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의 푸른 꿈을 펼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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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코로나19의 그림자가 우리 곁을 배회하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 완화 이후 국내 영화제들은 부침 속에서도 각자의 전망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중 다큐멘터리 전문 영화제로 시작부터 정체성을 유지해온 EBS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이하 ‘EIDF’)도 19회를 맞아 지난 2년간의 시련을 뒤로하고 변화된 상황에 조응할 태세를 착착 준비 중이다.

제19회 EBS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포스터 / EBS

제19회 EBS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포스터 / EBS

팬데믹 이후 영화제들의 공통된 화두는 ①온라인 상영 활성화 모색 ②영화제 기간 외에 일상화된 상영 플랫폼 확보 ③사전제작 지원 확대 ④오프라인 행사 접근성 강화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모색은 코로나19가 아니라도 당면한 과제였지만 대(大)역병이 인류 역사에서 급진적 변화를 강제했듯이 영화제 또한 격랑을 겪은 셈이다. 2022년 EIDF는 이런 흐름을 온전히 수용하고 미래의 영화제 모델을 모색하는 대표적인 예시라 할 수 있다.

온라인 상영이 지난 몇년간 유행했지만, 영화제 실무자들은 ‘필름 페스티벌(Film Festival)’의 특성을 살리기 힘든 해당 방식의 한계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럼에도 오프라인 행사에 참여하기 힘든 제약을 어느 정도 해소하고, 다양한 비주류 영화 접근성을 제공하는 차원에서 온라인 상영의 의의는 부정하지 않는다. 이런 추세에서 EIDF는 고유한 인프라를 확보한 강점을 극대화하려 시도한다. EBS 교육방송 채널을 1주일간 가동해 여전히 일반 대중에게 가장 수월한 접근법, 지상파 TV로 다양한 주제의 미개봉영화 소개와 함께 자체 다큐 전문 OTT인 ‘D-box’ 스트리밍을 병행해 온라인 상영의 효용을 극대화한다. D-box 활용은 영화제 기간을 넘어선 상영 플랫폼으로 이어진다. 상영작 섭외단계부터 온라인 플랫폼과 연계한 기획을 통해 영화제 기간에 작품을 놓쳐 발만 동동 구르던 이들에게 2차 기회 제공은 만만찮은 기회다. 영화제에서 좋은 작품을 만난 이들이 주변에 소개하고 싶어도 못 했던 아쉬움도 일정 부분 해결됐다.

EIDF는 자체 콘텐츠 제작 활성화 또한 주목한다. ‘K-DOCS’라는 명칭으로 인더스트리 부문을 대폭 확장했다. 국내외 연관단위와 함께 기획-제작-편집 맞춤형 제작지원은 ‘피치 프로그램’으로 일체화했고, 신인·기존 창작역량 활성화를 위한 네트워킹과 아카데미 등 교육 프로그램도 확충했다. ‘영화제’가 국내에 처음 등장했던 1990년대 중후반에 전문가들이 주목했던 기능, 제작과 배급, 상영으로 이어지는 순환계 허브 기능의 21세기 버전 모색이다.

여기까지 들으면 ‘변화의 물결은 어쩔 수 없구나’ 아쉬워할 이들이 생길 법하다. EIDF 외에도 많은 영화제가 상대적으로 오프라인 이벤트를 축소해가는 느낌이 짙어서일 테다. 19회 EIDF는 극장상영과 야외상영을 이원화해 두 마리 토끼를 노린다. 8월 25(목)부터 28(일)까지 광화문 에무시네마의 오프라인 상영은 소규모지만 ‘다큐 토크’, ‘북 토크’, ‘스페셜 스크리닝’, ‘나이트 스크리닝’ 등으로 세분화해 맞춤형 세공이 돋보인다. 우크라이나와 중동, 이창동의 영화 세계 등 테마가 만만찮다. 여기에 8월 25일(목)부터 27일(토)까지 사흘간 펼치는 일산호수공원 야외상영이 축제성을 극대화한다. 전후좌우 물샐 틈 없이 영화축제를 권하는 주최 측의 자신감이 엿보인다(상세정보는 www.eidf.co.kr/kor).

<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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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의 역경루
오늘을 생각한다
용산의 역경루
공손찬은 중국 후한 말 북방민족들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 정도로 위세를 떨쳤던 화북의 군벌이다. 오늘날 베이징 근처 유주를 근거지로 세력을 키웠던 공손찬은 백마의종이라는 막강한 기병대를 중심으로 황건적과 만리장성 넘어 이민족들을 토벌하며 군세를 넓혀갔다. 탁월한 군사적 재능을 갖췄으나 성품이 포악했던 공손찬은 폭정을 일삼으며 민심을 크게 잃는다. 왕찬이 기록한 <한말영웅기(漢末英雄記)>에 의하면 공손찬은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다는 이유로 부하를 죽이는가 하면 유능한 관료들을 쫓아내고 점쟁이를 측근에 등용하는 등 막장 행각을 벌였다. 하루는 백성들 사이에서 덕망 높았던 관리 유우를 저자에 세워놓고 ‘네가 천자가 될 인물이라면 비가 내릴 것이다’라고 말한 뒤 비가 내리지 않자 그 자리에서 죽여버렸다. 분개한 수만의 유주 백성들은 유우의 아들과 합세해 공손찬을 공격했고, 라이벌 원소와 이민족들까지 연합해 공격하니 공손찬은 고립무원에 처한다. 사방이 포위된 공손찬은 기주 역현에 거대한 요새를 짓고 농성에 들어가니 이 요새가 역경성이다. 자신의 남은 전력을 요새 건설에 쏟아부은 공손찬은 “300만석의 양곡을 다 먹고 나면 천하정세가 달라질 것이다”라고 말하고 외부와 연락을 끊은 채 향락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