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화제를 모았던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가 지난 6월 12일 끝났다. 초호화 캐스팅에다 제주도를 관광지가 아닌 사람 사는 동네로 살린 점이 호평을 받았다. 무엇보다 실제 장애인 배우를 기용해 시혜적이지 않은 태도로 관련 소재를 담아낸 지점의 반향이 컸다. 그 주역으로 청각장애인 이소별 배우와 발달장애인 정은혜 배우가 화제의 중심에 섰다. 특히 정은혜 배우는 영화 <기생충>의 박명훈 배우 이후 최고의 ‘신 스틸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니얼굴> 포스터 / 네이버 영화
배우 활동도 병행하지만 실제 캐리커처 작가로 활동 중인 정은혜 배우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지난 6월 23일 개봉했다. 드라마보다 먼저 완성했지만 제작진의 히든카드로 비밀유지를 하다 보니 지각 개봉하게 됐다. 대신에 독립영화들이 개봉을 앞두고 고심하는 작품 홍보의 수고는 많이 덜어냈다. 그런 행운이 아니라도 영화 <니얼굴> 속 은혜씨는 충분히 매력이 넘치는 캐릭터다.
<우리들의 블루스> 이영희 캐릭터는 많은 부분 영화 속 은혜씨의 삶을 닮았다. 노희경 작가가 캐스팅 전 많은 대화를 하며 그의 사정에 공감했기 때문일 테다. 그런 취재의 깊이가 드라마의 감동을 낳았다. 장애인 가족을 둔 이들이 올린 다양한 후기를 봐도, 장애 문제를 온정이나 시혜가 아닌 우리 사회의 야만을 반성하고 그들의 시민권을 긍정하는 제작진의 태도가 뚜렷하게 묻어난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편견, 장애 당사자가 주인공이면 예상하는 신파나 절규는 등장하지 않지만, 은혜씨가 툭툭 던지는 말 한마디가 의미심장하다. 세상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활약하면서 점점 밝아지는 그의 표정은 그 자체로 장애인 정책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나침반이다. 장애인들도 시설이 아닌 사회 속에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영화를 완성한 원동력은 제작진과 주인공의 지난했던 삶이다. 서동일 감독은 은혜씨의 아빠다. 카메라 너머엔 항상 아빠가 있었다. 화면에 자주 등장하는 장차현실 작가는 엄마다. 작품에 자주 드러나진 않지만 그림을 그리기 전 은혜씨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가족은 은혜씨의 괴로움에 전염되고 있었다. 미술과 영화가 한 가족을 구했으니 예술의 효능이 이보다 더 잘 발휘될 수는 없다고 하겠다.
영화 개봉에 앞서 주인공의 화제성 덕분에 다양한 콘텐츠가 소개되고 있다. 유튜브 채널 <니얼굴 은혜씨>는 정은혜 작가와 소통하는 기본통로다. 드라마 출연 후 급속도로 구독자가 늘어난 해당 채널은 드라마와 영화 관련 비하인드 스토리는 물론 발달장애인 예술가의 일상을 누구나 엿볼 수 있게 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영상을 기반으로 한 콘텐츠가 쌓이면서 공감과 이해의 소우주를 점점 형성해가고 있다.
최근 신임 서울경찰청장이 기자간담회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출근길 시위에 “엄정한 법질서 확립이 시대적 과제”, “지구 끝까지 찾아가서라도 반드시 사법처리하겠다”고 선포했다. 그렇게 실정법 위반 여부를 따지기 전에 우리 사회가 지금껏 문제를 방치해온 과거의 평가와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대안이 시급한데 말이다. 관료주의와 예산문제가 가로막는 현안에 미디어 콘텐츠가 해낼 몫은 나날이 늘어만 간다. <우리들의 블루스>와 <니얼굴> 속 은혜씨는 그 영감의 작은 원천이 돼준다.
<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