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너희가 K노동법을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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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메일 해고 통보가 미국에서는 유효하더라도, 한국에서는 부당해고일 가능성이 높다. / 픽사베이

e메일 해고 통보가 미국에서는 유효하더라도, 한국에서는 부당해고일 가능성이 높다. / 픽사베이

40년 이상 밸브만 만들어온 스위스 회사가 있습니다. 자타공인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20년 전, 그 회사가 한국 법인(○○코리아 주식회사)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10년 전, K부장은 한국 법인에 경력직으로 입사했습니다. K는 전 직장에서의 능력을 인정받았고, 회사에서 가장 핵심인 대기업(삼성·LG) 영업 부서를 담당했습니다. K는 회사에 뼈를 묻는다는 각오로 세계적인 기업에서 영업을 잘해왔습니다. 좋은 성과를 냈고, 회사의 대우도 점점 좋아졌습니다. 회사에서의 앞날에 청사진이 그려졌습니다.

외국계 회사 K부장 이야기

그런데 대표이사의 생각은 조금 달랐던 모양입니다. K부장은 어느 날 갑자기 대표이사로부터 e메일 한 통을 받았습니다. “2023년 3월 16일부로 귀하의 아시아지역 부문 관리자 고용이 종료됨을 알려드리게 되어 유감입니다. 아시아 경영진은 더 이상 지역에서 해당 직책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결정했습니다. 귀하의 마지막 근무일은 2023년 3월 16일입니다.(We are sorry to inform you that your employment as Regional Sector Manager- Asia shall be terminated on Mar 16, 2023. It’s the decision by Asian management team for this reason that the position isn’t demanded by region any more. Your last working day is 16 Mar 2023).” 이른바 당일 통보, 당일 해고였습니다.

믿었던 회사에 해고를 당한 K부장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 아픈 느낌을 받았습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분쟁이 없었던 모범 시민이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습니다. K부장은 필자와 함께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했습니다. K부장이 그동안 해왔던 일들을 이유서와 증거로 설명하며 억울한 사정을 호소했습니다.

이에 대해 회사의 주장은 ①한국 법인의 근로자가 아니라 해외 법인 근로자다(즉 한국 노동위에서 다툴 수 없다). ②근로자가 아니고 임원이다(즉 노동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보통 이런 경우, 외국계 회사의 주요한 방어 논리는 ‘긴급한 경영상 필요성에 따른 정리해고’입니다. 회사는 그러나 최근 회사 매출이 (K부장으로 인해) 너무나 성장했기에 경영이 어렵다는 말은 꺼내지도 못했습니다.

지노위 부당해고 심문회의를 한 시간 넘게 열었습니다. 그리고 심문회의 당일 저녁 8시, “[경기지노위] 금일 개최된 경기2023부해1110 ○○코리아 주식회사 부당해고 구제신청의 판정결과는 ‘인용’입니다”라고 문자가 날아왔습니다(노동위원회 결과는 심문회의 당일 결정되고, 한 달 내로 판정문이 송달됩니다). 즉 ①원직 복직명령과 ②해고 기간의 임금상당액이 지급된다는 것입니다. 혹시나 지면 어쩌나 하고 마음을 졸인 K부장은 복직에 부푼 꿈을 가지게 됐습니다.

마음먹은 대로(At-will) 해고하기

미국은 임의고용(At-Will Employment)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마음대로(At-will) 해고할 수 있다는 At-Will Employment는 다른 말로 ‘해고자유원칙’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회사에 특별한 내부 규정이 없는 한, 임의고용 제도는 ▲언제나 ▲어떤 이유로든 ▲아무런 사전 통지 없이 고용 및 해고가 가능합니다. 별도의 고용계약 없이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자의 근무형태 및 근무조건 역시 자유롭게 변경될 수 있습니다.

