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수학자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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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건>의 속편이 극장가를 강타하고 있다. 필자도 두 번 봤는데 다시 볼 때 20대 딸, 아들과 함께 갔다. 둘 다 대만족, 아주 재미있다고 한다. 1986년 첫 편을 봤는데 항공기와 선박에 관심 많던 공학도 시절이었다. 36년 만에 다시 만난 <탑건>은 ‘매버릭’이라는 주인공의 호출부호가 붙어 있다. ‘괴짜’라는 뜻이고, 주인공의 행동도 그렇다. 동기가 태평양함대사령부의 제독이 될 동안 그는 좌천을 거듭하며 대령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그는 현존하는 미 해군 최고 기량의 전투기 조종사다. 후배 탑건들에게 최고 난도의 임무에 성공하도록 가르치는 교관이 되는데 수업 첫날, 그는 이미 노후기종이 된 F-18 매뉴얼을 들고 들어가 쓰레기통에 처박는다.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 수학부 석학교수가 7월 5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필즈상 시상식에서 필즈상을 수상한 뒤 메달과 함께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연합뉴스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 수학부 석학교수가 7월 5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필즈상 시상식에서 필즈상을 수상한 뒤 메달과 함께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미 다 알고 있지? 그런데 적들도 다 알아. 그들이 모르는 것은 전투기가 아니라 너희 파일럿의 한계야.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에서 출발하자.” 이 말은 너희의 한계를 밖으로 밀어붙여 보겠다는 도전이다.

한국계 미국인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가 드디어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했다. 우리 수학계의 쾌거다. 그의 능력을 우리가 발굴하고, 키워냈는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그는 초·중·고를 국내에서 다녔지만, 고1 시절에 강압적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퇴했다. 검정고시를 치르고, 수능을 쳐 서울대에 입학해 수학이 아니라 물리천문학·수리과학을 전공했는데 낙제 과목이 많았다고 한다. 3학년 때 초빙돼온 일본인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에게서 대수기하학을 배우며 방향을 잡았다. 그의 추천으로 박사과정을 밟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길을 떠났고, 필즈상의 주인공이 됐다.

그런데 우리 언론은 그가 국내에서 공부한 ‘토종’임을 강조하고, ‘수포자’였다고 드라마를 쓰고 있다. 늦깎이로 수학의 세계에 입문한 것은 맞지만 허 교수 본인은 수포자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는, 우리 교육은 여기서 괴짜들, 다양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성찰과 각성이 필요하다. 아직까지 우리 교육은 계급적 표준화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계급적’은 부의 정도와 사회적 계층이 교육 양극화와 불공정을 심화하고 있다는 축약적 표현이다. ‘매버릭’이 없는 교육.

사실 성공한 중퇴자는 많다.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같은 유명 사업가는 물론 국내에는 문화 대통령 서태지와 대학을 포기하고 수능을 치지 않은 아이유까지 포함해볼 만하다. 비즈니스와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국한된 건 아니냐고? 그렇지 않다. 19세기부터 20세기를 관통해 지금까지 과학을 상징하는 인물인 아인슈타인은 엄격한 학문 세계의 스위스 취리히공대에서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 식탁 테이블을 머플러 삼아 목에 두르고 바이올린을 멋지게 연주하던 괴짜였다.

허 교수의 필즈상 소식에 떠오른 영화가 또 있으니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다. 사교육이 학교를 쥐락펴락하는 모순 속에서 순수하고 정직하게 갈등하는, 잠재력 있는 학생을 표류하는 망명 수학자가 살려낸다. 다시 <탑건: 매버릭>으로 돌아가면 그를 끝까지 지켜준 경쟁자이자 훨씬 출세한 아이스맨 톰 카잔스키 제독이 숨은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 후텁지근한 여름 날씨라 아이스맨이 더 좋아졌는지도 모르겠다.

<최영일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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