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기술발전과 혼돈…비판보다 포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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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8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3 디지털 유통대전에서 관람객들이 키오스크와 결제기 등을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6월 28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3 디지털 유통대전에서 관람객들이 키오스크와 결제기 등을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세기말까지 우리는 옳음과 그름이 어느 정도 명확하게 구분되던 세상을 살아왔습니다. 우리 대다수는 비록 소극적이었지만, 권력층의 위력과 조작된 선전에 휘둘리지 않고 진리와 정의를 추구할 줄 알았습니다. ‘최(最)후진국’ 대한민국을 잘사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매진하며, 자유와 민주를 위해 온몸으로 싸우던 용감한 사람들에게 뜨거운 격려를 보냈습니다. 그 결과 모두 함께 힘을 모아 자랑스러운 정치적·경제적 성취를 이룩해냈습니다. 굴곡은 있었지만 소중한 가치를 추구하며 보낸 멋진 시절이었습니다.

20세기 말부터 몰아쳐 온 디지털·정보통신 혁명이 우리가 살아오던 세상을 급속하게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40여 년 전 제가 대학에 다닐 때는 공대·자연대에서만 286 개인용 컴퓨터를 조금씩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당시의 슈퍼컴퓨터보다 강력한 성능을 가진 스마트폰이 초등학생들 손에도 하나씩 들려 있습니다. 2010년에 출시된 카카오톡은 이젠 없어서는 안 될 국민 메신저로 관계의 폭증을 몰고 왔고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등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은 마약처럼 사람을 빠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30년 전 제가 국세청에 들어갔을 때 가장 중요한 정보원은 고작 16면 남짓 신문이었습니다. 이제 분야별로 나뉘어 모두 합쳐 몇 면인지조차 모를 정도로 분량이 늘어났지만, 종이신문은 정작 ‘핵심 정보 제공자’라는 위치에서 밀려나 버렸습니다. 너무 많은 매체가 홍수처럼 정보를 쏟아내고 있어 익사할 지경입니다. 인공지능(AI)으로 무장하고 나타난 챗GPT는 이제 지식노동자의 일자리마저 위태롭게 하고, 트위터의 대체재인 스레드는 출시 닷새 만에 1억명 넘게 가입자를 모으는 등 어지러울 정도로 빠른 변화의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적 격변은 우리 일상의 삶도 근본적으로 변화시킵니다.

기술발전과 옳고 그름의 기준

디지털·정보통신 혁명은 일상뿐만 아니라 세계정치, 경제질서의 급변을 몰고 오기도 합니다. 미·중 갈등의 심화, 다극화, 빈발하는 지역 분쟁, 세계화 후퇴 등 전방위적 변화가 일어나고 국가보다는 초거대기업들이 이끄는 세계로의 전환까지 예견됩니다. 최근의 코로나19 사태는 이런 근본적 변화를 가속화시키는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기술발전이 이끄는 이렇게 복잡하고 빠른 변화의 세상에서는 옳음과 그름을 가르는 기준도 모호해지고 있는 듯합니다. 시대를 이끄는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자유나 민주가 예전처럼 우리를 함께 묶어주는 튼튼한 동아줄이 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소중하게 추구하는 가치가 부나 권력, 명예 등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보수나 진보 구분 없이 과거엔 눈길조차 받지 못하던 세력들이 방종을 자유라 주장하며 세력을 얻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자기 이익만 좇는 정파와 개인이 미래를 고민하는 양식 있는 사람들의 자리를 빼앗고, 전면에 나서고 있습니다.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요롭게 살지만 탐욕스러운 사람들은 교묘한 방법으로 더 많은 것을 차지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세상은 더 나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정말 심각하게 걱정하고, 저도 그렇다고 염려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저는 어떤 계기로 이러한 비관적인 생각들을 바꾸게 됐습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지금 우리는 기술발전으로 급변하는 세상에서 일시적 혼란에 빠져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안정을 추구하는 인간의 속성상 격변의 시대에는 잠시 사회혼란이 생기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사람들은 격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소음과 분노에 휩싸여 편을 가릅니다. 자신은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있으며 다른 쪽은 잘못된 생각에 빠져 분노하며 나쁜 일을 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런 일시적 혼란을 슬기롭게 극복해내면 새로운 기술이 우리를 예전보다 훨씬 안정되고 살기 좋은 곳으로 이끌어 가게 됩니다. 긴 역사를 돌아보면 기술이 발전하지 못해 생산성이 떨어지는 곳에서는 비윤리적 행동이 많이 용인됐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생산이 늘어나는 사회에서는 관대함과 윤리적 행위도 함께 증가해 왔습니다. 과거 농업혁명과 산업혁명 시대의 사회 변화가 그것을 입증하는 사례입니다. 기술발전은 우리 삶을 개선하고 타인에 대한 관대함의 범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인류의 생존조건 개선, 노예제 폐지, 자유와 평등의 확대는 이런 기술혁명이 없었다면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대부분 사람은 천성적으로 친절하고 자상하며 옳은 일을 행하고 싶어합니다. 과거에 자유와 정의를 외치던 많은 친구가 세월이 흘렀다고 탐욕과 방종에 쉽게 물들진 않았을 겁니다. 혼돈의 사회에서 그들이 분노에 휩싸이는 것은 개인적인 이익보다는 현재 상황이 자신이 생각하는 옳음에 어긋난다고 보기 때문이겠지요. 그게 진실에 더 부합하는 분석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술 결정주의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기술과 윤리의 상호의존성을 경험해 왔습니다. 부와 생산성의 증대가 관대함과 윤리적 행위를 끌어내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일시적으로 혼란스러워 보여도 디지털·정보통신의 혁명 시대에도 이런 장기적 추세는 앞으로 계속되리라 믿습니다.

우리가 디지털·정보통신 혁명 시대에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새로운 기술을 두려워하고 엄격한 사용기준을 세우는 일입니다. 강력한 살상무기, 기후변화, 합성생물학, AI 등에 대한 방향 결정이 인류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혼돈 시대 너머 펼쳐질 미래

결론적으로, 역사의 경험에 비춰보면 현재의 혼돈 시대가 지나면 더 밝은 미래가 펼쳐질 겁니다. 양식을 가진 우리는 혼돈을 최소화하기 위해 경직된 옳음과 그름의 잣대로 타인을 재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비판은 줄이고, 경청을 늘리는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서로를 특정 정치집단 논리나 종교적 잣대로 대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보다는 우리와 후손들의 밝은 미래를 기대하며 관대함, 공감, 연민, 진실함 등을 가지고 서로를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고 함께 나아갈 것인지, 어둡고 비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미래를 기다릴 것인지는 우리 각자의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조정목 세무사·세무법인 광화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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