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정당한 권리 행사를 보복하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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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했으니 집에 들여앉혀라.”

“네가 알아서 설득해 집에 들여앉혀라. 네 마누라 계속 저렇게 놓아둘 것이냐. 다른 회사를 알아보라고 해라.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권고사직으로 처리해 퇴직금 더 나오게 하는 것밖에 없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전경 / 박민규 선임기자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전경 / 박민규 선임기자

어느 사내 커플이 결혼하자 회사 대표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남편 A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B)의 의사와 무관하게 별다른 업무를 부여하지 않고 전공과 관련 없는 연구부서로 인사발령을 내 B에게 불리한 조치를 했습니다. 결국 B가 퇴직했고, 남편 A까지도 퇴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999년 IMF 시절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부부 직원에 대해 수차례 명예퇴직을 종용하며 “그러지 않으면 남편들이 순환명령 휴직 대상자가 될 것이고, 그후 복직이 불투명하며 그들이 바로 정리해고 대상자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모두 762쌍의 사내부부 중 752쌍의 한쪽 배우자가 명예퇴직했고, 그중 여성이 91.5%였습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도 소개됐던 농협 사내부부 해고 사건입니다.

법원은 사내부부가 회사의 기망, 협박, 강요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사직원을 제출했다고 볼 수 없다고 봤습니다. 근로자가 유효한 사직을 한 것이고, 실질적인 정리해고가 아니라고 판결했습니다(대법원 2002다35379). 부당해고 판결을 기대했던 근로자들이 패소했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습니다. 시대가 조금 바뀌었습니다. 남자 또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불리한 조치를 하는 경우(예를 들면 위와 같이 사직을 강요하는 경우), 부당해고도 인정되고 형사처벌도 받는 사례가 늘었습니다.

위 A와 B 부부의 고소로 형사재판이 열렸습니다. 법원은 사장이 결혼을 이유로 근로자의 퇴직에서 남녀를 차별했다는 범죄사실 등으로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습니다(대전지방법원 2019고정641). 회사 대표가 약식명령 300만원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했는데, 정식재판에서 오히려 벌금이 3배 이상 늘었습니다. 대표의 죄질이 매우 좋지 않고, 여전히 반성도 전혀 하지 않고 있다고 봤습니다.

생경함에 대한 배려

롯데쇼핑에서 일하던 C는 원래 ‘발탁매니저(의류 등 비식품 코너)’였습니다. 발탁매니저는 필요할 때 대리급 사원에게 부여하는 임시직책입니다. C는 육아휴직 1년을 신청했다가 종료기간이 되자 복직을 신청했습니다. 그러자 회사는 C를 발탁매니저가 아닌 냉장냉동영업담당으로 발령냈습니다. 매니저보다 한 단계 낮은 직급입니다.

반발한 C는 소송을 냈습니다. 1·2심 법원은 ①육아휴직 전과 비교해 비슷한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고 ②휴직 전 수행했던 직책이 임시직책에 불과하다면 부당한 인사발령이 아니라고 판결했습니다. 월급이 낮아지지 않는다면 직급이 낮아져도 인사 재량권이 있다고 본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회사의 인사발령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기존 판결과 같았습니다. 1심부터 항소심까지 10개월이 걸렸습니다. 특히 항소심은 단 3개월 만에 신속히 종결됐습니다.

대법원이 2022년 육아휴직으로 인한 ‘불리한 처우’에 대한 혁신적인 판결을 선고했습니다. 대법원에 상고한 지 거의 6년 만입니다.

대법원은 남녀고용평등법상 육아휴직에 대한 ‘불리한 처우’를 전반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므로 (1)사업주는 육아휴직 사용 근로자에게 육아휴직을 이유로 업무상 또는 경제상의 불이익을 주지 않아야 하고 (2)복귀 후 맡게 될 업무나 직무가 육아휴직 이전과 현저히 달라짐에 따른 ‘생경함·두려움’ 등으로 육아휴직의 신청이나 종료 후 복귀 그 자체를 꺼리게 만드는 등 근로자로 하여금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육아휴직을 신청·사용함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아야 한다고 봤습니다(대법원 2022. 6. 30. 선고 2017두76005 판결: 파기환송).

다시 정리하면, 육아휴직 전후 실질적인 불이익(임금뿐만 아니라 ①업무상·경제상 불이익 ②업무·직무의 현저한 차이)이 없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매니저와 영업담당은 인사평가 권한 유무에 현저한 차이가 있었고, 발탁매니저로 일한 기간이 평균 39개월 정도라 그것이 임시직책에 불과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봤습니다.

특히 “생경함·두려움”은 노동 판결문에서 생소한 단어입니다. 회사가 어떻게 인사발령을 해야 하는지부터 노동자들이 생경함·두려움 없이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육아휴직을 신청하기에 이르기까지 세심하게 배려하도록 기준을 제시해 시대를 바꿔가고 있습니다.

※다만 대법원은 3개월 뒤 남양유업 광고팀장이던 직원을 육아휴직 뒤 팀원으로 배치한 사건에서는 롯데쇼핑 사건과는 달리 실질적 불이익이 없다고 판결했습니다(대법원 2022. 9. 16. 선고 2019두38571 판결, 한용현의 노동법 새겨보기(8) 부당한 인사발령, 소송 가능할까? 참고).

수준 높은 경영마인드를 위해

어느 중간관리자 D는 근로자들을 상대로 금원 납부를 강요하고, 수시로 욕설과 폭언을 했습니다. 피해근로자는 사업주 E에게 위 사실을 신고했는데, 사업주는 오히려 무단결근을 이유로 피해근로자가 원하지도 않는 타지역으로 전보했습니다. 법원은 사업주의 전보 발령을 근로자에 불리한 조치로 보았습니다. 근로자에 대한 배려와 높은 수준의 경영마인드를 주문하면서 E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비교적 높은 형을 선고했습니다.

“회사가 취한 개개의 조치를 살펴보면, 근로자에 대한 배려를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이는 이른바 피고인의 경영마인드라는 것이 현행 규범에 못 미치는 매우 낮은 수준으로 근로자를 대상화하고 인식하는 것에 기인한다. 피고인의 법정 태도와 진술에 비춰보면, 피고인의 근로자에 대한 낮은 수준의 인식은 언제든지 또 다른 가해자를 용인하고, 또 다른 다수의 피해자를 방치할 것이다.”(대법원 2022도4925의 하급심)

2019년 7월 16일 새로 만들어진 근로기준법 제76조의3 제6항은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신고한 근로자 및 피해근로자 등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합니다. 노동법상 정당한 권리(직장 내 괴롭힘 신고, 성희롱 신고, 육아휴직, 심지어 결혼)를 행사한 근로자에 대해 보복적인 불리한 처우(해고·사직 강요·부당 전보)를 금지하고 처벌하는 강력한 법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2019년 7월부터 2022년 6월까지 약 3년간, 노동청은 직장 내 괴롭힘 신고로 접수된 1만8906건 중 개선지도 2500건, 검찰 송치 292건, 기소 108건의 결과를 냈다고 합니다. 사내부부의 강제사직을, 육아휴직 후 복귀자의 생경함을, 괴롭힘 신고자에 대한 보복적 조치를 막기 위해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의미의, 강한 노동법이 발동되고 있습니다. 한층 높은 수준의 경영마인드가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한용현 법률사무소 해내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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