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이윤경 | 보약 같은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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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양산시 ‘꽃마실’

맛집 정보가 넘쳐나는데 믿고 갈 만한 식당은 찾기 어렵습니다. 낯선 지역이나 여행길에선 더 그렇지요. 그 지역에 아는 사람이 있다면 물어서라도 갈 텐데요. 열심히 검색을 해보지만 좀처럼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말 신뢰할 만한 맛집을 건져보기로 했습니다. 주간경향이 각계각층의 명사를 찾아 이름을 걸고 추천해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누구나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는 ‘인생 맛집’ 공개, 지금 시작합니다.

이윤경씨가 추천한 맛집 ‘꽃마실’의 내부 모습 / 이윤경 제공

이윤경씨가 추천한 맛집 ‘꽃마실’의 내부 모습 / 이윤경 제공

학창 시절부터 종종 일기를 썼다. 7년 전부터는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사진을 찍고 글을 썼다. 그렇게 탄생한 일기책이 벌써 스물두 권이나 된다. 나름 성실한 글쓰기를 해왔다고 자부하지만, 많은 사람이 보는 잡지 기고는 이번이 처음이다. 나만이 보는 일기책의 글쓰기와는 마음가짐부터 다를 수밖에 없다. 차원이 다른 공이 들어가야 할 것 같았다. 하루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은 겨우 3~4시간일 정도로 여유가 없는 내겐 더욱 무리다 싶었다. 부담도 되고 해서 처음엔 정중히 거절 의사를 밝혔다.

주간경향의 e메일을 받고 마음을 바꿨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편집장님 말마따나 요즘은 정말 맛집 아닌 곳을 찾기가 힘들 정도로 맛집 정보가 넘쳐난다. 맛집을 고르는 일 자체가 스트레스로 다가올 때가 있다. 그래도 명색이 ‘양산의 딸’을 자처하며 방송까지 나갔던 사람으로서 누군가 양산을 찾을 때 들러봄 직한 식당 한 곳 정도는 마땅히 알려드려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 <전국노래자랑> ‘양산편’ 출연 이후 경상남도 양산시청의 문화관광과 직원이 어쩜 저리 멋들어지게 가야금을 연주하며 민요인 ‘배 띄워라’를 부르는지 많은 분이 궁금해하셨다. 이 기회를 통해 말씀드리고 싶었다. 글을 잘 쓸 자신은 없지만, 나의 가장 큰 무기인 ‘솔직함’을 믿어보기로 했다. 오늘 소개할 맛집도 나의 솔직한 경험을 바탕으로 골랐다.

내 고향 경남 양산에서 내가 첫손에 꼽는 맛집은 바로 ‘꽃마실’(경상남도 양산시 화합3길 6-8)이라는, 차와 식사를 함께할 수 있는 작은 가게다. 지인을 따라 이 집에 처음 갔다. 가게 곳곳에 걸려 있는 좋은 글귀의 시가 눈길을 끌었다. 꽃을 닮은 듯 아리따운 주인분이 그 시를 직접 썼다고 했다. 손수 만든 꽃차를 비롯한 각종 차를 가게 한켠에서 전시·판매하고 있었다. 그 자체로 더할 나위 없이 향기로운 인테리어였다. 가게 안이 마치 따뜻한 봄날의 햇살을 머금은 듯 포근하게 느껴졌다. 밥을 먹기 전 목련차와 감귤 칩을 내주셨다. 사장님의 안내에 따라 팔팔 끓는 뜨거운 물을 찻잔에 먼저 붓고, 그 위에 말린 목련 한 송이를 넣었다. 말라 있던 목련꽃에 거짓말처럼 생명이 깃들기 시작했다. 황금빛으로 물든 차 한 모금을 찬찬히 음미하고 있을 때쯤 주문한 톳 비빔밥이 나왔다. 보기에도 아까운 알록달록 이쁜 꽃들로 장식한 비빔밥은 첫인상부터 합격이었다. 재료들이 신선했고, 맛도 좋았다. 평소보다 많은 양의 밥과 밑반찬을 남김없이 다 먹었다. 배가 불렀지만, 속은 편안했다. 실로 오랜만의 감동적인 식사였다.

