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수도 오타와에는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문화유산인 리도운하(Rideau Canal)가 있다. 리도운하 건설은 특이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세인트로렌스강을 따라 국경이 만들어질 즈음, 강 북쪽의 영국 식민지 캐나다까지 미국에 편입시키려는 욕심이 있었다. 실제로 1812년 양국 간에 전쟁이 있었고, 이후에도 계속 미국의 침공을 두려워했다. 이에 영국은 1832년 내륙에서 대서양까지의 안전한 수송로를 확보하기 위해 202㎞에 달하는 리도운하를 만들었다. 이후 긴장 관계는 안정됐고, 현재는 유람선 관광업 중심으로 쓰인다. 운하를 따라 시민들이 휴식과 조깅 및 하이킹을 즐기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또한 겨울에 리도운하는 7.8㎞ 길이의 세계 최대 아이스 스케이트 링크로 변신해 시민들이 즐겨찾는 관광명소로 이용된다.
역사를 통틀어 물은 강대국의 흥망성쇠, 국가 간의 대외관계, 현존하는 정치·경제 체제들 그리고 일상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인류의 큰 도시들은 물의 접근이 용이한 강을 중심으로 성장해왔다. 강에 근접한 도시는 항상 재앙적인 홍수의 피해에 노출돼 있기에 물을 다스리는 ‘치수’는 과거부터 나라를 다스리는 ‘치국’의 근간이었다. 물을 통제하고 공급 확대에 성공한 소수 문명은 번영과 정치적 활력을 얻었다. 그 수단으로 주로 이용된 것이 운하다.
중국과 미국의 성공 스토리
중세 중국이 황금기를 시작한 계기는 1770㎞에 달하는 대운하의 완성이었다. 대운하는 벼를 재배하는 양쯔강 유역의 자원과 북부 황허강 유역의 기름진 반건조 지역을 연결하는 고속도로였다. 중국 수나라 수양제 610년에 건설해 상하이 남쪽의 항구도시 항저우에서 북쪽의 베이징까지 운하로 연결했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밀집된 교역 지역을 단일 시장으로 통일해 중세 중국이 경제적·문화적·정치적으로 오랫동안 번영하는 데 공헌했다. 정치를 의미하는 한자 치(治)는 물을 다스린다는 어원에서 시작한 것처럼 물의 통제는 중국의 정치와 국가통합에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역설적으로 그 성공에 오랫동안 도취해 세계에 등을 돌리는 운명적인 결정을 함으로써 중국이 15세기에 서서히 쇠퇴하게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미국 역시 물에 의한 장애물을 운하를 통해 극복하고 이용함으로써 세계 초강대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미국은 독립 직후인 1803년 프랑스로부터 미시시피강 수계의 광대한 루이지애나를 구입했지만, 애팔래치아산맥이라는 크나큰 장애에 가로막혀 동부와 중서부가 사실상 분리됐다. 이 둘을 연결하는 이리운하는 1817년에 착공해 1825년에 개통했다. 갓 독립한 미국에 교통혁명을 제공하며 막대한 경제적 효과를 가져왔다. 중서부 지역의 농산물이 미국 동부는 물론 세계시장으로 유통됐다. 시카고, 클리블랜드, 버펄로, 신시내티, 피츠버그 등 조그마한 내륙도시들은 증기선이 북적거리는 미국의 주요 도시로 성장했다.
