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슬로푸드 활동가 임경호 “느린 음식을 이웃과 나누면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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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시 문발동에 사는 슬로푸드 활동가 임경호를 만났다. 그는 ‘활동가’이면서 ‘셰프’이며, 마을공동체 운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모범시민이다. 그를 칭찬하는 마을의 여론이 자자하다. 그런 인물이 항시 그러하듯, 그는 낙천적이고 긍정적이며 ‘관계지향적인’ 삶을 살았다.

임경호는 ‘슬로푸드 활동가’이면서 ‘셰프’이며, 마을 공동체 운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모범시민이다. / 주미영 작가

임경호는 ‘슬로푸드 활동가’이면서 ‘셰프’이며, 마을 공동체 운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모범시민이다. / 주미영 작가

그의 삶은 그러나 오랜 병마로 피폐했다. 2012년부터 말기 신부전증을 앓았다. 집에서 하루 4번씩 복막 투석을 해야 했다. 복강 내에 특수한 도관을 삽입해 투석액을 주입하고 배출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복막 투석은 한 번에 30분이 걸렸다. 토막 난 하루를 살아야 했다. 리듬이 끊어지는 일상을 8년이나 반복하다 보니, 그게 생활의 리듬이 됐다. 투석치료에 ‘병원놀이’란 이름을 붙였을 정도로 그는 낙천적으로 병마와 대적했다.

7년을 기다린 끝에 서광이 비쳤다. 2020년 극적인 신장 이식 수술을 통해 건강을 되찾았다. 그는 슬로푸드를 옹호하며, 건강한 음식을 요리하고 있다. 지금 그의 정체성은 어찌 보면 질병에 의해 형성됐다. 투병하면서도 그는 숨지 않았고, 이웃 사람과 교유하며 몸에 좋은 음식을 나눴다.

슬로푸드는 살아가는 방식 투병 중에도 자신의 외연을 서서히 확장하는 특이한 삶을 살았는데, 파주 문발동이 그 무대였다. 슬로푸드 운동을 이웃과 함께 작은 공동체에서 시작했다. 그의 새로운 삶의 특질이다. ‘운동’이란 거창한 타이틀을 붙이기에도 민망할 만큼 그의 생활은 ‘이웃 사람들’과 단단하게 밀착돼 있다. 그의 밥상 역시 우리의 오랜 식생활 전통과 굳게 결합해 있다. 올봄 어느 날 그는 이런 슬로푸드 일기를 썼다.

“현미와 보리로 지은 밥이 맛있게 잘 나왔다. 무를 채썰고 볶아 마지막에 들깻가루로 버무린 무나물은 언제 먹어도 편안한 맛이다. 어제 냉장고 속 자투리 채소를 모아 다시마, 표고 채수 내어 끓여두었던 된장국은 하루가 지나니 더욱 맛이 깊어졌다. 향긋한 참나물 고소하게 무치고, 남도의 자연산 돌김 구워 한상 차려 먹었다. 몸이 따뜻해지고 기운이 난다.”

슬로푸드는 그에게 대상이나 목표가 아니라 살아나가는 하나의 방식이나 과정에 가까운 것이다. 음식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음식을 만든 사람에게 감사하며, 음식을 음미하면서 먹는 것이 슬로푸드의 핵심이다. 임경호의 부연 설명에 의하면 그 의미는 이렇게 확장된다.

“생태와 환경을 파괴하지 않으며 깨끗한 음식, 맛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좋은 음식을 공정한 방식으로 모든 사람과 나누는 것이다. 농업과 축산, 생태환경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음식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생태적인 방식으로 환원하며, 음식을 생산하는 과정이 누군가를 착취하는 구조가 돼서는 안 된다.”

‘공정한 방식’을 강조한다는 측면에서 슬로푸드 운동은 자본주의 방식의 식품산업에 저항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패배할 운명’인 운동이라 할 수도 있지만, 그 운동이 궁극적으로 패배한다면 인류의 미래도 붕괴되고야 마는 절박한 몸부림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쁜 음식을 과도하게 먹는 습관, 비만과 질병, 경쟁과 속도를 추구하면서 창궐하는 패스트푸드, 버려지는 음식물로 인한 환경오염, 공장식 축산, 농약과 화학비료로 키운 농작물 등. 거대한 악순환의 파노라마가 매일 되풀이되고 있다. 임경호가 앓았던 질병, 만성 신부전증은 인류가 처한 고통의 축소판이다. 그 병의 속성을 임경호는 이렇게 설명했다.

