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과 ‘섬’을 잇는 옴니버스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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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립영화의 초창기 특징 중 대항언론의 기능을 빼놓을 수 없다. 주류언론이 외면하던 ‘현장’ 소식은 독립영화의 속보 영상을 통해 제한적이나마 알려질 수 있었다. 현재도 여전히 다큐멘터리의 창작자 일부는 관련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봄바람 프로젝트>는 그 최신 버전이다. 이 프로젝트는 지난 3월 15일부터 4월 30일까지 40일 동안 전국 투쟁현장에 연대 방문했던 ‘봄바람’ 순례에 미디어 활동가들이 결합해 추진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이후 최초로 재개된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 활동이다. 개별 작업으로 완성한 5분 전후 단편 다큐멘터리 18편에 부가해설 성격의 인터뷰와 개별 투쟁을 테마별로 묶은 브리지 영상을 추가한 옴니버스 방식의 장편화를 병행했다.

<봄바람 프로젝트> 홍보 웹포스터 / 봄바람미디어

<봄바람 프로젝트> 홍보 웹포스터 / 봄바람미디어

단편들은 5개 테마로 조합된다. ‘기후위기의 시대’는 에너지의 정의를 묻는 <원전 말고 사람>과 <삼척화력발전소- 석탄을 넘어서>, 밀양에서 출발해 뻗어나가는 고압 송전탑 경유지들의 사연을 담은 <밥과 탑>, 기업 중심 지역개발 구상의 위험을 알리는 <제로섬게임> 등을 묶었다. ‘빼앗긴 노동’은 코로나19 이후 1순위로 해고된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아픔을 녹인 <아시아나, KO>, 제목만으로도 내용이 보이는 <포크레인- 현대건설기계 사내하청 서진 노동자>, 육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제주 호텔의 비정규직 투쟁 <Hotel K>, 직접 고용을 촉구하는 한국장학재단 비정규직 상담원의 투쟁을 그린 <콜센터 노동자의 봄날> 등으로 엮었다.

‘있다, 잇다’는 여성-성소수자-장애인-야생동물의 생존권을 다룬다. 차별금지법 논쟁과 성소수자 혐오를 소재로 한 <걔의 혐오스러운 하루>, ‘백래시’ 전성기에 대응하는 여성주의 활동가의 각오를 찍은 <이어말하기>, 지역개발을 명분으로 산악 케이블카 공사를 강행하는 지자체에 반론하는 <지리산 동물 이야기>,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왜 계속하는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입장을 들은 <마도로스>를 차례로 소개한다. ‘기억 투쟁’은 잊히는 사회적 재난의 현재를 보여준다. <팽목, 기억>은 개발 추진과정에 눈엣가시가 된 기억보관소의 상황을, <From. 세월호&스텔라데이지호>는 해난사고 유가족들의 연대를 담았다. <코로나19 의료공백 1. 정유엽군 아버지 어머니>는 공공 의료체계의 허점을 다뤘다. ‘평화 연습’은 군사주의와 전쟁위기에 대한 장이다. 평택-군산 일대의 군사기지 확장 쟁점을 다룬 <마을, 바다, 기지>와 <평화로>, 사드 배치를 둘러싼 논란의 최신 상황을 살펴보는 <소성리 국가폭력의 시간들>이 대미를 장식한다. 급박한 제작일정에 단순한 인터뷰와 현장 영상을 결합한 형태가 대부분이지만 재연드라마 등 실험적 형식도 여러 군데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옴니버스는 하나의 ‘지도’다. 우리가 상상도 못 한 ‘현장-섬’들의 지도. 옴니버스 작업을 별도로 추진한 건 이 현장‘들’이 한국사회 모순의 실체를 역으로 형상화한다는 점, 그리고 소수자 투쟁은 서로 연결돼야만 한다는 절박함의 발로다. 옴니버스 <봄바람 프로젝트>는 지역 공동체 상영으로 시민과 만나고 있다. 독립영화의 고전적 배급형태를 유지하는 드문 유형이다. ‘퍼블릭 엑세스’ 정신 구현을 위해 유튜브 채널(youtu.be/v99-rwKVtlA)에 순차적으로 단편들을 공개하고 있다. 미디어 환경 변화에 충실히 대응하면서 ‘현장속보’ 기능을 이어가려는, 독립영화진영의 도전이다.

<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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