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바닷가에서 태어나 자랐다. 어릴 적 학교 수업이 끝나고 바닷가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왔다. 코로 들어오는 바닷바람이 상쾌했고, 귀로 들리는 바닷물의 찰랑거림이 편했으며, 눈에 비친 파도와 햇살의 눈부심이 좋았다.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두 파란색의 끝없는 무한함은 언제나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항구를 떠나 광활한 바다로 나갔다 항구로 다시 돌아오는 어선들을 보면서 나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다. 생각과 고민이 많을 때마다 찾은 바다는 나의 잡념들을 거대한 수평선 너머로 던져버렸다. 삶과 미래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마음을 안정시키며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바다는 그렇게 어머니처럼 나를 품고 있었다.
물론 바다의 모성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게 영향을 미친다. 첫째, 숨을 쉬는 생물에게 산소를 제공하는 중요한 생명 유지 장치 역할을 한다. 흔히 아마존 열대우림을 지구의 허파라고 하지만 대기 중 산소량의 20% 정도만을 생산한다. 바다의 산소 생산량은 70%에 달한다. 지구의 진정한 허파는 바다다.
둘째, 바다는 지구 온도가 일정한 범위를 유지하는 데 큰 기여를 한다. 바다는 지표 대부분 영역을 흐르면서 위도에 따라 불균등하게 공급되는 태양에너지를 골고루 퍼질 수 있도록 한다. 온도가 오르는 동안 엄청난 양의 열을 흡수하는 바다의 특별한 능력은 계절적인 표면 온도 상승을 완화한다. 지구가 금성처럼 항상 수증기 넘치는 온실이 되거나 화성처럼 얼어붙은 사막이 되지 않고 쾌적한 온도에서 살 수 있는 것도 바다가 있기 때문이다.
셋째, 바다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소비한다. 대기와 넓게 접하고 있는 바다는 이산화탄소를 많이 흡수한다. 식물성 플랑크톤은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산소와 유기화합물로 전환한다. 이후 동물성 플랑크톤과 물고기 등의 해양 먹이사슬을 따라 유기화합물은 위치를 옮기며 최종 소비자인 인류에게도 먹거리를 제공한다. 연구에 따르면 바다는 인류가 배출한 이산화탄소의 30% 이상을 흡수한다. 인류가 일으킨 기후재앙의 위기를 어머니 바다가 막아왔다.
고통받는 바다 그랬던 어머니 바다가 지금 고통받고 있다. 아픔이 쌓이면서 바다의 신음소리가 들린다. 산업혁명 이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계속 증가하면서, 바다는 흡수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온실가스에 갇힌 과도한 열기를 흡수하는 방패 역할을 했지만 이젠 그 방패도 열기에 녹아내린다.
국립수산과학원의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바다의 평균 표층 수온은 1968년부터 54년 동안 지구온난화로 평균 0.52℃ 상승했다. 이는 평균값이므로 수온이 많이 오르거나 적게 오른 지역이 있다. 우리나라는 전자의 경우로, 한반도 주변 수온은 같은 기간 약 1.35℃ 상승했다. 이는 세계 평균과 비교했을 때 약 2.5배 높다. 국립수산과학원은 이 상승세가 지속되면 2100년에 최대 4℃까지 오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바닷물 수온의 상승은 지구온난화와 더불어 해수면 상승의 원인이 됐다. 빙하와 빙산이 녹으며 바다에 더 많은 물이 더해졌다. 바닷물이 따뜻해지면서 바다의 부피가 팽창해 해수면이 상승했다. 최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보고서에 따르면 1901년에서 2018년 사이에 전 세계 평균 해수면은 약 20cm 상승했다. 최근 들어 더 빨라지는 경향을 보인다. 2021년 기준 연 3.7mm의 속도로 가속화하는 중이다.
