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초기 머리가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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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5일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가 침수돼 소방당국이 실종자 구조를 위한 양수 작업을 하고 있다. / 조태형 기자

지난 7월 15일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가 침수돼 소방당국이 실종자 구조를 위한 양수 작업을 하고 있다. / 조태형 기자

농담 같지만, 병사 시절 내 소원은 ‘제초기 업그레이드’였다. 한여름날의 풀은 왜 이렇게 쑥쑥 자라는지, 종일 베어도 사흘이면 똑같은 일을 또 해야 했다. 비행단 면적은 서울 여의도의 3.5배였다. 시시포스가 돌을 굴리듯 만날 풀을 깎으니 ‘이 짓을 왜 하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은 종적을 감췄다. 그저 일이 수월하고 안전하기를 바랐다. 각반 사달라(다치면 어쩌냐), 신형 제초기 제공하라(일 좀 빨리하자). 중대 부사관에게 요청한 사항이다.

어느 날 부사관이 ‘신무기’를 들고 왔다. 무려 쇠날 제초기. 직전엔 다이슨 청소기 같은 봉 끝 분리형 헤드에 플라스틱 줄을 달아 돌렸다. 헤드가 분리형인 건 구심력에 감겨든 풀을 작업 중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플라스틱이라 그런지 몇 줌 잡초만 잘라도 금세 줄이 닳았다. “이거라면!” 한참 감탄하다 병장과 이병의 볼멘소리를 들었다. “이게 날아가면 진짜 크게 다칩니다.” 부사관은 다음번엔 꼭 보호장구를 구하겠다고 다짐했다. 일단 빨리 일 끝내는 게 너희들도 좋지 않냐. 나는 납득했다. ‘분리형’이 하필 그날 이름값 하기 전까진.

실종자 수색에 투입됐다가 사망한 고 채수근 상병 소식을 들으며 어째서인지 그때 기억이 났다. 단돈 1만원짜리 구명조끼조차 입히지 않아 생긴 참사였다. 군 당국에 수난 구조작업 시 안전장비 규정이 있니 없니 논란이란 게 우스웠다. 규정이 없어도 위험한 일이라면 장비를 주는 게 상식 아닌가. 왜 그랬을까. 짐작이 가능하다. 효율과 안전 사이에서 전자를 택한 것이다. ‘병사니까’라는 안일한 인식과 함께.

온라인에서는 한때 '일본 케이블TV 회사 해고 썰'이 화제였다. 어느날 센터장이 '요 몇년 기록을 살펴본 결과 서버 트러블 같은 건 일어난 적이 없더라'며 서버관리팀 전원을 해고했다는 이야기다. 해당 센터장은 팀 해고 직후 '인건비 절감' 공로를 인정받아 승진했지만, 정작 센터는 예비 서버까지 모두 터져 3개월이나 복구되지 않았다고 한다. 진위를 알 수 없는 '썰'인데도 공감하는 이가 많았다. 저마다 일터에서 비슷한 경험들을 했던 것이다.

기업이든 공직이든 리스크 관리 업무를 해본 사람은 안다. 리스크 관리자는 평시에 인정받기 어렵다. 최대 성과가 '아무 일 없음', 영업이나 투자 유치처럼 숫자로 표가 나는 업무와 달리 인센티브나 승진 경쟁 때 내세울 것이 없다. 외려 성공할수록 조직 내 위상이 위태롭기 쉽다. 별 일도 없는 마당에 '저 돈이면' 싶은 것이다. 잠깐만 검색해 봐도 ‘인력·예산이 없어 재난 예방·대응이 어려웠다’는 재난 담당 공무원의 한탄을 들을 수 있다. 이들의 가치는 늘 사고 이후에야 '재발견'된다. 예방의 역설이다.

다행히 제초기 머리가 날아간 곳은 사람 없는 풀밭이었다. “X될 뻔했다”며 웃고 지나갔지만, 방향이 약간만 틀어졌어도 결과는 달랐을 게다. 이후로도 모든 제초 인력이 안전장비를 찼다는 소문은 들어본 적이 없다. 보강 철근을 누락했다는 ‘순살 아파트’ 설계·시공·감리 관여자는, 청주 오송 지하차도 인근 임시제방 부실시공 관련자들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여기저기서 제초기 머리가 날아간다.

<조문희 정치부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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