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는 다음의 주장에 얼마나 찬성 또는 반대하십니까? “정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는 혜택을 줄여야 한다.” 한국사회종합조사에서 사람들에게 던지는 질문 중의 하나다. 얼마 전 발표된 2021년의 조사결과가 큰 충격을 주었다. 이 질문에 대해 반대하는 이들이 이전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전체 응답자 중 다소 반대와 매우 반대를 포함한 반대의 비율은 2009년 78.3%에서 2014년 65%, 2021년 31.3%로 낮아졌다. 찬성의 비율은 2009년 9.7%에서 2014년 12.8%, 그리고 2021년에는 27.4%로 높아졌고, 찬성도 반대도 아니다라는 응답의 비율도 2009년 11.4%에서 2021년 41.2%로 높아졌다. “소득 격차를 줄이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다”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찬성하는 비율이 2009년 74.9%에서 2021년 53.6%로 낮아졌다.
혹시 코로나19의 경험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영향은 불분명하다. 다른 조사에서는 팬데믹으로 소득이 줄어든 이들이 불평등 정도가 크다고 인식할수록 분배에 대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응답하고 소득재분배에 더 많이 찬성했기 때문이다.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s Survey)’ 결과도 이미 팬데믹 이전에 이러한 결과가 나타났음을 보여준다. 이 조사는 1981년부터 약 40년 동안 전 세계 사회과학자들이 참여하고 4~5년마다 결과를 발표한다. 그 문항 중 하나로 “소득이 더 평등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개인의 노력에 따라 더 차이가 나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응답자들은 이에 대해 평등에 대한 찬성의 정도가 가장 높으면 1이고, 그 반대이면 10으로 해서 1에서 10까지의 척도로 대답한다.
결과의 평등보다 격차를 지지하는 목소리 2010년 실시된 한국의 6차 조사에서는 이 질문에 대해 1에서 4까지 대답해 평등에 찬성한 사람들의 비율이 23.5%였다. 2018년 실시된 7차 조사에서는 그 비율이 12.4%로 크게 감소했다. 특히 1과 2라고 대답한 강한 찬성의 비율이 2010년 7.6%에서 2018년 1.2%로 대폭 줄어들었다. 반대로 7에서 10을 대답해 격차에 찬성한 비율은 6차 조사에서 58.7%였는데 7차에서는 64.8%로 높아졌다. 국제적으로 비교해보면 한국인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도 평등보다 불평등을 찬성하는 비율이 훨씬 높게 나타난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통합 실태 진단 및 대응 방안 연구’ 보고서도 “소득 격차를 줄이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라는 질문에 대한 동의 정도가 2017년 이후 매년 감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조사결과는 2010년대 중반 이후 한국에서 정부의 저소득층 지원과 소득재분배에 대해 찬성하는 목소리가 약해져 왔고, 결과의 평등보다 격차를 지지하는 경향이 더 높아졌음을 시사한다. 한국사회종합조사는 한국인의 주관인 계층의식에 관해서도 질문한다. 2년 단위로 실시하는 이 조사결과는 2014년 이후 주관적으로 스스로가 소득 상위계층이라 응답하는 비율이 계속 증가한 반면 하위계층이라 응답한 비율이 하락했다. 객관적으로는 상·하위 계층의 상대적 비율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이는 사람들의 생각의 변화를 보여준다. 자신이 하위계층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아무래도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복지확대에 찬성할 확률이 높을 것이다. 이를 고려하면 정부가 가난한 이들에게 주는 혜택을 줄여야 한다는 데 찬성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반대하는 이들이 크게 줄어든 현실을 이해할 만하다. 실제로 이 조사는 2년마다 정부지출 중에서 실업수당을 늘려야 하는지 아닌지에 관한 질문도 던진다. 2014년 이후 실업수당을 늘려야 한다는 응답의 비율도 계속 줄어들었다.
결국 한국사회에서는 사회적 연대에 기초한 정부의 소득재분배와 평등에 대한 지지가 2010년대 이후 크게 약화됐다. 이제 과거에 비해 더 많은 한국인이 가난이 사회구조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의 문제로 생각하며 자신이 실제보다 더 상위계층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의 생각이 그렇다면 정치에서도 보수적인 정당이 권력을 잡기 쉽고 경제와 복지정책이 더욱 보수적으로 되기 쉬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의 이러한 생각 변화가 현재 한국 정부가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사회복지 확대에 소극적인 1980년대의 낡은 경제정책을 펴는 배경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쩌다가 우리 사회와 사람들의 생각이 이렇게 됐는지 많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변화와 함께 불공정이나 기회의 불평등에 관한 불만은 더욱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가치관조사의 다른 질문에 따르면 노력하면 성공하는 대신 운이나 연줄이 있어야 성공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비율이 계속 증가해왔다. 일견 모순적으로 보이지만 이러한 사회 분위기가 결과의 평등 대신 노력에 대한 보상의 차이가 더 벌어져야 한다고 대답하는 이들이 많아진 이유일 수 있다. 즉 사람들은 개인의 노력에 대해 지금보다 더 많은 보상을 원해서 격차를 지지하고, 소득의 평등과 그를 위한 정부의 소득재분배에 대해서는 점점 더 반대하고 있다.
형식적 공정 추구가 불러올 불평등 악화 이러한 흐름은 아마 최근 몇 년 동안 널리 퍼진 불공정에 대한 반감이나 능력주의의 흐름이 강화된 현실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불평등이 심각하다 해도 그것이 불공정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결과의 불평등 개선보다 과정의 기계적 공정과 능력주의의 실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
실제로 청년들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나 입시제도 등을 둘러싸고 공정을 외치며 지난 정부에 등을 돌렸다. 물론 수능시험에 기반을 둔 대입제도의 결과가 오히려 고소득층에 유리하듯 형식적인 공정만 추구한다면 결과의 불평등과 부의 대물림을 악화시킬 수 있다. 또한 자신의 성공을 돕는 다른 사람들의 기여를 무시하는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는 불평등을 정당화할 우려가 크다.
그럼에도 소득분배의 개선에 반대하는 여론이 높다면 불평등과 싸우기 위한 정치적 노력이 약해지고 사회적 갈등은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의 2021년 국제적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빈부격차와 계급 사이의 갈등이 크다고 응답한 사람들의 비율이 세계 최고로 높았다. 한국인 91%가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의 갈등이 크다고 대답했고, 87%가 서로 다른 사회적 계급 사이의 갈등이 크다고 대답했다. 세계 평균은 각각 72%, 67%였다. 놀랍게도 정치적 지지, 교육 수준, 성별, 연령 그리고 심지어 종교에 따른 갈등이 크다고 대답한 비율도 한국이 세계에서 제일 높았다. 불평등으로 인한 갈등이 한국사회를 갈라지게 만들고 가난한 이들뿐 아니라 모두가 살기 힘겨운 곳으로 만들고 있다. 지금 한국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질문은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사회적 연대를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이다.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학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