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뒤틀린 풍경과 ‘대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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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영화제의 계절이다. 매주 국내 어딘가에서 영화제가 열린다. 한국에 영화제가 왜 이렇게 많냐는 푸념이 나올 법도 하다. 최근 몇몇 영화제가 한순간에 폐지되는 일도 있었다. 영화축제가 안착하려면 적잖은 시간이 필요한데 평가할 틈도 없이 지자체장의 교체만으로 다년간 쌓아온 노력과 성과가 증발해버리곤 한다. 하지만 정말 없어선 안 될 영화제들이 있다. 독립예술영화 중에도 비주류인 다큐멘터리에 꿋꿋이 정진해온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이하 ‘DMZdocs’)는 그중 첫손에 꼽을 만하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포스터 /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포스터 /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2022년 영화제는 포스터부터 의미심장하다. 영화축제와 무관해 보이는 흑백의 바닷가, 저 멀리 외딴 섬이 보이는 해변 풍경. 설명을 읽으면 순간 가슴이 철렁해진다. 제주의 무인도 ‘범섬’이다. 사진가가 서 있는 땅은 바로 ‘강정’ 해변이다. 우리가 어느새 기억에서 잊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누군가는 싸우고 문제가 지속되는 그 땅의 사연과 ‘대면’하게 만드는 포스터다. 그해 영화제의 얼굴이라 할 포스터부터 DMZdocs는 여타 행사와 차별화된다.

다른 영화제들이 ‘온라인’-‘온택트’-‘메타버스’ 같은 포스트 팬데믹 시대의 미래 경향에 치우칠 때 유독 DMZdocs는 ‘대면’을 전면적으로 내세운다. 철저히 우리가 사는 세계의 기본인 접촉과 대면에 집중하려는 태도다. 유행을 좇는 대신에 우직하게 근본을 놓치지 않는 고집이다. 이는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 장르의 원류와 통하는 방향이기에 DMZdocs의 정체성과 지향이 한눈에 드러나게 만든다. 영화제는 오는 9월 22일(목)부터 29일(목)까지 53개국 138편의 다큐멘터리를 소개한다. DMZdocs가 운영하는 OTT ‘VoDA’에서 그중 80여편을 온라인으로 소개하지만, 영화제 상영작들은 대부분 극장에서 관람하기에 최적화돼 있다. 현란한 고화질이나 특수효과가 아니라 지금 동시대 세계의 이면을 확인한다는 차원에서 첨단에 서 있는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소개하고픈 작품이 너무나 많다. 놓치면 다시 보기 힘들 기획들에 조금 더 애착이 간다. 국내외 다큐멘터리 거장들의 신작을 소개하는 ‘마스터즈’ 부문은 명불허전 그 자체다. 캄보디아 킬링필드 생존자로 20세기 제노사이드의 역사를 다양한 방식으로 이미지화해온 리티 판의 <에브리싱 윌 비 오케이>는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21세기 버전 우화로 재탄생시킨 에세이 필름이다. 세르히 로즈니차의 <키이우 재판>은 동유럽 근현대사에서 현재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역사적 성찰 작업 최신판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 학살 관련 전범재판 기록 필름을 발굴한 작업이다. 김동원의 <2차 송환>은 감독의 전작 <송환> 이후 남은 이들의 20여년 세월과 함께 미완의 분단모순 현실을 망각한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다.

‘DMZ-POV’(영화제의 시선) 부문은 다큐의 쟁점과 경향에 집중한 기획이다. 이 부문 3개 기획전은 모두 학구열을 불태우지만, 특히 <오가와 신스케: 다큐멘터리가 수확한 것들>은 일본 거장 오가와 신스케의 대표작이자 세계영화사에 기록된 <산리즈카> 7부작을 온전하게 관람할 전무후무한 기회다. 회자되긴 하지만 전편(全編)을 다 본 이는 거의 없는 ‘환상’의 고전을 영접할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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