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사회통념’의 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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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자리에 앉아 있다. / 연합뉴스

지난 5월 1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자리에 앉아 있다. / 연합뉴스

법조계에서는 사회통념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사회통념이라는 것은 ‘사회 일반에 널리 퍼져 있는 공통된 사고방식’ 또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일반인들이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는 관념’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겁니다. 사회통념에 관해 어느 부장판사는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어떤 아이가 손을 들고 “판사는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인생을 좌우할 만한 중요한 판결을 하는데, 판사들은 그 많은 사람을 어떻게 그렇게 다 잘 알고 있나요? 공부를 많이 하면 다 알게 되나요?”라고 물었다. (…) 그 아이의 질문을 받고 보니 간접경험을 위한 독서만으로는 그 대답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판결문을 포함해 법조인들은 법률 서면에 ‘사회통념’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사회통념에 비추어볼 때…’, ‘사회통념에 부합한다’, ‘사회통념에 어긋난다’는 등으로 말이다. 판결문 등 법률 서면에서… 그것이 왜 사회통념인지에 대한 논증은 많이 생략한다. 서면상의 논증은 생략했더라도, 단순한 나의 직관을 사회통념으로 격상시킨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김종복·사회통념의 함정·법률신문 2017. 10. 12).

경력 수십 년의 베테랑 판사라도 직접경험에는 한계가 있으니 많은 일을 모를 수 있고, ‘판사의 직관=사회통념’에 대해 반성한다는 취지입니다.

사회통념상 합리적이면 되었던 시절

이번에는 취업규칙 이야기입니다. 취업규칙은 회사의 규정, 사내규정, 사규입니다. “사용자가 근로조건(임금·근로일자·근로시간 등)과 복무규율을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명시해 놓은 규정”입니다. 취업규칙은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규정입니다. 일방적 규정이다 보니 사용자는 유혹이 많습니다. 더구나 그 규정은 근로자의 근로조건(주로 돈과 관련된 문제), 복무규율(주로 신분과 관련된 문제)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제정·개정될 수 있습니다.

불리한 변경의 예를 들면 ①회사를 통합하면서 퇴직금 지급률이 감축(누진제→단순 지급제)된 경우 ②과거에는 정년 예정자는 후선 배치 대상이 아니었는데 대상자로 확대한 경우 ③정년규정이 없던 회사에서 55세 정년규정을 신설한 경우 ④형사 처벌을 받으면 면직된다는 면직 사유를 신설한 경우 ⑤기간제 전임강사들에게 1년 단위로 재임용심사를 하게 한 경우 ⑥교통공단에서 기관사들의 운행시간을 30분 연장한 경우 등 실제 분쟁에서 문제 되는 사례가 매우 많습니다.

근로기준법은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1989년부터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를 규정했습니다. 사용자는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 ①과반수 노동조합 ②(과반수 노조가 없는 경우) 근로자의 과반수 “동의를 받아야 한다”입니다(근로기준법 제94조 제1항 단서). 다시 말해 노동법은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절차적으로 노동자의 집단적 동의를 요구합니다. 다만 법에 취업규칙 내용을 예쁘게 잘 만들어야 한다는 요청사항 같은 것은 없습니다.

노동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지 않은 경우 ▲원칙적으로 무효지만 ▲예외적으로 그 취업규칙 변경이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유효하다는 판례가 쌓여왔습니다. 즉 취업규칙이 무효화되려면 ⑴불이익변경이 있고 ⑵근로자 과반수 동의가 없어야 하며 ⑶사회통념상 합리성도 없어야 합니다. ⑶은 법 규정에는 없지만, 법원에서 추가로 요구하는 요건입니다.

예를 들면 ⑴기관사들의 운행시간을 30분 연장한 것은 피로를 증가시키는 불이익변경이고 ⑵집단적 동의절차는 없었지만 ⑶이에 따라 임금이 올랐고, 다른 근로조건이 개선돼 운전시간 연장으로 인한 불이익이 상당 정도 완화돼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인정해 취업규칙 변경이 유효하다고 보았습니다(2007도3037).

사회통념상 맞더라도 절차가 틀렸다면

이렇게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어서 동의 없는 불이익 변경 절차도 적법하다고 본 판결은 대법원 판결만 25건(약 20%)이라고 합니다. 대법원이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를 엄격하게 해석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근기법 주해 3권·830면). 앞에서 불이익변경으로 예로 든 6가지 사건 역시 ‘불이익하지만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봐 모두 노동자가 패소한 사건들입니다. 절차적으로는 위법하더라도 내용상으로 사회통념상 합리적이면 결과적으로 용인된다는 문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으면 동의절차 없는 취업규칙 불이익변경도 유효’라는 법리가 우리 법에 맞는지 치열한 논쟁이 30여년간 있었습니다. 주요한 비판은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법에 규정돼 있지 않은 개념이라는 점입니다. 법이 규정한 요건을 법에 규정하지 않은 해석을 통해 배제하는 것은 ‘법원이 선을 넘었다’는 지적입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23년 5월 11일 취업규칙과 관련한 ‘사회통념상 합리성론’을 폐기했습니다(대법원 2017다35588·35595). 대법원 다수의견은 “사회통념상 합리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매우 불확정적이어서 노동관계 당사자가 쉽게 알기 어렵다”, 이에 따라 “취업규칙 변경의 효력을 둘러싼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유효성이 확정되지 않은 취업규칙의 적용에 따른 법적 불안정성이 사용자나 근로자에게 끼치는 폐해 역시 적지 않았다”고 평가했습니다. 취업규칙이 유효한지 예측이 되지 않아 끊임없이 분쟁이 계속되고 있고, 그 상황에서도 취업규칙은 계속 적용돼 발생하는 부작용이 많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수의견이 제시한 최소한의 장치는 ‘노동조합의 동의권 남용’입니다. 그에 관한 해석도 있을 수 있습니다만, 적어도 사회통념보다는 훨씬 덜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습니다. 법 규정이 없는 사회통념과는 달리 권리남용은 민법 제2조 제2항에서 “권리는 남용하지 못한다”라고 적시한 대원칙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두에 인용한 대로 사회통념은 법관의 직관에 가까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사회통념’은 적어도 취업규칙 영역에서는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게 됐습니다. 39쪽에 달하는 이번 대법원(2017다35588·35595) 판결문은 절차적 문제를 ‘내용상 합리성’으로 커버할 수 있는지, 법의 정신은 어떤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답과 치열한 논의의 장입니다. 대법관 7명의 찬성과 6명의 반대가 있었습니다. 단 한 표 차였습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한용현 법률사무소 해내 변호사 lawyer_h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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