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저성과자’라면 해고해도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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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못 하느니 나오지 마세요”

①현대중공업은 사무연구직 과장급 이상 직원 3859명 중 2012~2014년 3년간 하위 2% 이내의 직무역량을 보인 직원 65명을 추려냈습니다. 다음 해에는 1년간 직무 재배치 교육을 실시했고, 2~3년에 걸쳐 직무경고·교육 이수를 했습니다. 직무교육에는 ‘창업 트렌드’, ‘편의점 사업의 이해’와 같은 창업교육과 독서과제, 소감문 작성도 포함됐습니다. 그런데 그중에도 2명한테 최저등급이 나왔습니다. 회사가 장기간에 걸쳐 선정한 2명(3859명 중 3857위, 3859위)을 해고했습니다.

서울 시내 한 빌딩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야근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빌딩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야근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②PIP(Productivity Improvement Program)는 SK하이닉스가 2013년 도입한 성과향상 프로그램입니다. 회사는 3년간 2회 이상 낮은 등급을 받은 직원 중 일부를 ‘성장한계인력’으로 선정하고, 10주간 역량향상 교육을 했습니다. 대기발령 상태에서 성과향상 계획서를 작성하고 복귀한 뒤 인사평가에서 일정 등급 이상을 받아야 합니다. 최하위 등급에는 경영성과급 중 PS(초과이익분배금)를 지급하지 않고, 성장한계인력으로 선정되면 PI(목표 달성장려금)도 지급되지 않습니다. 해당 근로자 4명은 해고를 위한 회사의 퇴출 목적 프로그램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노동법에는 저성과자 해고제도(업무 능력 결여, 근무 성적 부진을 이유로 한 해고), 저성과자 관리제가 없습니다. 법원에서 형성된 판례들은 1)취업규칙에 “근무 성적이 현저하게 불량한 경우”가 해고 사유로 규정돼 있고, 2)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실시하며, 3)상당기간(최소 3년) 일반적 기대보다 낮은 최소한에도 성과가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4)기회를 부여하고 재평가를 거쳐, 5)향후 개선될 가능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경우에 ‘모두’ 해당해야 매우 예외적으로 정당하다고 봅니다.

대법원은 2021년 현대중공업 사건에서 굉장히 이례적으로 저성과자 해고가 정당하다고 보았습니다. (1)취업규칙에 규정돼 있다면 근무 성적 불량 이유 해고가 가능하다, (2)나름대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인사평가를 했다, (3)직무 재배치 교육 후 실제 새로운 직에 배치하는 것으로 볼 때 직무교육이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지는 않다, (4)상당한 기간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최소한에도 미치지 못하고 향후에도 개선될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였습니다(대법원 2021. 2. 25. 선고 2018다253680 판결).

SK하이닉스 사건에서도 “PIP 프로그램은 회사가 상시적 구조조정을 위한 편법적인 수단으로 희망퇴직을 거부하는 근로자들을 퇴출하는 목적은 아니다”고 판단했습니다(2022다281194 확정).

‘저성과자 자동 해고’ 취업규칙 조항의 배신

하지만 저성과자 해고가 정당한 해고였다는 법원 판단을 받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오히려 저성과자 해고는 부당해고라는 판단이 원칙으로 보입니다.

K씨는 대선조선에서 18년간 장기근속한 근로자였습니다. 인사고과평가에서 A등급, B등급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2014년 하반기 인사고과평가에서 최하위 5%만 받는 D등급을 받았습니다. 2015년 1월 회사가 처음 실시한 업무역량과 리더십역량에 대한 다면평가에서도 총 35명 중 33위로 최하위 D등급을 받았습니다. 회사는 조직개편을 하면서 몇 개의 팀을 폐지했고, 2015년 2월에 인사평가의 불량을 이유로 K씨를 대기발령했습니다. K씨는 인터넷 없는 사무실에서 면벽 근무했습니다. 회사는 ‘경영위기 타개를 위한 연간 간접비 150억원 절감 방안을 제시하라’는 어려운 과제를 냈습니다.

