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엘리엇 판정과 한동훈 장관의 서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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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7월 18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 판정 후속 조치 관련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 문재원 기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7월 18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 판정 후속 조치 관련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 문재원 기자

지난 7월 18일, 법무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엘리엇 사건에서 대한민국의 패소를 결정한 상설중재법정(PCA)의 중재판정에 대해 중재판정부에는 판정의 해석 및 정정 신청을 청구하고,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관할권 판단이 잘못됐다는 이유로 취소신청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주지하듯이 엘리엇 사건은 국정농단 사건의 파생물이다. 따라서 이 사건은 그 자체로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족하다.

하지만 법무부 보도자료와 한동훈 장관의 브리핑은 좋게 말하면 진실의 왜곡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혹세무민(惑世誣民)이었다. 심지어 우리 정부의 편을 든 것처럼 표현한 미국의 의견도 중재판정에 사용된 부분은 애써 외면하고 엉뚱한 부분을 적시해 국민의 오해를 유발했다. 이하에서는 왜 법무부 보도자료가 진실을 왜곡한 것인지 살펴보기로 한다(이하의 논의에 사용된 소송 관련 문서는 모두 상설중재법정 홈페이지의 다음 주소-https://pca-cpa.org/en/cases/197/-에 수록돼 있다).

법무부 주장 과연 옳은가

우선 법무부의 주장을 요약해 보자. 법무부에 따르면 엘리엇 사건에서 문제가 된 행위는 “국민연금이 합병에서 찬성표를 던진 것”인데, ▲이 행위는 소수주주가 행한 의결권 행사로서 다른 소수주주인 엘리엇에 배상책임을 지지 않으며, ▲국민연금을 “사실상의 국가기관”으로 판단한 중재판정부의 입장은 한·미 FTA가 예정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며, ▲비정부기관의 조치의 국가 귀속과 관련한 미국의 의견서도 법무부의 주장과 일치하며, ▲우리나라 법원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보건복지부의 직권남용에도 불구하고 독립적으로 행사됐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법무부의 주장은 거의 모두 잘못된 것이다. 우선 문제가 된 행위는 단순히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아니라 대통령을 시발점으로 하는 국가기관의 부당한 조치였다. 이 점은 우리 측 중재인인 크리스토퍼 토마스가 제출한 별개의견(소수의견)에 잘 나타나 있다. 별개의견 제71단락을 보면 “본건 합병의 찬성 표결을 통해 승계 계획을 지원하기 위해 대통령이 의도한 조치는 필연적으로 삼성물산 지분 7.12%를 취득한 청구인[=엘리엇]의 위임장 대결을 좌절시키기 위한 것”이며, “부패로 얼룩진 이러한 개입은 청구인이 제11.1조의 관할의 관문을 통과할 수 있도록 하기에 충분”하다는 말이 나온다. 우리 정부가 위촉해 그래도 팔이 안으로 굽을 것 같은 우리 측 중재인의 판단이 이 정도일진대, 한동훈 장관은 어찌 관할권 판단이 잘못됐다고 운운하는 걸까.

의결권 행사와 관련해 소수주주는 다른 소수주주에게 배상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는 말은 타당한 주장이지만 이번 투자자-국가 분쟁의 논점이 아니다. 이 중재 사건은 구 삼성물산의 소수주주였던 엘리엇이 또 다른 소수주주인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문제삼아 국민연금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사건이 아니다. 그랬다면 이는 국내 법정에서 다투어야 할 사건이다. 엘리엇이 제기한 것은 투자자-국가 분쟁이며, 여기서의 핵심 논점은 대한민국이 한·미 FTA 협정상의 의무 중 하나인 최소대우 기준을 위반해 미국 투자자인 엘리엇에게 손해를 입혔는지 여부다. 국민연금의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해 합병에 찬성표를 던지도록 압박한 대통령과 보건복지부 장관의 행위가 문제인 것이지, 일반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진 소수주주의 의결권 행사가 문제인 것이 아니다.

국민연금을 “사실상의 국가기관”으로 본 중재판정부의 판단에 대한 법무부의 비판은 적나라한 사실 왜곡이다. 법무부는 “사실상의 국가기관”이라는 말은 한·미 FTA가 예정하지 않았던 개념인데 중재판정부가 뜬금없이 꺼내 들었다는 식으로 주장한다. 진정 그렇다면 법무부는 중재절차 과정에서 사실상의 국가기관이라는 개념 자체가 한·미 FTA에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라고 주장했어야 한다.

국민연금, 사실상 국가기관 아니라고?

그런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너무나 놀랍게도 우리 정부는 사실상의 국가기관이라는 개념 자체를 배척한 것이 아니라 이것도 유효한 개념이라고 받아들이면서, 다만 사실상의 국가기관에 해당하기 위한 요건(“완전한 의존”)이 매우 엄격한데 국민연금은 그 기준을 충족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의 국가기관이 아니라는 취지로 주장했다. 필자의 말을 믿지 못하는 독자는 앞에 적은 인터넷 주소에 수록된 2019년 9월 27일자 우리 정부의 ‘반박서면’ 중 “국민연금은 사실상의 국가기관이 아닙니다”라는 부분(제116~121쪽, 제272~280단락)을 참조하면 된다. 중재판정부는 이런 주장을 중재판정문에 요약 기재하면서, 다만 제반 여건을 고려할 때 국민연금은 정부와 충분히 분리되지 않은 법인이므로 한국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사실상의 국가기관에 해당하고 따라서 그 행위는 대한민국에 귀속된다고 판단했다.

법무부의 사실 왜곡은 미국 의견을 인용하는 과정에서 극치를 이룬다. 법무부가 보도자료에서 인용한 미국의 의견서는 “비정부기관”에 해당하는 부분(협정 제11.1조 제3항 나호)이다. 그러나 중재판정부는 국민연금을 비정부기관으로 본 것이 아니라 (사실상의) “국가기관”(협정 제11.1조 제3항 가호)으로 보았다. 따라서 미국의 의견이 중요한 부분은 “국가기관”의 개념과 판단 준거에 대한 부분이다. 법무부는 이 부분을 쏘옥 빼버렸다. 그럼 진실은 무엇일까?

미국은 협정 제11.1조 제3항 가호가 지칭하는 정부와 당국은 “체약국가의 기관(organ of the Party)”을 말하는데, 그 판단 준거는 국제관습법상의 귀속 원칙이라고 명시했다(이 미국 의견서 역시 위 판결문 주소에 수록돼 있다). 중재판정부는 이 귀속 원칙에 따라 판단했다. 우리 측 반박서면도 이런 해석 원칙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제반 사실관계에 대한 평가가 달랐을 뿐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우리 측 중재인을 포함한 모든 중재인이 국민연금이 “사실상의 국가기관”이라는 점에 의견의 일치를 본 것이다. 과거에도 ‘이란 다야니 사건’에서 중재판정부는 자산관리공사를 사실상의 국가기관으로 판단했던 적이 있다. 법무부는 런던 법원에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반년 정도 후에 기각당했다.

취소소송의 마지막 논거로 법무부가 제시한 것처럼 과연 보건복지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이 독립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했는지에 대한 판단은 독자에게 맡긴다.

결론은 무엇인가? 취소소송을 제기하는 것이야 법무부가 신중하게 판단해 결정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면 된다. 문제는 그 논거가 허접하기 짝이 없으며, 심지어 사실을 중대하게 왜곡해서 국민을 현혹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한동훈 장관은 멈추면 쓰러지는 외발자전거에 올라탔다. 한 장관의 서커스는 성공할 것인가.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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