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채용시즌이 막바지에 달하고 있었습니다. 면접위원들은 2차 면접일정이 끝난 후 2차 면접 합격자들을 결정했습니다. 면접위원들은 2차 면접전형 합격자를 결정할 무렵, 갑자기 직장 근무 경력이 있는 일부 응시자들에 대해 평판조회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채용 면접을 진행 중인 구직자 / 김창길 기자
회사는 세평 절차, 방법, 기준 등을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 하루 만에 평판조회를 했습니다. 그나마 경력이 없는 지원자는 하지 않았습니다. 경력이 있는 지원자 A의 평판조회를 했습니다. 보고 내용 중에는 “A는 패기나 열정이 없고, 금융공학에 대한 전문지식이나 열정도 매우 부족해 XX은행 인사팀이라면 채용하지 않겠다고 함”이라는 다분히 주관적이고 악의적인 내용도 있었습니다(A의 금융공학 필기성적은 우수했고, 추후에 XX은행은 그런 사실도 없다고 확인했습니다). 회사는 평판조회(Reference Check) 중 긍정적인 평가는 임의로 누락시키고 부정적인 내용만 보고했습니다. 그 결과 A는 탈락했고, 경쟁자가 합격했습니다.
공정한 채용에 대한 지원자의 기대 평판조회는 지원자가 제출한 학력이나 경력을 검증하는 것도 있지만 자질, 적성, 업무 능력, 신뢰성, 경력, 성과, 대인관계, 이직 사유, 리더십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봅니다. 평판조회를 잘 활용하면 기업에는 효율적이지만, 지원자에게는 매우 민감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채용 예정 기관이 ①스스로 채용절차나 규정 등을 제정해 ②이를 공고하고 ③그에 따라 상당하게 절차를 진행해 ④응시자가 정해진 채용절차 중 중요한 대부분의 단계를 통과해 ⑤나머지 일부의 심사단계를 거쳐 채용을 상당한 정도로 기대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면, 그러한 응시자는 나머지 채용절차가 공정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인사권자가 갑자기 불공정한 평판조회를 실시해 지원자의 기대와 신뢰를 심각하게 침해했다면, 이는 불법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A가 법원에 손해배상청구를 하자, 법원은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채용절차에 관여한 피고(금감원)의 면접위원은 객관성과 공정성이 결여된 세평조회(평판조회)를 실시해 그 결과를 반영해 원고(지원자)의 객관적이고 공정한 채용절차에 대한 신뢰와 기대라는 법적 이익을 침해했다. 원고는 위와 같은 불법행위로 인해 직업의 선택 및 수행을 통한 인격권 실현 가능성에 커다란 타격을 입게 되는 등 정신적인 고통을 받았다고 봄이 상당하다. 따라서 피고는 이 사건 채용절차에 관여한 면접위원 등의 사용자로서 원고의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서울고법 2018나2073790 판결: 확정)
탈락했던 지원자 A의 손해배상금은 얼마로 책정됐을까요. 법원은 지원자에게 위자료 8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당시 채용 비리도 발견돼 이례적으로 높은 위자료가 책정됐습니다. 채용절차가 객관성·공정성을 상실한 채 자의적으로 운영되는 경우 그 불이익을 받은 지원자가 느낄 상대적 박탈감은 금전적인 배상으로도 쉽게 회복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 직원, 문제될 수 있습니다” 근로기준법 제40조(취업 방해의 금지)는 “누구든지 근로자의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비밀 기호 또는 명부를 작성·사용하거나 통신을 해서는 안 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블랙리스트’ 근로자의 취업에 불이익을 초래하는 것을 막기 위한 법입니다.
“4대 보험 미지급으로 사장을 신고했다. 어디를 가도 그럴 수 있으니 채용할 때 생각해봐라”라고 이야기했다가 벌금 30만원과 위자료 100만원을 선고받은 사건이 있었습니다(서울서부지법 2016나2714).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직원이 이직하려는 매장의 업주에게 원고의 취업에 방해가 되는 내용을 고지했고, 그로 인해 원고가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는 이유입니다.
회사 부사장이 다른 회사 대표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B영업사원 조심하세요. 2년 전 자기가 불법 영업한 내용을 고발해 현재 재판 진행 중입니다. 위에서 시켰다고 저(부사장)도 같이 재판받는 중입니다. 아직 진행 중이어서, 영업사원으로 쓰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해당 부사장은 취업방해 혐의로 검찰로부터 형사 기소됐습니다. 피고인(부사장) 입장에서는 B가 취업한 이후라 결국 무죄를 받았지만(대법원 2022. 5. 26. 선고 2019도18193 판결로 확정), B의 취업이 이틀 늦었다면 취업방해죄의 전과기록이 생길 수도 있었습니다.
주관적 의견에서 나아가, 객관적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해 지원자의 명예를 훼손한다면 형사상 명예훼손죄도 성립할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해 회사의 올바른 의사결정이 방해를 받았다면,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가 성립할 수도 있습니다.
평판조회 실시동의서 특정인에 대한 조직구성원으로서의 전반적인 의견, 평가, 평판조회의 내용도 개인정보에 해당합니다. 안전하게 평판조회를 실시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지원자의 서면 동의서를 받는 것인데, 그 내용에는 ①오로지 채용과 관련된 목적으로 쓰인다는 점 ②개인정보 보유기간 ③동의 또는 거부할 수 있다는 사실 ④수집 대상(업무 능력과 성과·대인관계·리더십 등) ⑤조회대상 ⑥채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시해야 합니다. 평판조회 실시동의서를 받았다면 법적 위험이 상당히 줄어듭니다.
평판조회 실시동의를 받지 않고 하면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1)전 회사의 인사담당자(개인정보보호법상 개인정보처리자)에게 평판조회를 받은 경우, ‘동의를 받지 않은 사정을 알고 개인정보를 제공받은 경우’(개인정보보호법 제18조, 제71조 제1호 위반)에 해당합니다. (2)평판조회를 제공한 기존 인사담당자는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한 자에 해당합니다. (3)평판조회를 제공받은 회사도 양벌규정에 따라 벌금형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제74조 제2항). (4)채용담당자가 기존 상사, 동료에게 평판조회를 받은 경우 인사담당자가 아닌 상사와 동료는 개인정보처리자는 아니지만, 과태료 부과 대상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제75조 제1항 제1호). (5)지원자의 사전 동의 없이 지원 사실을 알리며 평판조회를 하는 경우 비밀준수 의무 위반으로 손해배상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평판조회를 하려면 반드시 지원자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또 평판조회의 객관성·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절차, 방법, 기준을 정하고 실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 손해배상 또는 부당해고 소송, 각종 형사 절차에 휘말릴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한용현 법률사무소 해내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