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뜨거운 것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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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최대 벚꽃축제인 진해군항제가 열린 경남 창원시 진해구 경화역 공원에서 지난 3월 26일 관광객들이 벚꽃을 구경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전국 최대 벚꽃축제인 진해군항제가 열린 경남 창원시 진해구 경화역 공원에서 지난 3월 26일 관광객들이 벚꽃을 구경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년 넘게 해외 생활을 한 나로서는 한국의 봄이 반갑다. 한국의 사시사철, 특히 뚜렷한 봄은 한국살이에서 축복이다. 4월 말까지 겨울옷을 입던 캐나다 토론토에서는 봄이 너무나 짧았다. 5월이 돼서야 봄 날씨를 조금씩 즐기다 보면, 6월의 여름으로 금세 넘어간다. 한국의 넉넉하고 온화한 봄 햇살은 언제나 찾아가고 싶은 고향의 향수였다.

지난 3월 진해군항제에서 한국의 봄을 만났다. 오랜만에 찾은 한국의 벚꽃은 눈이 부셨다. 햇볕 따뜻한 봄날, 등에 가득한 햇살을 받으며 흩날리는 벚꽃잎 사이를 걸었다. 꽃 반, 사람 반으로 느껴질 만큼 관광객이 많았다. 코로나19로 4년 동안 닫혔던 벚꽃축제를 이번에 개최했기 때문이다. 모두 닫혔던 문을 열고 나와 자연이 만든 변화와 축제를 즐겼다. 지나가는 이들에게서 웃음과 행복이 느껴졌다. 나 역시 그중 하나가 돼 따뜻한 봄 햇살 아래 향수라는 갈증을 날려버렸다.

그런데 뭔가 과거의 기억과 다르다. 벚꽃은 4월 초에 피지 않았던가? 3월에 시작하는 벚꽃축제도 빠르고 꽃샘추위로 기억나던 3월 날씨치고는 너무 따뜻했다. 참고로 올해 한국 벚꽃 개화일은 평년보다 거의 2주가 빨랐다. 3월부터 때아닌 초여름 날씨가 벌써 시작된 것이다. 5월 중순도 더웠다. 전국 대부분 지역이 높은 최고기온을 기록하며 초여름 수준의 더운 날씨를 보였다. 기상청에 따르면 경북지역을 중심으로 30도를 넘는 고온이 나타났다.

뜨거워진 지구촌

한국의 때 이른 초여름은 지구촌 전역에 닥친 폭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지난 5월 13일, 미국 기상청은 미국 서북부 해안지역에 때 이른 폭염주의보를 발령했다. 특히 오리건주 포틀랜드는 이날 오후 최고기온이 34.4도에 이르러 역대 최고기온을 기록했다. 미국 서북부의 이례적인 고온은 이미 산불로 고통받고 있는 캐나다 서부지역에 부채질을 가했다. 앨버타주에서는 수십 건의 산불이 동시다발로 발생했다. 당국은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해당 지역에 주민 대피령을 내렸다.

스페인 남부지역은 4월 온도가 이미 40도에 육박하면서 40년 만의 최고 더위를 기록했다. 지난 4월 26일 스페인 세비야 기온은 40도까지 올라갔고, 27일 코르도바는 38.8도를 넘어 관측 이래 최고기온을 기록했다. 4월 말 스페인 거의 모든 지역이 평년보다 최고기온이 5~10도 높았다.

동남아시아 지역도 기록적인 고온 현상을 겪었다. 지난 5월 13일 싱가포르는 최고기온 37도를 보였다. 1991년부터 2020년까지 4~5월 평균 기온이 28.4도였던 점을 고려하면 5월 폭염은 이상고온이다. 베트남은 무려 44.1도의 사상 최고기온을 기록했다. 태국은 45.4도를 기록, 최고기온을 경신했다. 미얀마는 4월 말 43.8도를 기록하며 58년 만에 최고기온 기록을 넘어섰다. 무지막지한 ‘괴물 폭염’이 세계 곳곳을 덮치며 전례 없는 수준의 고온 현상이 발생했다.