“신부전증은 단백질 과잉과 스트레스 때문에 생기는 병이다. 단백질을 고기와 등식화하는 경향이 있지만 식물성 식품에도 좋은 단백질이 많다. 신부전증은 동물성 단백질과 지방의 과다 섭취로 발병한다. 몸에 축적되는 요소와 요산을 신장이 제대로 배출하지 못해 생기는 병이다. 돌이켜보면 식습관의 주도권이 내게 없었다. 학교급식과 외식, 배달음식과 야식이 병을 불렀다. 건강한 식단을 스스로 짜지 않고 외부에 의존하면 몸은 당연히 망가진다. 투병하면서 음식을 내가 만들어 먹어야겠다는 자각이 생겼다. 내게 슬로푸드는 관념적인 옹호가 아니었다. 죽음을 피하기 위해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지상과제로 다가왔다. 그게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파주로 이사 오게 된 내력이다.”

신장 이식 수술을 받고 임경호의 건강은 완연하게 좋아졌다. 음식 강의를 할 때 이론과 실습 양면에서 슬로푸드 정신의 핵심을 전파하고 있다. / 임경호 제공

신장 이식 수술을 받고 임경호의 건강은 완연하게 좋아졌다. 음식 강의를 할 때 이론과 실습 양면에서 슬로푸드 정신의 핵심을 전파하고 있다. / 임경호 제공

임경호는 대학을 기계공학과로 들어갔다. 나중에 취업을 생각해 ‘뭔지도 모르고’ 기계공학을 선택했다고 한다. 항공정비사나 엔지니어가 돈을 많이 번다는 풍문을 고교시절에 들었다는 것인데, 막상 기계공학과 수업이나 선배들의 취업 진로를 보니 그가 원하는 방향과 너무도 달랐다. 재미있는 일도, 꿈꾸던 진로도 아니었다. 군 복무 후 ‘미디어 공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대학원에 진학해 ‘미디어 아트’를 연구하며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공생명’ 예술작품을 분석하는 테마로 학위논문을 썼다.

“디지털 기술로 인공생명을 구현하거나, 생명 현상을 표현하는 예술작품을 만드는 일군의 작가들이 있다. 미디어 아트의 한 갈래인데, 그들의 작품을 분석하는 연구에 집중했다. 어려운 개념이지만 ‘상호작용성의 진화’라는 측면에서 관찰하고 논문을 썼다. 미래에는 인공생명체가 지금의 반려견과 반려묘처럼 일상에 흔히 존재할 수도 있으며, 그런 예측을 전제로 그 인공생명체와 미래 인류의 관련성을 따져보자는 연구였다. 미학적이면서도 사회과학적인 통찰이 필요한 테마였다. 논문을 시작할 때 생물학을 공부하느라 굉장히 힘들었다.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의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되풀이해 읽었던 기억이 있다.”

임경호가 읽은 린 마굴리스는 ‘공생진화론’이란 혁명적 이론으로 세계 생물학계를 뒤흔든 여걸이다. 그는 “지구상 모든 생명은 단 하나의 고리, ‘공생’으로 연결되며 나아가 그 공생은 새로운 개체성을 출현시킨다”고 주장했다. 진화의 동력이 ‘적자생존’이나 ‘약육강식’이 아닌 ‘공생’에 있다는 것이다.

임경호가 린 마굴리스에 경도된 측면은 ‘공생진화론’과 함께 그의 광대한 생명론에 있는 듯하다. 마굴리스가 생각하는 ‘생명’은 지구환경과 지구의 전 생명이 상호작용해 시시각각 살아 움직이는 전체, 즉 ‘가이아’ 개념과 맞닿아 있다. 실제로 마굴리스는 가이아 이론을 주창한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을 열렬하게 옹호했다.

가이아 이론은 지구를 스스로 변화에 적응하고 진화해나가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로 보는 이론이다. 임경호는 인터뷰에서 이 개념을 ‘전일론적 생명체’, 또는 ‘시스템적 생명관’으로 명명했다. 지구상의 생물은 지구의 바다·흙·공기를 변화시켜 자신들이 살아가기에 적당한 환경으로 만든다. 변화된 지구환경이 다시 생물들에게 영향을 주는 방식으로 지구와 생물이 함께 진화해나간다.

