급과 직책에 맞게 상사는 상사답게, 부하는 부하답게 행동하면서 맡은 역할에 충실한다. 관계에 신경 쓰는 조직일수록 일이 많지 않거나 열심히 일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이런 조직은 일의 성과나 사람에 대한 판단을 옳고 그름이나 맞고 틀림보다, 좋고 싫음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 배부른 감정 놀이에 빠져 있는 셈이다. 진짜 바빠 봐라. 그런 감정을 느낄 겨를이 있는지. 관계에서 느끼는 호불호 감정은 어쩌면 한가함의 부산물일지도 모른다.

여섯째, 수그리고 들어가거나 실력으로 제압하기다. 관계는 어차피 기 싸움이고, 선택지는 두 가지다. 그 하나는 ‘오메 기죽어’ 하면서 꼬리를 내리거나, ‘그래, 네 똥 굵다’, ‘졌다 졌어’ 하면서 스스로 모자람을 인정하고 ‘나 잡아 잡숴’ 하며 종속을 자처하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너는 내 상대가 안 된다는 걸 확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상대가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면 처음에는 시기하고 질투하다가, 더 나으면 두려움을 느끼고, 그보다 더 낫다고 판단하면 우러르게 된다. 종속과 지배 둘 가운데 어느 쪽이건 상하와 우열이 분명해지고 위계가 형성되면 관계는 무질서에서 질서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런 질서 안에서 갈등을 덜 느끼며 살 수 있다.

일곱째, 자기만의 피난처 갖기다. 안 맞는 사람과의 만남을 일종의 재난이라고 생각하고, 취미를 갖거나 동호회 모임에 나가는 방식으로, 마음을 다른 데로 돌려보라. 스페인어로 안식처를 ‘케렌시아’라고 하는데, 투우사와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소가 잠시 쉬는 곳을 뜻한다. 어디 소만 케렌시아가 필요하겠는가. 우리에게도 안식처가 필요하다. 관계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고, 나아가 관계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는 자기만의 케렌시아를 찾아보자.

끝으로, 이도 저도 아니라면 ‘언제나 끝은 있다’고 생각하자. 잠깐의 인연일 뿐 이 또한 지나간다. 모든 관계에는 종착점이 있다. 직장의 경우 인사발령이나 퇴직 등으로 언젠가는 헤어진다. 둘 중 하나가 먼저 죽을 수도 있다. 그렇게 미운 사람도 헤어지고 나면 궁금하고, 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군대에서 엄청 못살게 굴던 고참병을 전역 후 길에서 우연히 만났다. 어찌나 반갑던지. 이제는 괴롭힘을 당하지 않아도 되니 기쁘고, 괴롭히던 사람이 외려 당황해하며 수세에 몰리는 관계 역전이 짜릿했다. 관계가 힘든가. 힘들면 시간을 견뎌내자.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준다는 건 진리다.

<강원국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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