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AI와 종말, 저항,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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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도 신년사에 챗GPT를 사용했다고 한다. 인공지능은 우리가 잠든 사이 조용히 세상의 구조를 바꾸고 있다. 미국 빅테크 회사들은 챗GPT의 공개에 자극받아 오랫동안 준비 중이던 자신만의 인공지능을 공개하겠다는 포부를 밝혔고, 이에 따라 향후 IT업계의 지형도가 크게 변화할 것임은 분명하다. 단순히 몇몇 직업이 사라지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인간이 유일하게 우월하다고 믿었던 지성의 영역, 특히 텍스트를 읽고 이해하고 쓰는 능력에 기반을 둔 모든 인간 활동에 거대한 규모의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세상은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네이처’와 ‘사이언스’는 낡은 과학계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이익집단에 불과하다. 그들이 반대하는 챗GPT는 아마도 그들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파괴적 도구일지 모른다. 과학자들이 그 답을 찾길 바란다. 사진은 챗GPT 로고 / 연합뉴스

‘네이처’와 ‘사이언스’는 낡은 과학계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이익집단에 불과하다. 그들이 반대하는 챗GPT는 아마도 그들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파괴적 도구일지 모른다. 과학자들이 그 답을 찾길 바란다. 사진은 챗GPT 로고 / 연합뉴스

글쓰기의 종말과 교육의 저항 가장 먼저 위협을 느낀 직종은 교사들이었다. 적당한 주제와 질문만 주면 완벽하게 영어로 된 에세이를 써주는 인공지능의 탄생에 미국 교사들은 당혹감을 느꼈을 것이다. 학생들이 마음만 먹으면 더 이상 예전처럼 몇 시간씩 걸려 에세이를 쓸 필요가 없다. 게다가 인공지능이 쓴 글을 인간이 구분해낸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일까. 미국에서 가장 격렬하게 챗GPT의 등장에 저항하는 이들은 바로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들이다. 얼마 전엔 챗GPT로 쓴 글을 감식할 수 있는 또 다른 인공지능이 등장했다며 교사들이 환호하는 일도 있었다.

직업이 걸린 일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이해되지만, 인공지능의 발전을 영원히 거부할 수는 없다. 학생이 구글 검색과 문법 교정기를 숙제에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것처럼 인간이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지식을 모으고 분류하고 조합할 수 있는 인공지능 앞에서, 이제 현장의 교사는 보다 나은 인간을 교육하는 방식을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학생들이 인공지능을 이용해 자신이 내준 숙제를 쉽게 해결하는 행위를 막는 교사와 이 새로운 인공지능을 이용한 새로운 교육법을 고민하는 교사 중 누가 더 나은 선생님일까. 인공지능을 이용한 숙제를 막기 위해 손으로 쓴 에세이를 제출하라는 교사의 지시에 한 영민한 학생은 인공지능으로 쓴 글을 자신의 필체를 학습한 로봇에게 쓰게 해 제출했다고 한다. 답은 이미 주어졌다.

기득권의 저항과 과학의 희망 교사보다 더욱 곤경에 처한 사람들이 바로 읽고 쓰기를 직업으로 하는 교수들이다. 챗GPT는 철학 교수보다 훨씬 심도 있는 철학 에세이를 몇 초 만에 쓸 수 있다. 물론 인공지능이 작성한 에세이는 무미건조하며 심오하지 않다고 반박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 학문적 동료 몇 명을 빼면 아무도 읽지 않는 현학적 장광설에 불과해져 버린 논문을 쓰면서 교수직을 유지하는 사람보다, 차라리 인공지능이 생성한 ‘독해 가능한’ 문장들이 인류에게 더욱 필요할지 모를 일이다. 물론 소칼의 ‘지적 사기’ 사건 시절부터 존재했고, 최근 ‘한남충’ 논문으로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는, 난해한 텍스트 만들기가 철학의 본업이라 믿는 인문학자들은 인공지능이 결코 쓸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초현실주의 철학을 건설해나갈지도 모를 일이다.