원 테이블 레스토랑에서의 추억 음식을 매개로 한 임경호의 ‘공생진화’, 이웃과의 소통과 교류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파주 교하의 넓은 아파트, 제주도에서의 고등어 요리가 그 단초가 됐다고 그는 회상한다.

“굉장히 넓고 좋은 아파트였다. 거실도 넓고 방도 3개나 있었으니 마치 콘도에 놀러온 기분이었다. 여기서 혼자 밥 먹는 것보다는 음식을 만들어 사람을 초대하는 공간으로 하면 재밌지 않을까 생각했다. 파주에 오기 직전 마음을 다스리려고 한 달 정도 제주도 여행을 한 적이 있다. 그때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렀는데, 동문시장에서 고등어 3마리를 사와 조림을 만들었다. 생물 고등어조림은 너무도 맛이 좋았다. 게스트하우스에 묵고 있던 사람들을 불러 같이 먹었는데, 다들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기쁘고 행복했다. 맛있는 음식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 그때 들었다.”

샐러드 드레싱을 만들고 있는 임경호. 좋은 식재료를 쓰는 원칙을 철저하게 고수한다.

샐러드 드레싱을 만들고 있는 임경호. 좋은 식재료를 쓰는 원칙을 철저하게 고수한다.

2013년부터 임경호가 자신의 아파트에서 ‘원 테이블 레스토랑’을 오픈한 것도 이런 느낌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연습하는 것처럼 소박하게, 소꿉장난처럼 시작했다. 파스타를 좋아했던 그는 ‘퓨전 이탈리아식’을 중심으로 식단을 만들었다. 9월 말쯤 오픈했는데 그때는 들깨 꽃대가 한창 올라올 시기였다. 들깨 꽃대 튀김을 했다.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다.

“애피타이저를 시작으로 제철 채소를 주재료로 한 수프, 샐러드와 함께 주요리와 파스타, 차와 디저트를 순서대로 올렸다. 포모도로(토마토) 파스타가 대표적인 메뉴다. 마트에서 구매한 소스로 만든 파스타와는 비교할 수 없는 맛이다. 이탈리아 가지 요리 ‘파르미지아노 디 멜란자네’도 자주 올렸다. 손님들이 가장 좋아했던 메뉴 중 하나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홈 파티를 할 때 빼놓지 않고 만드는 요리다. 가지를 얇게 썰어 토마토소스, 모차렐라 치즈와 파르미지아노 치즈가루를 뿌려 만드는 그라탱 요리다. 겨울에는 토마토소스가 베이스가 된 홍합찜을 올리기도 했다. 그 국물로는 리소토를 만들었다. 광어, 농어 등 흰살생선을 종이 포일로 싸서 굽는 카르토치오도 반응이 좋았다. 마치 찜처럼 부드러운 맛이 난다. 생선이 많이 필요할 때는 주로 서울 마포 망원동 수산시장을 이용했다. 제일 마지막 순서인 차를 포함해 6~7개의 코스요리를 차례로 테이블에 올렸다. 배부르게 먹었는데도 속이 편안하다는 감상이 많았다. 아마도 신선한 채식 위주의 메뉴였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원 테이블 레스토랑’은 2014년부터 시작해 2019년을 마지막으로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그만뒀다. 한 달 평균 2~4팀의 예약을 받아 상을 차렸다. 몸이 아픈 사람에게 특별한 음식을 대접하고 싶을 때, 결혼기념일, 연인들의 프러포즈, 만남 300일 기념 등 특별한 날에 ‘원 테이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메뉴는 임경호가 제안하고, 손님들이 수정했다. 주로 알레르기가 있는 재료를 빼는 정도로 메뉴의 수정이 이뤄졌다. 소·닭·돼지고기를 삼가는 ‘페스코 채식자’(육류는 먹지 않고 생선, 동물의 알, 유제품은 먹는 채식 유형) 식탁 위주로 메뉴를 짰기 때문에 고기요리는 먹을 수 없었다.

“당시 후지무라 야스유키의 책, <3만엔 비즈니스: 적게 일하고 더 행복하기>란 책을 읽고 공감하는 바가 컸다. 한 달에 6일 일하고 3만엔짜리 비즈니스를 3개 정도만 하는 스케줄이다. 나머지는 ‘돈이 들지 않는 놀이’, 다시 말해 자급자족의 생활을 실천하라는 메시지였다. 가족·친구·동료와 함께 살 집을 짓고, 먹을 채소와 곡물을 재배하고, 닭을 키우고, 사용할 에너지를 생산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라는 것이다. 실제로 당시 100만원이 넘지 않는 생활비로 한 달을 살았다. 2015년까지는 대학원 시간강사로 약간의 수입이 있었고, 그 이후에는 간간이 아르바이트를 했다. ‘원 테이블 레스토랑’은 이익이 나는 구조도 아니었고, 그럴 의도도 없었다.”

