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무슨 옷을 입고 일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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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폐기물 소각 노동자 허윤길씨가 작업복을 입고 조명 아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성동훈 기자

생활폐기물 소각 노동자 허윤길씨가 작업복을 입고 조명 아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성동훈 기자

손가락으로 휴대전화 화면을 쓱 쓸어내리자, 신발·장갑 등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매한 갖가지 물품의 목록이 좌르륵 떴다. 형틀 목수로 일하는 여성 김명순씨가 보여준 작업복 ‘내돈내산’ 기록이다. 건설현장에 여성 노동자가 조금씩 늘고 있지만, 대다수인 남성에 맞춰 설계된 옷과 안전장구가 지급되는 현실은 그대로다. 관심에서 비껴나 있는 이들은 제대로 된 작업복을 받지 못해 직접 고쳐 입거나 사비를 들여 따로 구매한다.

단순히 옷을 받지 못했다는 불평·불만이 아니다. 서울의료원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며 의료폐기물을 처리한 한 노동자는 2019년 6월 폐렴간균 감염이 직접적 원인이 돼 숨졌다. 근로복지공단은 “감염 방지를 위해 착용한 보호장비가 미흡했다”고 밝혔다. 유가족은 그가 목장갑만 낀 채 폐기물을 분류했다고 했다. 별것 아닌 듯 보이는 장갑, 마스크 하나에 생사가 갈리기도 한다.

두 달여 동안 ‘작업복’이라는 열쇳말로 전국 각지의 노동자들을 만났다. 경향신문 기획 연재 ‘당신은 무슨 옷을 입고 일하시나요’를 취재한 팀원들과 공유한 문제의식은 이러했다. “작업복만 바뀐다고 일터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진 않을 것이다. 다만 작업복은 일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이들이 입는 작업복은 우리 사회가 어디쯤 와 있는지 가늠해볼 수 있는 지표 가운데 하나다.”

쓰레기 소각장, 자원순환센터, 하수처리 시설에서 일하는 이들은 지하에서 애매한 옷을 입고 일하고 있었다. 지자체가 민간 위탁으로 운영하는 자원순환시설의 재활용품 선별원들이 받은 면장갑과 반코팅 장갑은 깨진 유리병, 칼 등으로부터 이들을 보호하지 못했다.

학교 급식조리사들은 공정별로 앞치마와 장갑을 바꿔가며 일한다. 위험한 작업 구간이라고 해서 소재, 기능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음식’의 위생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사람’을 보호하진 않는다. 산림청 소속 계약직인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들은 작업 특성과 동떨어진 신발과 고글 등을 받고 산을 올랐다. 짧은 치마와 하이힐처럼 외양에 대한 ‘기대’를 투영한, 통제 목적이 강한 유니폼을 고수하는 문제도 여전했다.

불안정한 지위는 당연한 것마저 요구하기 힘든 벽을 만든다. 목소리를 내더라도 반영되지 않는 사례가 많다. 상당수의 업장에는 노동조합이 없거나 가입률이 낮다. 고용노동부는 사용자가 편성된 피복비 등 복리후생비를 제대로 쓰는지 관리·감독하는 데 손을 놓고 있다.

쉽게 대체할 수 있는 일이라는 편견도 크게 작용한다. 자동차 부품을 세척하는 공장의 노동자들은 고무장갑을 끼고 일해왔는데, 세척액에 유해물질이 함유돼 건강을 해쳤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됐다. 문제가 되자 회사는 해당 공정을 외주화했다. “다른 사람들이 또 아플까봐 걱정된다”고 직원들은 말했다.

노동의 가치에 맞는 작업복이 주어지는 사회는 그만큼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는 곳이라는 뜻이다. 일에 대한 애정, 경험에서 비롯된 전문성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효능감을 잃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안부를 묻는 건 어떨까. “당신은 무슨 옷을 입고 일하시나요?”

<박하얀 스포트라이트부 기자 whit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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