미국은 이리운하에 이어 1914년 당시 수자원 관련 공사로서는 가장 거대한 도전이었던 파나마운하를 완성했다. 이를 통해 세계 리더십을 확보했다. 이 운하를 완공하면서 미국은 단번에 전 세계 해양교역의 핵심국가가 됐다. 또 두 대양에 걸쳐 강력한 해군력을 보유한 해양 세력이 됐다. 자국 내에서는 미개발 지역인 극서부 지방과 생산성이 높은 동부의 경제를 이어 주는 연결 장치인 파나마운하 덕분에 미국은 다시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한국의 운하 같은 보
운하를 이용해 번영했던 해외의 사례들은 국가를 운영하는 정치인에게 달콤한 유혹이다. 한국에서도 2006년 말 이명박 당시 대통령 후보가 제17대 대통령선거의 공약으로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제시하며 한강과 낙동강을 운하로 연결하겠다는 거대 토목사업 계획을 밝혔다. 이후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됐지만, 대운하 공약은 경제성과 환경파괴 문제로 부정적인 반응이 많아 실제 사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소위 4대강 정비 사업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4대강 사업은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등 4대강을 준설하고 보(모두 16개)를 설치해 하천의 저수량을 늘렸다. 2009년 7월 시작해 2011년 10월 완공을 선언했다. 이후 그러나 4대강에 건설된 보에 대한 실효성 논란은 계속 이어졌다.
최근 4대강 보가 다시 뜨거운 화제로 떠올랐다. 작년 봄부터 이어진 기후재난에 가까운 가뭄으로 광주·전남지역이 고통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언론에서 지난 문재인 정부의 4대강 보 해체 결정 때문에 이 지역 주민들이 느끼는 가뭄 고통이 배가됐다고 보도했다. 보는 물을 가두는 ‘물그릇’ 역할을 하기에 가뭄 때 요긴하게 쓸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가뭄 지역이 떨어져 있어도 도수관이나 수로를 설치해 물을 보낼 수 있다고 한다. 4대강 보가 설치된 영산강 물을 이용한 광주시의 예를 들며 수질도 나쁘지 않다고 내세운다.
위의 주장은 일견 맞아 보인다. 가뭄을 대비해 수량을 늘리는 것도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일부의 사실을 가지고 전체를 일반화하는 오류를 가지고 있다. 첫째, 4대강 보로 확보한 사용가용 수량은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지만 그 해당 지역은 주변 지역으로 제한된다. 가뭄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지역은 도서·해안·산간지역인데 보가 위치한 강 본류의 지역과 많이 불일치한다. 그리고 4대강 보들이 애초 용수 활용을 위해 설계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추후 대운하 사업을 고려한 높은 취수구 때문에 물을 많이 저장했어도 실제 사용 가능한 물은 전체 중 일부분이다.
둘째, 떨어져 있는 가뭄 지역에 도수관이나 수로를 설치해 물을 보내는 것은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관련 토목사업에 관한 경제성 문제는 잘 언급되지 않는다.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가뭄에 대비해 막대한 재원이 소요되는 도수관로를 설치한다면 운용에 드는 에너지 비용 대비 경제성이 떨어진다. 탄소중립을 위한 에너지 절약에도 역행한다. 건설 후 사용되지 않는 도수관로는 유지관리에도 어려움이 있다.
셋째, 이번 가뭄 사태로 광주시는 4대강 사업으로 만들어진 승촌보와 죽산보와 무관한 영산강 상류의 물을 이용했다. 영산강의 수질 논쟁이 있는 곳은 승촌보와 죽산보 2곳이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권에서 강 생태계 복원 등을 위해 승촌보를 상시 개방하고, 죽산보를 해체하기로 했다. 실제 해체되진 않았고, 두 곳 모두 부분 개방 상태로 유지됐다. 이번 가뭄 사태로 광주시가 이용한 영산강 상류의 물과는 관련이 없다.
기후위기 시대에 효과적인 수자원 확보 정책은 필요하다. 특히 가뭄으로 고통받는 광주·전남지역 관련 관계자의 고심을 이해한다. 하지만 순간적인 수량 문제에 이론적이고 부정확한 처방을 하지 않기 바란다. 보를 통한 ‘사용가능’ 수량의 증가는 제한적이다. 도수관로를 통한 가뭄 지역의 해갈에도 어려움이 있다. 무엇보다 물은 수량뿐만 아니라 수질의 문제가 공존한다. 지난해 여름과 가을, 극성맞았던 남조류 문제는 아직 기억에 생생하다. 대구시와 창원시의 가정집 수돗물 필터에서 남조류가 검출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 수질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올해도 여름이 점점 다가온다.
<정봉석 JBS 수환경 R&C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