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그들이 임금상승을 우려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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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인플레이션이 어디 있는가?’ 며칠 전 파이낸셜타임스의 칼럼 제목이다. 이 칼럼은 최근 인플레이션이 높지만, 임금상승이 그보다 낮아 실질임금이 하락했다고 지적한다. 여러 경제학자와 정책결정자는 지금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시기에 우려가 컸던 임금-물가 악순환을 걱정하고 있다. 이는 임금상승이 물가상승을 부추기고, 다시 임금상승으로 이어져 물가가 계속 높아지는 현상이다. 칼럼 필자는 정작 노동자들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꼬집었다.

사진/이준헌 기자

사진/이준헌 기자

실제로 국제노동기구의 세계임금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상반기 전 세계의 실질임금상승률이 전년 대비 -0.9%를 기록해 2021년 4.5%에 비해 크게 낮아졌다. 오랫동안 임금상승을 주도해온 중국을 제외하면 -1.4%로 더 낮았다. G20 국가만 보면 선진국이 -2.2%였고 신흥개도국은 0.8%였다. 북미지역은 -3.2%, EU는 -2.5%를 기록했고,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지역도 1.3%에 그쳤다. 특히 선진국에서는 노동생산성 상승에 실질임금 상승이 뒤처지는 격차가 2000년대 들어 가장 커져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노동자들의 몫이 하락했다. 이 기관은 2023년에도 인플레가 6.5%로 예상되는 현실에서 임금을 빠르게 인상하지 않으면 노동자들의 생활 수준이 악화할 것이라 우려한다. 따라서 정부는 최저임금인상 등 임금상승을 위해 노력하고 취약계층의 생활비 지원을 위한 정책을 펴야 한다고 강조한다.

명목임금상승률, 물가상승률보다 낮아 한국은 어떨까. 고용노동부의 사업체 노동력조사에 따르면 2022년 9월 상용근로자 1인 이상 사업체 전체 근로자의 명목임금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3.1%로 소비자물가상승률 5.6%에 비해 크게 낮았다. 이는 실질임금이 하락했음을 의미한다. 특히 300인 이상 사업체의 임금상승률은 5.5%였지만 300인 미만은 2.3%에 그쳐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상승이 더 낮았다. 한편 1분기의 임금상승률이 꽤 높아 2022년 1월에서 9월까지 누계자료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명목임금이 5.2% 상승했고 실질임금상승률은 0.1%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실질국내총생산의 성장률은 같은 기간 동안 약 2%를 기록했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기여한 생산성 상승과 비교하면 실질임금상승이 낮았고 노동소득분배는 하락했을 것이다.

결국 위의 칼럼도 지적하듯 현재는 전 세계가 실질임금 하락을 경험해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노동자들이 고통받고 있다. 국제통화기금이 10월 발표한 세계경제전망 보고서도 임금-물가 악순환의 가능성이 낮다는 결론을 제시한다. 이 연구는 선진국들의 과거 사례를 분석해 임금과 물가가 동시에 상승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지속되지는 않았다고 보고한다. 특히 1979년 2차 석유파동과 같이 현재와 비슷한 사례를 보면 소비자물가가 일시적으로 높아졌지만, 금리 인상으로 명목임금상승이 억제돼 실질임금이 하락했다. 따라서 역사적 경험과 현재의 통화정책을 고려하면 임금-물가 악순환이 나타날 위험은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과거와 달리 현재는 노동자들의 협상력이 낮아졌다는 현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난 5월 발표된 국제결제은행의 보고서는 1980년대 이후 노조조직률이 계속 하락했고 인플레이션이 임금상승으로 자동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줄어들었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임금협상에서 생활비 조정 조항이 임금협상에 반영되는 비율은 1970년대 말 약 60%에서 1990년대 말 약 20%로 하락했다. 또한 여러 거시경제학 연구는 최근에는 실업률이 낮은데도 인플레이션이 높아지지 않아 필립스곡선(명목임금상승률과 실업률은 반대로 움직인다는)이 사라졌고, 노동소득분배율이 계속 하락했던 이유로도 노동자들의 협상력 약화를 들고 있다.

팬데믹 이후 인플레 40%는 기업이윤 탓 물가는 올라가는데 임금이 그만큼 오르지 않는다면 기업이 이득을 보기 쉽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팬데믹 이후 2022년 7월까지 인플레이션의 약 40%가 기업이윤의 증가 때문이었고, 노동비용상승의 몫은 약 22%였다. 그 이전 40년 동안은 노동비용상승이 인플레에 62%나 되는 영향을 미친 것과 반대다. 연준 부의장 브레이너드도 한 연설에서 소매업과 자동차 판매업 등에서 임금상승보다 기업의 수익성이 크게 높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산업의 독점 심화는 기업들이 인플레가 높아지는 시기에 자신의 상품가격을 쉽게 올리고 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한국에서도 2021년 기업들의 수익성이 높아졌다. 정유회사들은 최근 큰 이익을 올렸다. 그렇다면 걱정해야 할 것은 오히려 이윤-물가 악순환이다. 기업의 독점력과 과도한 이윤을 억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유럽 각국은 이제 막대한 이익을 얻게 된 에너지기업에 횡재세를 매기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문제는 임금-물가 악순환의 가능성이 낮다면 인플레를 억제하기 위한 급속한 금리 인상이 잘못된 대응일 수 있다는 점이다. 중앙은행은 경제를 정체시켜 임금상승을 억제하고자 하지만 긴축정책은 노동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장기적 성장도 저해할 수 있다. 특히 현재와 같이 팬데믹과 전쟁 등 공급자 측 요인과 서비스에 비해 내구재 소비가 크게 확대된 부문별 불균형이 인플레의 중요한 요인이라면 수요만 억누르는 긴축정책은 인플레를 잡는 데도 한계가 클 것이다.

그럼에도 임금상승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크다. 연준 의장 파월은 최근 연설에서 명목임금상승률이 너무 높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노동시장의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미국은 최근 임금상승이 둔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실업률이 3.7%로 50년 만에 최저 수준이고 노동시장이 매우 타이트한 상황이다. 이는 팬데믹 이후 건강과 육아 등의 이유, 그리고 과도한 조기퇴직 증가로 인한 경제활동참가율 하락과 관련이 크다. 고령의 노동자들이 해고 이후 새로운 일자리를 찾지 못해 퇴직했고, 자산가격 상승으로 일찍 퇴직하는 노동자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한국은행도 2021년 이후에는 중간재 비용과 임금이 동시에 높아지고 있어 기업이 원가비용 상승을 흡수할 여력이 약화돼 임금상승이 가격에 전가되는 비율이 높아졌다고 보고한다.

과연 앞으로도 임금상승이 높게 지속되고, 그것이 물가를 자극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실질임금이 하락하는 데도 정책결정자들이 임금상승을 우려하는 것은 역시 거시경제학보다 정치경제학의 문제일 것이다. 한국처럼 높은 인플레 앞에서 임금상승을 억제하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아무래도 정부가 주로 기업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이는 노동자들의 삶을 악화시키고 저항을 심화시킬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계급과 분배 그리고 불평등의 문제였다. 인플레의 부담을 누가 질 것인가도 결국 계급 간의 갈등과 역학관계에 달려 있을 것이다.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학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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