거대 학술지출판사 또한 챗GPT의 등장에 심각한 우려를 표시했다. 네이처와 사이언스는 최근 사설을 통해 챗GPT와 같은 AI 도구는 “과학의 투명성을 위협하고 연구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없다”며 향후 “대규모 언어모델(LLM)은 연구논문의 저자로 인정될 수 없고, LLM을 사용할 경우 논문에 명시해야 한다”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흥미로운 반응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반응 뒤엔 집단의 이익이 놓여 있게 마련이다. 얼마 전 실시된 연구 결과 과학자들조차 챗GPT가 쓴 연구초록의 3분의 1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점이 드러났다. 이는 논문의 표절 등을 심사해야 하는 학술지 관계자들에겐 이익이 달린 사건일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을 가지고 교사의 머리 위에서 노는 학생들처럼, 이미 주위의 과학자 대부분은 챗GPT를 연구논문 작성은 물론 연구계획서 작성 등에 사용 중이다. ‘사이언스’는 사설에서 “궁극적으로 결과물은 우리 머릿속에 있는 멋진 컴퓨터에서 나와야 하고, 또 그것에 의해 표현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네이처’는 1869년, ‘사이언스’는 1880년 종이잡지로 시작한 학술지들이다. 특히 이들은 수백개가 넘는 학술지를 거느린 독점기업이다. 얼마 전 ‘네이처’엔 ‘혁신적이고 파괴적인 과학적 발견’이 사라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저자들은 그 이유가 경쟁적인 과학생태계 덕분에 과학자들이 파괴적인 연구보다 일자리 보존을 위한 안정적인 연구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런 환경을 만든 주범 중 하나가 ‘네이처’다. 그러니 이미 답은 나와 있는 셈이다. ‘네이처’와 ‘사이언스’는 낡은 과학계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이익집단에 불과하다. 그들이 반대하는 챗GPT는 아마도 그들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파괴적 도구로 쓰일지도 모른다. 과학자들이 그 답을 찾길 바란다.

글쓰기의 미래와 영어독점의 해체 챗GPT가 확실히 거대하게 바꾸고 있는 또 하나의 분야는 프로그래밍이다. 컴퓨터 언어를 사용하는 프로그래밍 분야는, 이미 격변에 가까운 변화에 직면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부동산 업자들은 이미 챗GPT를 이용해 매물을 소개하는 글을 자동으로 작성한다. 미국의 몇몇 신문사는 아예 챗GPT가 쓰는 기사를 제공하고 있다. 언어를 기반으로 하는 대부분의 직업은 변화가 불가피하다. 이미 내 연구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구글을 사용하는 검색은 여전히 필요하지만, 영어로 된 논문을 작성하는 데는 챗GPT가 훨씬 효과적이다. 물론 지나치게 평면적인 문장만을 생성하지만, 직접 수많은 논문을 읽을 필요가 없어 대강의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데 걸리던 시간이 확 줄었다. 정확한 참고문헌까지 제공하는 AI도 속속 등장하고 있어 이제 영어로 된 과학논문 작성에서 인공지능을 이용하지 않는 학자는 도태될 것이다. 챗GPT는 영어로 된 완벽한 문장을 만들어준다. 즉 논문을 제출할 때마다 영어교정이라는 굴욕을 겪던 비영어권 학자들은, 챗GPT라는 훌륭한 동반자를 만난 셈이다. 쓰고 싶은 글이 있어도 쓰지 못하고, 영어가 곧 권력이던 기존 학술계의 헤게모니에는 곧 균열이 일어날 것이다.

한국어로 된 텍스트는 영어에 비해 절대적으로 빈곤하다. 각국의 대규모 언어모델 인공지능 구축 경쟁에서, 한국은 뒤처져 있다. 뒤처졌다는 게 꼭 나쁜 건 아니다. 늦은 김에 좀더 새로운 생각을 해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문으로 쓰인 수많은 조선시대의 문헌과 가두리양식장에 갇힌 한국어 논문들을 인공지능과 연결한다면, 절망적인 한국 인문학에도 희망이란 게 조금은 생기지 않을까?

<김우재 낯선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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