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그라운드-그렇게 노라는 평범한 어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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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의 시점은 시작부터 끝까지 오로지 노라에게 맞춰져 있다. 단순히 노라가 이야기의 중심인물이란 의미만이 아니다. 상영시간 내내 카메라는 노라의 눈높이에서 움직임과 시선을 쫓고 피사체로서 노라가 등장하지 않는 화면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제목 플레이그라운드(Playground/ Un monde)

제작연도 2021

제작국 벨기에

상영시간 72분

장르 드라마

감독 로라 완델

출연 마야 반데베크, 군터 뒤레, 카림 레클로, 로라 베린덴

개봉 2022년 5월 25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해피송

해피송

지금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마치 세상이 끝난 것처럼 괴로운 때가 있었다. 과거의 고통은 현재에서 멀어질수록 거리와 비례해 가벼워진다. 하지만 과연 세상에 ‘별것 아닌 고통’이란 게 있을까? 또 개인의 고통은 타인과 함께할 때 정말 가벼워질 수 있을까? 2010년 개봉한 멕시코 영화 <노라 없는 5일>에서 한 현명한 랍비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각자의 짐을 짊어지고 산다네. 자네의 짐을 남에게 지우지 말게나.”

초등학교에 입학해 첫 등교하는 노라(마야 반데베크 분)가 교문 앞에서 울고 있다. 너무 무서워할 것 없다며 응원하는 인생선배이자 오빠인 아벨(군터 뒤레 분)의 품에 안긴 채. 차마 아빠의 손을 놓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는 노라를 보다 못한 선생님은 어쩔 수 없이 반강제로 노라를 교실로 이끈다. 아이는 끌려가면서도 걱정스럽게 자신을 바라보는 아빠의 모습을 연거푸 뒤돌아본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차츰 학교생활에 적응해가던 노라는 어느 날 오빠 아벨이 짓궂은 동급생들에게 놀림당하는 광경을 목격한다. 이후에도 힘없는 노라는 아벨이 시달리는 모습을 마주칠 때마다 걱정스럽게 바라볼 뿐이다. 단순한 장난처럼 보이던 아벨을 향한 폭력은 점차 심각해진다. 더 이상 두고 볼 수만 없다고 생각한 노라는 아빠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로 한다.

생존 위한 투지는 영혼을 잠식한다

국내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벨기에 영화 <플레이그라운드>는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가 겪는 나름의 인생역정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노라는 시간이 지날수록 학교생활에 적응해간다. 낯선 학교생활이 두려워 등교조차 겁내던 아이는 하나둘 친구를 사귀고, 놀이를 통해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자격을 검증받는다. 친구의 생일파티에 초대받기 위해 평균대 위에서 한계를 극복하기도 하고, 죽은 아이들이 놀이터 모래 밑에 묻혔다는 친구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기도 한다.

조직과 체계에 대한 적응이란 게 처음 교문을 들어설 때 가졌던 막연한 두려움을 극복해내는 정도로 단순히 끝나지는 않는다. 집단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켜 영역과 지위를 확장해나가고, 이에 걸림돌이 되는 대상이나 상황에 마주하게 될 때는 단호히 맞서야 한다. 자립의 성취가 단단해질수록 주변을 감싸고 있던 따스함은 사라져간다. 그렇게 아이는 어른이 돼간다.

카메라의 시점은 시작부터 끝까지 오로지 주인공인 꼬마 노라에게 맞춰져 있다. 단순히 노라가 이야기의 중심인물이란 의미만이 아니다. 실제 상영시간 내내 카메라는 노라의 눈높이에서 움직임과 시선을 쫓는다. 피사체로서 노라가 등장하지 않는 화면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분노와 원망마저 감싸 안는 따뜻한 위로

무대도 초등학교 안을 벗어나지 않는다. 72분의 길지 않은 상영시간 내내 수차례의 등하교 장면을 주기적으로 보여준다. 교실과 식당, 체육관, 수영장이 반복적으로 등장할 뿐이다.

사건의 전개 역시 노라의 입장에서 중요한 변화를 맞닥뜨리는 지점을 불규칙하게 나열한다. 여기에 더해 일체의 가공된 음악조차 없이 전개되는 영화의 특징은 마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듯하다. 날것의 긴장감으로 전환된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국내에도 두터운 팬을 확보한 감독 다르덴 형제가 떠오른다. 같은 벨기에 출신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나락으로 추락하며 고통받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면서도 마지막까지 한가닥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는 면에서 로라 완델 감독과 더 큰 공통분모를 찾게 된다.

실제로 로라 완델은 자신의 연출에 영향을 미친 선배감독 중 다르덴 형제의 비중이 컸음을 숨기지 않는다. 이외에도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브루노 뒤몽, 미카엘 하네케, 샹탈 애커만 등의 이름을 언급한다. 그들의 작품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의 시련을 다루지만, 그 안에서 역설적으로 드러나는 삶의 희망과 아름다움을 따뜻한 시선으로 놓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칸영화제를 비롯한 세계 영화제에서 다수의 수상을 한 <플레이그라운드>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부문에 벨기에 대표작으로 출품됐다.

벨기에가 낳고 칸이 사랑한 ‘다르덴 형제’

cinephil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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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덴 형제로 언급되는 장 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은 아녜스 바르다, 샹탈 아커만 등과 더불어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몇 안 되는 벨기에 출신의 형제 감독이다.

처음에 형제는 철강 산업도시의 영광이 사라진 후 시들어가는 고향마을과 이웃들을 응원하고 연대시키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 1970년대부터 수십여편의 다큐멘터리를 작업했기에 이후 극영화에서도 지속적으로 발견되는 사회적 이슈와 따뜻한 인간애는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첫 번째 극영화 <플러시>는 1986년에 만들었다. 한국 극장에 처음 소개된 작품은 2004년에 개봉한 <아들>(2002·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이다. 뒤이어 개봉한 <더 차일드>(2005·칸영화제 황금종려상), <로나의 침묵>(2008·칸영화제 각본상), <자전거 탄 소년>(2011·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등의 작품들 역시 뛰어난 작품성에다 연이은 칸영화제 수상 소식이 화제성으로 더해지면서 국내 관객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이 시기는 1990년대 유독 한국에서 과하게 폭발됐던 예술영화의 유행과 인기가 사그라지던 때였다. 다르덴 형제의 등장은 소위 시네필(Cinephile·영화 애호가를 의미하는 프랑스어) 사이에 새로운 기쁨과 활력이 됐다. 영화 좀 본다 하는 젊은이들은 좋아하는 감독으로 이들을 꼽는 경우가 많았고, 영화학과 학생들 작품의 상당수가 ‘다르덴 영화’ 형식을 교본으로 삼았다.

여전히 왕성한 창작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그들은 얼마 전 개최된 제75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을 통해 아홉 번째 장편영화인 <토리와 로키타>를 발표했다. 벨기에에 정착하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온 10대 청소년 2명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올해 하반기 전 세계 개봉을 앞두고 있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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