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파일럿, 달리 그리고 프롬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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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롬프트(prompt)라는 단어가 있다. 즉석이라는 형용사도 있지만 재촉하거나 일러준다는 동사도 있다. 프롬프터(prompter)라고 하면 연기 중인 배우에게 대사를 일러주는 사람을 뜻했다. 현대에는 발표자에게 대사를 일러주는 기계가 됐다. 프롬프터가 없으면 한마디도 못 한다는 정치인 덕에 우리에게도 친숙한 단어가 됐다. 한편 컴퓨터에서 프롬프트라고 하면 사용자의 입력을 지금 기다리고 있음을, 그러니까 명령을 재촉하는 상태 표시를 나타내는 말로 쓰였다. 검은 화면에 깜빡이던 ‘C:>?’의 추억을 모르더라도 검색창은 익숙한데, 이 모두 대표적인 프롬프트들이다.

DALL-E에게 “a knitted panda is swimming (털실로 짠 판다가 수영하고 있다”를 그려보게 했다. / DALL-E

DALL-E에게 “a knitted panda is swimming (털실로 짠 판다가 수영하고 있다”를 그려보게 했다. / DALL-E

그 어떤 프롬프트든 모두 원래 영단어가 지닌 뜻, 자극하거나 고무해 어떤 행동을 바로 유발한다는 뜻과 이어져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재촉받아 일을 처리하는 데는 익숙해도, 누군가를 재촉하는 일에는 서툴다. 검은 화면의 터미널에 명령어를 치는 일을 모두가 할 수는 없는 일. 더 쉬운 마우스와 터치가 생겨났다.

세상 모든 지식을 손끝 너머에 대령할 수 있는 시대지만, 적절한 검색어를 조합해 그 지식을 소환하는 수고를 하려 들지는 않는다. 한 번만 검색창에 쳐보면 드러나는 뻔한 가짜뉴스조차 우리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정보를 재촉하는 대신 정보를 그냥 남에게 옮기는 일은 더 쉽다. 깜빡이는 커서의 프롬프트는 내가 주인임을 일깨워주는 신호와도 같지만 불편하고 귀찮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 산하의 개발자 소셜 네트워크 깃허브가 기대작 ‘코파일럿’을 일반공개했다. 코파일럿이란 부조종사라는 뜻. 그 이름처럼 깃허브에 들어 있는, 온갖 소스코드로 학습한 초거대 인공지능이 내가 프로그래밍할 때 옆에서 참견하듯 끼어든다. 코드를 짜기 시작하면 다음 줄이 이러면 어떻겠냐고 제안하기도 하고, 아예 그 문단을 다 짜주기도 한다. 심지어 나는 주석으로 설명문만 한줄 쓰고 나머지를 부조종사에게 시킬 수도 있다. 노련한 개발자일수록 코파일럿의 도움도 더 세련돼진다. 어떻게 상대방에게 의도에 대한 힌트를 주는지 알고 있어서다. 그 덕에 이 콤비의 생산성은 자연스레 배가 된다.

이 코파일럿과 사실상 동일선상의 기술로 만들어진 또 하나의 초거대 인공지능은 그림에 재능이 있다. 달리(DALL-E)라는 이 시스템은 지금 베타 테스트 중이다. 말을 하면 이를 그림으로 그려준다. 하나의 프롬프트에 대해 여섯 작품씩 그려준다. 매번 성공하지는 않는다. 한가지 확실한 건, 말로 잘 일러줘야, 그러니까 잘 프롬프트 해야 잘 그려준다는 점이다.

인간은 커뮤니케이션으로 세상을 움직인다. 이제 그 대상이 사람에서 기계로 조금씩 바뀔 뿐이다. 말귀는 점점 밝아진다. 검색엔진도 초기에는 질의어를 데이터베이스의 색인에서 찾아주는 수준이었지만, 구글과 같은 고도의 검색엔진은 그 질의의 의도를 이해하고 검색 조건에 삽입한다. 이미 코파일럿이나 달리는 나보다 코드를 잘 짜고 그림도 잘 그린다. 다만 그 능력을 스스로 재촉해 발휘할 의지가 없을 뿐이다. 미래는 그렇게 타자를 재촉해 커뮤니케이션하는, 훌륭하게 프롬프트를 하는 이들에 의해 움직일 것만 같은데, 그들이 얼마나 필요한지는 잘 모르겠다.

<김국현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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