다가오는 괴물 폭염

지구온난화로 인한 세계 각지의 이상기온 소식은 이제 낯설지 않다. 최근 세계기상기구(WMO)가 보고한 내용은 더 놀랍고 무섭다. 최근 발생한 지구촌 괴물 폭염이 무색할 만큼 지난 3년간 지구는 라니냐로 인해 지구를 “차갑게” 하며, 지구 기온 상승에 제동을 걸었다고 한다. 더 높은 고온 현상이 발생할 수 있었는데, 라니냐의 차가운 해수가 더 끔찍한 괴물 폭염을 막고 있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라니냐는 적도를 따라 부는 무역풍이 강해 동태평양에 차가운 해수가 융승하는 현상을 말한다. 날씨와 관련해 단순화시키면 라니냐 현상이 발생하면 지구 평균온도가 0.2도 정도 떨어진다. 그 반대의 현상인 엘니뇨도 있다. 엘니뇨는 무역풍이 반대로 약해져 동태평양에 따뜻한 해수가 지속된다. 엘니뇨일 때는 지구 평균온도가 0.2도 정도 상승한다. 엘니뇨의 따뜻한 해수가 멀리 퍼지면서 공기가 고온 다습해지고 더 많은 열이 대기로 방출되기 때문이다. 역대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된 2016년은 엘니뇨가 발생한 해였다.

무서운 소식은 이제 기온 상승을 막아주던 3년간의 라니냐 시기가 끝나고, 기온 상승을 부추기는 엘니뇨가 다가온다는 점이다. 컴퓨터 모델링 예측에 따르면 엘니뇨가 발생할 확률은 6월까지는 15%로 낮지만 이후 8월까지 확률이 55%로 상승한다. 이미 뜨거워진 지구 온도에 엘니뇨가 발생하면서 또 다른 기온 급등을 촉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경고다. 인류가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폭염이 다가오고 있다.

세계기상기구는 또 다른 보도자료에서 2023년부터 2027년까지 연평균 지표면 부근의 지구 기온이 최소 1년 동안 산업화 이전 수준보다 1.5도 이상 상승할 확률이 66%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는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채택한 지구 온도 상승 제한 목표-산업화 이전보다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하자는 목표-가 5년 안에 일시적이지만 깨질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페테리 탈라스 세계기상기구 사무총장은 이 예측치가 파리기후변화협약의 1.5도 제한을 영구적으로 넘는 것은 아니라고 의미를 축소하면서도 다가오는 엘니뇨에 의한 기온 상승 우려를 숨기지 않았다. 또 향후 5년 중 적어도 한 해, 그리고 5년 전체가 기록상 가장 따뜻한 해가 될 가능성이 98%라고 예측했다. 엘니뇨가 도래하는 올해 하반기부터는 지구 곳곳에 폭염과 홍수, 가뭄의 발생을 예고했다.

탈라스 사무총장은 “앞으로 몇 달 안에 엘니뇨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며 이는 인간이 유발한 기후변화와 결합해 지구 온도를 미지의 영역으로 밀어 넣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인류의 건강, 식량안보, 물관리 및 환경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기에 미리 대비하라고 당부했다.

이미 폭염과 가뭄으로 이상기온을 겪은 지역의 식량 가격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집계하는 국제 식량 가격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상고온 여파로 지난해 3월 역대 최고치를 찍은 뒤 가까스로 하락했다. 지난 4월 기준 설탕 가격은 11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았으며, 쌀 가격은 전월 대비 2.5%, 전년 대비 17.8% 올랐다. 국제 올리브유 가격은 최대 생산 국가인 스페인의 가뭄 탓에 지난 3월 2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근 한국에서 발표된 전기요금 추가 인상은 다가오는 엘니뇨와 함께 올여름 냉방비 폭탄을 터트릴 뇌관으로 거론된다. 다가오는 무더위가 물가를 더 들썩이게 만들고 있다.

멀리 있으리라 생각했던 1.5도의 한계점이 이제 눈앞에 다다랐다. 인류가 산업화와 경제 성장이라는 미명하에 숨겨놓았던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라는 괴물이 인류를 향해 걸어오고 있다. 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정봉석 JBS 수환경 R&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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