스위스 역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고용과 해고의 유연성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WEF·The Global Competitiveness Index 2017-2018: 총 133개국 중 홍콩 1위, 스위스 2위, 미국 5위, 대한민국 88위, 프랑스 133위). 완화된 노동법 덕분에 스위스 노동시장은 매우 유동적입니다. 기업들이 금전적 조건만 맞는다면 짧은 통보 기간으로도 직원을 해고할 수 있습니다. 다른 국가에 비해 부대 임금 비용이 낮은 편이며, 스위스에서 파업이 일어난 적도 매우 드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해고할 수 있습니다(근로기준법 제23조·제24조). 어떤 기업이 경영상 이유로 “일부” 사업을 폐지하더라도, 근로기준법 제24조에서 정한 엄격한 해고 요건을 갖춰야 합니다. 그 요건을 갖추지 못한 해고는 정당한 이유가 없어 무효입니다(지난 노동법 새겨보기 (2) 정리해고는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한다 참조). 뿐만 아니라 해고의 사유도 근로기준법 제27조가 정한대로 ‘종이’로 통보해야 합니다((3) 해고엔 ‘왜’가 필요하다 참조).

트위터에서 2022년 11월에 직원 3700명에게 한 e메일 해고 통보가 미국에서는 유효하더라도, 한국에 있는 트위터코리아 직원들 30명에게 같은 방식으로 한 해고는 부당해고일 가능성이 높은 이유입니다. 실제로 트위터코리아는 6개월째 근무를 하지 않는 직원에게 월급을 주고 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근로기준법상 부당해고로 소송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한국일보 2023. 5. 19, ‘트위터의 꼼수’, 한국서 소송 피하려 일 안 시키고 월급 지급 논란).

'회사가 5시간 줄테니 6시까지 장비 반납하고 나가라. 프로젝트 끝났으니 내일부터 안 나와도 된다고 5시 40분 슬랙계정 폐쇄, 5시 50분 조직개편 통보를 했다.' 지난 1월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쿠키런’으로 유명한 한 회사가 관련 사업을 철수하면서 담당 직원들에게 일방적으로 해고를 통보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이와 관련한 언론보도에 대해 해당 회사는 프로젝트 개발 종료에 따른 안내 및 부서 이동 절차를 진행 중이며, 해고 통보는 없었다고 해명했습니다. 다만, 회사는 구성원들과의 소통에 혼란이 발생한 점에 대해 사과하고 한 달 여에 걸쳐 해당 근로자들의 부서 이동을 마무리하며 수습했습니다.

다시는 한국법을 무시하지 마라

여기서 문제입니다. ①회사가 갑자기 “다른 직원들이 같이 일을 못 하겠다고 하니 일단은 오늘까지 출근하고, 앞으로 한 달간 급여와 퇴직금을 계속 지급할 테니 한 달 동안 휴가를 사용하세요” 그러면서 권고사직서에 서명해 달라고 제안합니다. ②근로자가 그 자리에서는 “권고사직으로 퇴사를 하는 것으로 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③회사가 퇴직금 지급 약속은 착오라며 지급하지 않았고(실 근로기간 1년 미만) ④근로자는 권고사직서 제출을 거부했습니다. ⑤회사가 근로자를 출근하지 못하게 하고 일방적으로 4대 보험 자격상실을 신고하면 그것은 해고(부당해고)일까요, 해고가 아닐까요(사직일까요)?

법원 판결은 ‘부당해고’입니다(서울고법 2020누60804: 대법원 확정). 법원은 ‘회사가 퇴직금을 지급하지 아니함으로써 정지조건부 합의(권고사직)는 그 효력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즉 근로자의 사직이 안 됐으니 해고이고, 해고 절차가 잘못됐으니 부당해고라는 겁니다.

정리하면, 우리나라는 ①근로자가 반대하는 권고사직은 있을 수 없고(정 자르고 싶다면 해고해야 하고) ②해고한다면 엄격한 절차에 따라야 하며 ③권고사직이든 사직이든 해고든지 퇴직금은 지급해야 합니다(의외로 세계 각국에서는 자발적으로 사직하는 경우 퇴직금 지급 의무가 없습니다). K부장의 대리인으로서, 그 외국계 기업에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시는 대한민국 노동법을 무시하지 마세요.”

<한용현 법률사무소 해내 변호사 lawyer_h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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