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이후 미국에서 불평등이 심화됐다는 주장은 이제 상식에 가깝다. 가구의 서베이조사에 기초한 지니계수도 높아졌지만, 이러한 조사는 최상위소득층이 소득을 과소보고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피케티와 주크만 파리경제대학 교수, 사에즈 버클리대학 교수 등은 소득세 자료를 사용해 소득상위 1%나 상위 10%의 소득이 전체 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계산했다. 이들의 연구는 미국에서 상위 1%의 소득집중도가 1980년대 이후 크게 높아져 소득불평등이 악화됐음을 생생하게 보여 주목을 받았다.
상위 1% 소득집중도 상승 여부 논쟁
그러나 얼마 전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 학술지 중 하나인 ‘정치경제학 저널’이 게재를 결정한 논문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오텐과 스플린터의 연구인데 이들은 미국 상위 1%의 소득집중도가 별로 높아지지 않았다는 결과를 제시했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세전소득에서 상위 1% 집중도가 1960년 10.8%에서 2019년 19%로 크게 높아졌지만, 이들은 동기간 9.4%에서 13.8%로 높아졌다고 보고했고, 세후소득의 집중도 상승은 더욱 낮았다. 이 연구는 이미 몇 년 전 워킹페이퍼 형태로 발표됐고, 피케티 교수의 연구팀과 논쟁을 발전시켜왔다. 그런데 이번에 학술지에 게재돼 여러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으며, 다시 양측의 경제학자들이 논쟁을 벌이고 있다.
동일한 세금 자료를 사용한 두 연구의 결과가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제대로 신고되지 않은 사업소득이나 자본소득 그리고 정부소비 등의 소득분배를 추계하는 방법론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소득세 자료에 나타나는 소득은 국민계정의 국민소득을 모두 커버하지 못한다. 국민소득에는 세금신고가 되지 않은 상당 부분의 소득과 정부지출처럼 국민소득 계정에는 포함되지만 소득세 자료에는 나타나지 않는 소득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소득을 적절한 가정을 통해 소득계층별로 배분해 상위 1%나 10%의 소득집중도를 계산한다.
이중에서 탈세 등으로 소득세 자료에 신고되지 않은 소득이 어떻게 계층별로 분배돼 있는가 하는 가정의 차이가 가장 큰 차이를 가져왔다. 먼저 피케티 등의 기존 연구는 각 소득계층 집단이 비슷하게 탈세를 할 것이라고 생각해 미신고 소득이 세금 자료에 신고된 소득의 분배와 대략 동일하게 분배됐을 것이라 가정한다. 이 경우 탈세소득은 전체 소득분배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된다.
반면 오텐과 스플린터의 새로운 연구는 현실에서는 추적하기 어려운 탈세소득을 미국 국세청의 세무조사 자료를 사용해 소득계층별로 추산하고, 이를 세금 신고된 소득에 추가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세무조사 자료에 따르면 사업소득 신고에서 손실, 즉 마이너스 소득을 신고한 계층이 탈세를 한 경우가 많았다. 또한 신고소득과 미신고소득을 합친 진정한 사업소득의 상위 1% 사업소득 중 미신고소득은 약 20%대 초반으로 하위계층에 비해 훨씬 낮았다. 이런 방식으로 계산하면 사업소득 기준 상위 1%가 전체 미신고 사업소득의 16%만을 차지하고 하위 90%가 미신고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게 나타났다. 반면 기존의 연구에서는 신고된 사업소득 기준 상위 1% 계층이 탈세한 전체 사업소득의 약 절반을 차지했다. 저자들은 이렇게 탈세소득을 추정해 새롭게 소득분배 순위와 상위소득의 집중도를 계산했다. 하위계층의 탈세가 현실에서 상대적으로 더 컸기 때문에 이들의 방식은 상위 1%의 집중도를 낮추게 된다.
이렇게 세무조사에 기초한 자료를 사용하는 것이 일견 더욱 현실과 가깝다고 볼 수도 있다. 실제로 많은 개인사업자가 탈세를 위해 회계 부정을 통해 소득세신고에서는 사업소득을 마이너스로 신고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2010년대에 몇 년 동안 마이너스 소득을 보고한 바 있다. 피케티 등은 그러나 상위소득계층의 탈세가 정말 상대적으로 하위계층에 비해 더 적을 것인가에 의문을 제기한다. 무엇보다 최근에는 부자들이 여러 복잡한 기법을 사용해 세무조사와 세금을 회피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다. 가이튼 등의 2021년 연구는 더욱 발전된 방법론을 사용해 탈세소득을 추정해보면 기존의 세무조사 자료보다 고소득층이 탈세를 훨씬 더 많이 한다고 보고한다. 게다가 최근 수십 년 동안 상위 1% 등의 계층으로 부의 집중도는 지속적으로 높아졌는데 자본소득 집중도가 높아지지 않은 결과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한다. 오텐과 스플린터는 그러나 최근 부의 집중도가 높아졌다 해도 금리가 크게 낮아져 소득집중도 변화는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다고 반박한다. 또한 현실의 세무조사 결과와 달리 탈세 이후의 소득분배와 탈세된 소득의 소득분배를 동일하다고 가정하는 일이 오히려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한다.
또 다른 쟁점은 정부소비와 재정적자를 어떻게 소득계층별로 분배하느냐인데, 이는 세후소득 분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이전소득과 같은 경우는 명백하게 계층별로 얼마나 받는지 뚜렷하지만, 국방이나 경찰, 교육이나 교통과 같은 일반적인 정부소비는 재정적 소득은 아니지만 국민소득의 구성요소이므로 적절한 가정이 필요하다. 피케티 등의 연구는 정부지출의 혜택이 각 소득계층의 분배구조에 따라 동일하게 나누어진다고 가정한다. 따라서 정부지출이 소득분배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반면 새로운 연구는 교육과 같은 일반적인 정부지출은 소득재분배 역할을 하니 저소득층이 더 많은 혜택을 입는다고 가정한다. 그래서 정부소비의 절반은 모든 이에게 동일한 소득을 가져다줄 것으로 계산한다. 따라서 이를 감안한 상위소득 집중도가 기존 연구보다 상대적으로 낮아진다. 또한 새로운 연구는 재정적자도 이후에 100% 세금 인상으로 충당될 것이라고 가정한다. 이로 인해 세금을 많이 부담하는 고소득층의 소득이 크게 줄어들게 된다. 이 또한 상위소득 집중도를 낮추는 요인이다.
정치적 편향 개입될 수밖에 없어
결국 피게티 등의 기존 연구와 이를 비판하는 최근 연구 결과의 차이는 이러한 여러 가정의 차이에 기인한다. 노벨경제학상(2015년) 수상자인 디튼은 국민소득을 사용해 정확한 소득분배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는 때로는 정치적 편향이 개입되는 연구자 각자의 가정에 기초할 수밖에 없다고 썼다. 실제로 미국의 불평등 논쟁은 평행선을 달리기 쉽고, 언론이나 독자들은 보고 싶은 결과만 보려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역사적으로 불평등이 높아져 왔으며 부나 건강 등 여러 측면에서 불평등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소득불평등이 얼마나 심화됐는지에 관해서는 생산적인 논쟁이 계속 발전돼야 한다. 다만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이런 논쟁에서 한쪽 편만 옹호하며 한국에서도 불평등이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일이다.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학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