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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 소속 활동가들이 지난 4월 9일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낙태죄 폐지 2주년을 맞아 국가에 임신중지를 건강권으로 보장할 것을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 소속 활동가들이 지난 4월 9일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낙태죄 폐지 2주년을 맞아 국가에 임신중지를 건강권으로 보장할 것을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출산예정일을 20여 일 앞두고 있다. 짬 날 때마다 진통을 줄이는 호흡법 같은 것들을 찾아본다. 아기를 낳는 경험은 인류 공통의 것이지만 지극히 개인적이기도 해서, 모든 사람의 경험담이 다 다르다. 내 것은 어떻게 남을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두려움을 물리친다.

출산에 대한 어떤 이야기들은 참으로 경이롭다. 보통 궁극의 고통 혹은 통증을 ‘산고’ 혹은 ‘산통’에 비유하지 않나. 그 끝에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존재가 나오고, 새로운 만남이 시작된다는 게 여타의 고통과는 다른 점일 텐데, 어떤 이들은 이런 희망조차 없이 차가운 화장실 바닥 같은 데서 오롯이 혼자 고통을 감내한다.

돌이켜보면 임신과 출산이 기대와 희망의 단어가 된 것은 30대 중반에 들어선 최근 몇 년의 일일 뿐이다. 그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저 두 단어는 근심의 근원이자 공포의 대상이었다.

생각해보면 어질어질한 일이다. ‘낙태’가 고민이던 여성이 불과 몇 년 사이에 ‘난임’을 고민하게 됐다. 또래 여성과 주로 공유하는 고민이 임신을 어떻게 중지할지, 비용은 어떻게 마련할지, 상대와의 관계를 지속할지 같은 것이었다가, 어느 순간 하루빨리 난자를 냉동해야 할지, 아기를 낳는다는 ‘숙제’를 어떻게 해치울지, 막대한 시간과 돈을 들여 인공수정이며 시험관 시술 코스를 밟아야 하는지가 돼버렸다.

‘낙태죄’는 이미 2년 전에 폐지됐다. 안전한 임신중지는 아직 먼일이다. 지난 3월 ‘여성의날’(3월 8일)을 앞두고 경향신문이 게재한 ‘임신중지라는 건강권’ 기획기사에 그 현황이 잘 드러나 있다. 후속 입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임신중지 시술은 부르는 게 값이다. 의료 현장에서도 가이드라인이 없어 우왕좌왕한다. 세계보건기구가 지정한 필수의약품인 임신중지 약물은 합법적 경로로 구할 수조차 없다.

이런 상황에서 때를 놓쳐 임신을 중지하지 못한 이가 화장실에서 출산하고, 당황한 채로 아기를 버리거나 죽인다. 병원에 출산 기록이 있지만, 출생 등록이 안 된 영아가 8년간 6000여명에 달한다는 감사 결과가 나오자, 정치권은 빠르게 합심해 영아 유기·살해도 최대 사형에 처하도록 형법을 개정했다.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임신중지 선택지도 없고 아이를 낳아 기를 수도 없는 ‘이중 구속’의 상태에 여성을 방치한 채 범죄자만 양산하겠다는 태도와 의지가 읽힌다.

임신 막달이 되니 불룩 나온 배를 보고 모르는 사람들이 부쩍 말을 건다. 단골 멘트는 “요즘 같은 세상에 애국자시네” 같은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굳은 얼굴을 펴지 못한다. 아기를 버리는 ‘비정한 엄마’와 대척점에 선, 출산일을 기다리는 ‘희망에 찬 임신부’로서의 나의 존재는 무엇을 은폐하고 있는 걸까.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과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여성. 둘은 달라 보이지만 실은 한 사람이다. 시간과 환경의 간극이 존재할 뿐이다. 재생산이라는 미래지향적 일로 여성 스스로 건너가게끔 다리를 놓아야 한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저출생을 넘어설 수 없다. ‘안전한 임신중지’를 선택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이 첫 번째다.

<최미랑 뉴스레터팀 기자 r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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