2013년부터 자신의 아파트에서 ‘원 테이블 레스토랑’을 오픈한 임경호는 ‘퓨전 이태리식’을 중심으로 식단을 만들었다. / 임경호 제공

2013년부터 자신의 아파트에서 ‘원 테이블 레스토랑’을 오픈한 임경호는 ‘퓨전 이태리식’을 중심으로 식단을 만들었다. / 임경호 제공

인터넷과 책만으로는 한계를 느끼면서 스승을 찾게 됐다. 그래서 만난 두 사람의 스승이 요리연구가 문성희와 이재련이다. <평화가 깃든 밥상>의 저자 문성희 선생에게는 죽을 중심으로 한 한상차림, ‘죽상차림’을 배웠다. 복막 투석을 해야 했기 때문에 그의 쿠킹 클래스(연희동)에는 정기적으로 참여할 수 없었다. 그때 배운 8가지 죽상차림은 그가 2020년 4월 신장 이식 수술 후 회복할 때 자주 해먹었던 음식이다. 죽 요리야말로 영혼을 위무하는 위대한 음식이란 점을 처음 알게 됐다. 이재련 선생에게는 매크로바이오틱(macrobiotic·제철음식을 뿌리부터 껍질까지 있는 그대로 먹는 식생활법) 음식 철학을 배웠다.

“이재련 선생은 생태적 관점이 확고했다. 음양오행, 일물전체, 신토불이가 그 철학의 요체다. 음양오행은 계절변화에 따른 식재료를 선택하라는 것뿐만 아니라 음양의 조화, 즉 음식과 몸의 밸런스를 중시하는 철학이다. 일물전체는 식재료의 껍질과 뿌리, 씨앗 등 전체를 온전하게 활용하라는 가르침이다. 신토불이는 사는 곳에서 가까운 지역에서 나는 재료를 사용하라는 전통적인 음식관이다. 현실적으로는 국내산 재료를 사용하라는 가르침이다.”

신장 이식 후 되찾은 건강 신장 이식 수술을 받고 그의 건강은 완연하게 좋아졌다. 모든 합병증이 일거에 사라졌다. 빈혈 증세가 없어져 무엇보다 좋다. 오르막길을 5분만 걸어도 주저앉던 증상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투석을 받지 않으니까 하루를 온전하게 살 수 있게 됐다. 시간의 제약에서 자유로워졌고, ‘결코 나을 수 없을 것’이란 절망감에서 해방됐다.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이 오랜 투병생활의 습관이었는데, 이제는 다가올 미래에 그가 할 일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임경호를 포함한 5명의 조합원이 참여하는 문발동 음식공방 협동조합도 오는 9월쯤 출범한다. 영업허가를 받는 등 준비가 한창이다. 토마토소스와 같은 소스류와 절임류, 수프류 등을 생산해 주민에게 판매하는 협동조합이다. 2개의 테이블을 놓고 임경호가 만드는 요리를 마을 사람들이 즐길 수도 있다. 쿠킹 클래스를 열어 슬로푸드의 이론과 실제를 주민과 함께 공유한다는 복안이다.

“슬로푸드 운동은 1986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됐다. 패스트푸드의 상징인 미국의 맥도날드가 로마에 진출하려 하자 반대운동이 벌어진 게 계기가 됐다. 슬로푸드는 먹거리를 생산하고 가공하는 방식과 관련된다. 이 운동 안에는 ‘슬로미트’라는 캠페인이 있다. 공장식 축산 환경에서 곡물사료만 먹인 돼지고기는 건강에 해롭다. 좋은 고기를 적게 먹어야 한다. 생산과 유통, 소비가 왜곡되면서 전 세계 가족농이 붕괴하고 있다. 미국에도 가족농이 도산하면서 농촌의 사망률 1위가 가족농의 자살이란 통계가 있다. 먹을 것이 넘쳐나지만, 먹을 것이 없는 세상이다. 이제 슬로푸드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사람은 ‘느린 음식’을 이웃과 나눌 때 가장 행복하다.”

<한기홍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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