해수면 상승은 인구가 밀집된 해변 도시에 바닷물 범람에 의한 피해 가능성을 높인다. 해변 인근 지하수층으로 소금기 짙은 바닷물이 흘러 들어간다. 세계적으로 10대 도시 중 8개가 해안 근처에 있어 해수면 상승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해안선을 따라 형성된 도시들에 상승하는 바다는 지역 일자리와 지역 산업에 필요한 기반시설을 위협한다. 해발고도가 낮은 섬나라들은 지구온난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또한 흡수하는 이산화탄소량이 증가하면서 바다가 산성화되고 있다. 이산화탄소가 물에 녹으며 탄산화 반응을 일으키고, 바닷물의 수소이온농도(pH)를 낮춰 바닷물의 산도를 증가시킨다.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된 최근 연구에 따르면, 산업혁명 이후 전 세계 해양 pH가 0.1 이상 떨어졌고,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지면 2100년에는 pH가 0.4 이상 떨어질 수 있다고 한다. 산성화된 바다는 조개류와 갑각류 등으로부터 칼슘을 빼앗아 껍데기에 구멍이 나거나 얇게 만든다. 수온 상승과 함께 산호초 표면이 하얗게 드러나는 산호 백화 현상의 원인이기도 하다. 해양 산성화는 바다 생태계와 생물 다양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최근 지구물리학 연구 회보(Geophysical Research Letters)에 발표된 한 연구를 보면, 바다의 이산화탄소 흡수 능력이 2100년께 절정에 달한 뒤 2300년이면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돼 있다. 연구팀은 바닷물의 알칼리도(Alkalinity)-산을 중화시키는 물의 용량으로, 산이 더해질 때 pH의 변화에 저항하는 물의 완충 능력-를 통해 바다의 이산화탄소 흡수 능력을 측정했다. 연구팀이 행한 기후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지구온난화가 지속될수록 바다의 표면이 더 따뜻한 담수로 덮이고, 아래층의 더 찬 알칼리성 해수와는 섞이지 않게 된다. 이때 표층수는 이산화탄소가 포화상태에 이르고 알칼리도는 떨어져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수 있는 능력도 저하된다. 결과적으로 표층수는 바닷물의 이산화탄소 흡수를 방해하는 장벽이 된다. 대기 중 온실가스를 더 많이 남겨 지구온난화를 가속하고, 이는 다시 바다의 이산화탄소 흡수력을 더 떨어뜨리는 악순환을 일으킨다.
연구팀은 이산화탄소 배출이 최악에 이르는 상황을 가정하고 시뮬레이션을 진행했고, 현재 지구촌에서 진행되는 온실가스 배출 저감 노력을 고려하면 실제 이런 지경에 이를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온실가스 배출이 감소하지 않고 인류의 노력이 구호에만 그친다면,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지구온난화의 위험이 본격화될 수 있는, 제동장치가 풀려버리는 티핑포인트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작아지는 연근해 고등어 지구온난화는 바다 생태계와 생물 다양성, 바다의 생산성에 영향을 미친다. 최근 부산대학교, 한양대학교, 전남대학교, 해양생태연구소 등의 국내 연구팀들이 국제학술지 JSME(해양 과학 및 공학 저널)에 게재한 연구들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우리나라 연근해 해양생태계의 생산성이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식물플랑크톤이 광합성을 통해 유기화합물을 생산하는 능력이 10년 전(2008~2009년)과 비교해 60% 수준으로 감소했다. 식물플랑크톤은 동물플랑크톤의 먹이가 된다. 식물플랑크톤 감소는 동물플랑크톤 소형화에 영향을 미치고, 상위 소비자인 어류의 소형화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우리나라 연근해에서 잡히는 고등어 등의 주요 어종에서 소형 물고기 비율이 높아지는 이유라고 이들은 설명했다.
무한히 받아주던 어머니 바다의 희생은 이제 한계점에 다다랐다. 칼 세이건은 보이저호가 해왕성을 지나며 마지막으로 촬영해 보낸 지구 사진을 두고 ‘창백하고 푸른 한 점’이라 말했다. 그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지구 표면의 70%를 차지하는 푸른색의 바다가 정말 창백해지려고 한다. 신음소리를 내는 어머니 바다에 이젠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봉석 JBS 수환경 R&C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