회사는 3개월 계속해 업무수행평가에서 최하점을 받은 K씨에게 보직을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이 회사는 ‘사원이 무보직으로 3개월이 경과했을 때는 해고한다’는 자동 해고 취업규칙 규정이 있었습니다. 회사는 이 규정에 따라 원고를 해고했습니다. 모든 일이 불과 3개월 이내에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의 결말은 ‘1심 회사 승→2심 회사 승→3심 노동자 승’이었습니다. 노동자가 소송을 낸 지 무려 7년이 지난 시점에 1·2심을 뒤집고 이겼습니다.

취업규칙에 있는 저성과자 해고 조항을 근거로 해고했으니 그것만으로 정당하다고 할 것이 아니라는 취지입니다. ①근무 성적이나 근무 능력 부진이 어느 정도 지속됐는지, ②그 부진의 정도가 다른 근로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정도를 넘어 상당한 기간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최소한에도 미치지 못하는지, ③나아가 향후에도 개선될 가능성을 인정하기 어려운지, ④회사가 근로자에게 교육과 전환 배치 등 근무 성적이나 근무 능력 개선을 위한 기회를 충분히 부여했는지에 관해 제대로 심리하지 않았다는 취지입니다(대법원 2022. 9. 15. 선고 2018다251486 판결).

대법원 취지대로 환송심에서 노동자 승소로 확정되면 노동자는 회사로부터 대략 7~8년의 연봉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단 한 줄의 취업규칙 규정만을 믿고 해고한 회사가 치러야 할 대가가 큽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성과자 해고해도 부당해고 아닙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하지 말아야 할 일들

회사 입장에서 1)취업규칙에 있다는 이유로 해고해도 된다고 맹신하면 안 됩니다. 만약 취업규칙에 없으면 불이익 변경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취업규칙에 있다고 해도 법원의 통제를 받습니다(대선조선 사건). 2)독서, 소감문, (퇴사 후) 창업교육은 교육프로그램에 넣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창업교육은 희망퇴직을 권유하는 것이고, 독서·소감문 작성은 업무 능력과 관계없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현대중공업 사건). 3)1인 단독 평가, 상대평가 또는 개인적 감정에 따른 판단은 자제해야 합니다. 4)평가제도를 설계할 때 노조 등 노동자 측 의견을 배제하지 말아야 합니다. 법원은 “대상자 선정 방법 및 선정 절차, 프로그램의 내용, 평가 방법 등 전반적인 사항을 노사협의회에서 근로자위원 측과 협의해 결정했던 점”을 높게 평가했습니다(2014다31677). 5)무엇보다, 회사가 상당한 기간 계획도 없이 빨리 해고하지 말아야 합니다. “상당한 기간”을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현대중공업 사건에서는 총 6년(평가 3년+재교육 3년)이 걸렸습니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1)일단 부당한 인사평가나 인사발령에 대해 추후 한 번에 문제를 제기하려고 참는 것입니다. 그때그때 문제를 제기하는 게 좋을 수 있습니다. 이의제기 기간이 지나가 버리면 없었던 사실도 있었던 것처럼 확정될 때가 있습니다. 2)해고되면 다투겠다는 태도로 장기간 불성실한 근무를 하는 것입니다. 평가된 ‘근무 성적이나 근무 능력 불량’ 외에 추가적인 사정(예를 들면 손해 발생, 조직 기강 문란)이 없어도 해고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즉 징계해고가 아닌 통상해고만으로 실무상 해고될 수도 있습니다. 3)회사에 지나치게 적대적인 태도는 피해야 합니다. ‘여러 차례 업무향상계획서의 제출을 거부하기까지 하는’ 행위는 업무 능력 향상에 대한 열의가 없었다고 평가됐습니다(현대중공업 사건).

회사는 저성과자 해고를 통해 기업 질서를 확립하고 인건비를 줄일 수 있어 그 카드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해고된 근로자로서는 경제적 고통뿐만 아니라 ‘저성과자’ 또는 ‘부적격자’라는 사회적 평가까지도 감수해야 합니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인 만큼 법정 밖에서도 충분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한용현 법률사무소 해내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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