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하지만 아닌 것’을 사이비(似而非)라고 한다. 무엇을 사이비라 부르려면 단순히 가짜가 아니라, ‘진짜인 척하는 가짜’여야 한다. 이미 공자와 맹자의 시절에도 향원처럼 사이비한 자들이 한 집단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인정됐다. 공자와 맹자가 사이비한 자들을 혐오한 이유는 그들이 “자신의 명예와 이익을 위해 세상을 어지럽힐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서구에는 사이비에 해당하는 단어로 ‘수도(pseudo)’가 있다. 근대과학의 발상지인 서양에선 과학과 과학이 아닌 것을 ‘구획’하는 문제가 철학의 오래된 고민이었다. 영어로는 ‘수도사이언스(pseudoscience)’, 우리말로는 ‘유사과학’ 혹은 ‘사이비과학’으로 번역되는 가짜 과학의 문제 또한 유사과학이 과학을 사칭해 공공에 피해를 입히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다.

해적학술지의 부흥은 과학생태계를 돈과 숫자의 노예로 만들어놓은 거대 학술출판사들의 만행이 낳은 괴물이다. 언론계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이 ‘사이비언론’이 던져준, 음모론에나 적합한 소재를 들고 국민을 우롱하거나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인용해 상대편을 비난하는 사태가 매일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다. / 김용민 화백
유사과학이론이 마치 과학적 권위가 있는 것처럼 포장해 대중을 현혹하는 행위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과학을 유사과학으로부터 수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유사과학의 유행은 사이비 집단이 한 사회의 건강성에 위협을 가하는 일종의 지표로 읽어야 한다. 사이비과학을 구분하는 가장 확실한 기준을 가진 과학에서조차 사이비가 창궐한다면, 사회의 다른 분야는 이미 사이비에 잠식됐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해적학술지 전성시대
지난 십수년간, 과학계는 해적학술지(pirates journal)라는 가짜학술지의 공격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해적학술지란 마치 정상적으로 학술논문을 출판하는 것처럼 포장했지만, 논문의 질보다 극단적인 상업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학술지들을 말한다. 해적학술지는 논문을 출판해야만 살아남는 과학자들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공간을 제공하며, 급속도로 성장해왔다. 얼마 전 뉴스타파에 의해 한국에서 터진 와셋·오믹스 사태는 그 일부일 뿐이다. 지금도 수많은 연구자가 해적학술지임을 모른 채, 혹은 알면서도 허술한 논문을 출판하고 있다. 그 대부분의 연구는 세금으로 지원된다. 해적학술지의 문제가 공공의 영역을 훼손하는 사이비의 문제인 이유다.
e메일로 매일 배달되는 논문 제목 아래엔 학술지 이름이 약어로 기록돼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들 중 상당수가 해적학술지이거나 MDPI, 힌다위(Hindawi), 프론티어(Frontiers) 계열의 학술지들처럼 건전한 학술지와 해적학술지의 경계에 놓인 곳에서 출판된다. 매일 배달되는 논문 중 이런 학술지 논문을 제거하고 나면, 그 양이 3분의 1로 줄어든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해적학술지들의 탐욕에 눈먼 돈잔치가 가관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프론티어 출판사는 185개, 힌다위는 250개, MDPI는 무려 418개의 학술지를 운영 중이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출판사가 수백개의 학술지를 만들어놓고 오직 논문투고료라는 이익만을 추구하는 상황에서, 학술지의 품질이 보장되길 바랄 수는 없다.
과학계 골칫거리가 된 사이비 학술지 시장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여러 원인을 지목할 수 있겠지만 과학출판만으로 좁혀 직접적인 원인을 거론하자면, 지난 수백년간 제도권 학술출판시장을 독점해왔던 엘스비어(Elsvier)나 네이처 슈프링어(Nature Springer) 같은 거대 학술출판사의 지독한 상업적 이익 추구 행위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이들 학술출판사는 SCI 임펙트 팩터(Impact Factor)라는 학술지 영향력지수를 이용해 과학자들의 경쟁을 부추긴다. 논문의 질보다 학술지의 영향력지수로 과학자의 성과를 평가하는 관행을 만들었고, 이에 동참한 대학과 정부의 삼각동맹은 과학자들 간의 무한경쟁을 가속화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냈다.
엘스비어나 네이처 슈프링어의 영업이익률이 애플을 상회한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 거대 학술지 출판사는 실질적으로 논문을 심사하는 심사자에게 단 한 푼의 심사료도 지급하지 않는다. 논문을 출판하는 연구자에겐 수백만원에 이르는 게재료를 징수한다. 신문이나 잡지에 글이 실리면 저자에게 원고료를 지급하는 게 정상적인 출판의 원칙이지만, 학술논문 출판에선 이 정상적 관행이 역전돼 있는 셈이다. 이렇게 돈이 되는 영역에 해적학술지들이 뛰어들지 않을 이유가 없다. 결국 해적학술지의 부흥은 학술출판의 공정한 관행을 위한 노력을 수백년 동안 방치하고, 과학생태계를 돈과 숫자의 노예로 만들어놓은 거대 학술출판사들의 만행이 낳은 괴물인 셈이다. 뻔히 보이는 제도권의 불공정과 부정의를 방치한 대가로 과학계는 해적학술지라는 도적 떼를 만났다. 이런 일은 과학계뿐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너무 자주 벌어지고 있다.
사이비 전성시대, 포퓰리즘의 말기적 현상
피 한방울로 수백가지 질병을 예측할 수 있다며, 수조원의 투자를 이끌어낸 테라노스의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스에게 얼마 전 징역 11년이 선고됐다. 권도형이 창립한 테라폼랩스는 테라와 루나라는 가상화폐를 만들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으나, 테라·루나 사태가 터지면서 그 화려함의 이면에 놓인 사이비함이 드러났다. 테라·루나 사태로 코인시장은 경색되기 시작했고 이번엔 FTX 사태가 터졌다. 한때 최고의 기업가로 촉망받던 샘 뱅크먼-프리드는 사임했고, 미국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이들 모두 기업가로 화려하게 데뷔했고, 대다수 투자자를 속였으며, 한때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오히려 엄청난 영웅으로 대우받았다.
얼마 전 대구시가 신천지예수교회의 대형집회를 허가했다고 한다. 정통 개신교에서 이단으로 취급하는 신천지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확산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당시 국민에게 위험한 집단으로 각인됐지만, 여전히 그 교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이유가 뭘까. 해적학술지와 같은 문제다. 기성종교가 종교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종교지도자라는 이들이 누구보다 치열하게 자본의 욕망을 추구하는 상황에서 신천지 같은 신흥종교가 부흥하고, 대중이 신천지라는 대안을 찾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제도권 체계가 오랫동안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사이비의 부흥은 필연적이다.
언론계도 마찬가지다. 진영과 정파에 종속된 ‘대안언론’이 대중의 폭발적인 환영을 받은 지 오래다. 이제 몇몇 언론은 자신들이 자경단처럼 도덕과 법을 초월한 정의를 추구한다며 대중을 동원하고 있다. 국회의원이 이런 ‘사이비언론’이 던져준, 음모론에나 적합한 소재를 들고 국민을 우롱하거나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인용해 상대편을 비난하는 사태가 매일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다. 사이비 전성시대는 포퓰리즘의 말기적 현상이다. 한국사회 여기저기서 사이비가 창궐하고 있지만, 우리에겐 백신이 없다.
<김우재 낯선 과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