시인 사장님께 여쭤봤다. 자연주의 음식을 지향한다는 이 가게에는 ‘없는 것’이 많았다. 첫째, 밑반찬을 비롯한 모든 요리에 조미료가 없다. 둘째, ‘알바생’이 없다. 사장님이 직접 모든 요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성 들여 만든다. 셋째, 당일에는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 최소 하루 전에는 예약해야 한다. 넷째, 식재료를 남기는 법이 없다. 당일 재료를 소진하면 그날 영업은 끝난다. 다섯째, 손님들의 불만이 없다. 맛부터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식사의 모든 과정이 평온하다. 시를 짓는 마음으로 밥을 짓기 때문 아닐까 싶다. 진솔한 시가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듯, 정성을 다한 음식은 손님들에게 감동을 주니까. 자연주의 음식을 향한 사장님의 올곧은 고집이 일상 속 지친 나의 몸과 마음에 언제 들러도 위로를 안겨준다.

이윤경씨 프로필 이미지

이윤경씨 프로필 이미지

고조할아버지 때부터 쭉 양산에서 살아온 양산 토박이 집안의 딸로 태어났다. 양산의 한 중학교 특기 적성 교육반에서 가야금을 처음 접했다. 중3 때였다. 취미활동으로 시작한 국악이 예술고등학교 진학으로 이어졌다. 가야금병창이라는 생소한 장르에 뛰어들었다. 그 어렵다는 중앙대학교 국악대학에 3년 만에 합격했다. 좋은 스승을 만나 많은 가르침을 받은 덕분이었다. 하지만 나보다 훨씬 뛰어났던 동기들 사이에서 점차 지쳐갔다. 대학교 생활은 쉼표가 없었다. 홀로 고군분투하던 그 과정이 때론 너무 힘들었다. “내가 좋아서 시작하겠다”고 했던 말에 책임지려고 더 이를 악물고 노력했던 것 같다. 멀리 떨어져 계시던, 형편이 넉넉지 못했던 부모님께 그나마 성적장학금을 받아 걱정을 덜어드렸던 걸로 위안을 삼았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국립국악단체 연주단원을 거쳐 서울의 한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해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이수자 시험을 봤다. 힘들 것이라는 주위의 예상을 깨고 당당히 합격했다. 가장 존경하는 스승인 안숙선 명인의 이수자가 됐다. 이후로도 서울에서 크고 작은 공연과 방송 출연, 강의 등을 하며 바쁘게 살았다. 어떠한 일들을 계기로, 늘 그 자리에서 따뜻하게 맞아주던 어머니 품속 같은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게 2018년이었다.

성공만을 좇아 살던 내 인생에 처음으로 쉼표가 생겼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통해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고 가치 있게 사는 것일까 고심했다. 내 고향의 문화예술 발전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올 초 양산시 문화관광과 소속 연구원으로 일할 기회를 얻었다. 양산의 문화예술인과 시민을 위한 관련 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하느라 다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전국노래자랑> 출연과 관련해선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양산의 문화예술을 널리 알리고 싶어 지원했지만, 입사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결과도 장담할 수 없어 시청엔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았다. 예심이 있던 날, 오전까지 근무하고 오후엔 반차를 썼다. 막판까지 참여를 망설였던 기억이 난다. 우여곡절 끝에 예심을 통과해 전파를 탔다. ‘최우수상’(1등)의 영예까지 거머쥐게 돼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소리 연습을 하면 목이 잘 쉰다. 요즘은 미세먼지까지 심해 비염이 왔다. 그런 점에서 따뜻한 목련차와 시인의 정성스러운 밥상이 더해진 식당 ‘꽃마실’은 내게 더없이 소중한 공간이다. 마치 자식을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이 담긴 집밥처럼 보약 같은 밥상을 맛볼 수 있는 곳이라고나 할까. 정성스레 짓는 밥과 시인의 시, 나의 노래와 일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주기 위함이다. 나의 노래와 지금의 일이 보다 많은 이들에게 보약이 되는 날까지 앞으로도 양산에서 우리 문화예술을 지켜갈 것이다. 양산 문화예술의 발전을 위한 하나의 발판이 될 수 있도록 늘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필자는 방송 무대에 올라 수많은 관객 앞에서 노래할 용기는 있어도 카톡에 사진 한 장, 짧은 글 한 줄 올리는 일에도 매우 신중한, 예스러운 감성의 소유자다. 노래할 땐 사뭇 다르다. <전국노래자랑>(2023년 3월 26일 방송)에 출연한 그의 당찬 표정과 구성지면서도 청아한 목소리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주간경향이 다짜고짜 섭외에 나선 배경이다.

<이윤경 양산시 문화관광과 소속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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