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애프터 양(AFTER YANG)
제작연도 2021
제작국 미국
상영시간 96분
장르 드라마
감독 코고나다
출연 콜린 파렐, 조디 터너 스미스, 저스틴 H. 민, 말레아 엠마 찬드로위자야
개봉 2022년 6월 1일
등급 전체관람가
수입/공동배급 ㈜왓챠
배급 ㈜영화특별시SMC
영화제 2021년 제74회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 초청 2022년 제38회 선댄스영화제 Alfred P. Sloan Feature Film Prize 수상 2022년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가까운 미래의 어느 날. 제이크, 키라, 미카 그리고 가족돌봄에 특화된 인간형 로봇 ‘양’은 월례 4인 가족 댄스대회에 참가한다. 스테이지가 올라갈수록 난이도는 올라가고, 전 세계에서 이 대회에 참가하고 있는 가족 중 동작이 틀린 가족은 몇천 단위로 탈락해간다.
제이크네 가족도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하고 탈락한다. 게임은 끝났는데 ‘양’은 계속 춤을 춘다. 고장난 것이다. 고장나기 전까지 양은 그저 편한 존재였다. 가족과 이야기도 나누고, 특히 어린아이인 미카에겐 ‘오빠’로 의지하는 존재였다.
‘미래’라고 하지만 부조리나 불평등, 생활고 등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 사회 나름의 애환은 있는 법. 이 인간형 로봇들은 ‘테크노’라고 불린다. 테크노들을 출시한 ‘형제자매회사’는 코어 기술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 사실 제이크에게 ‘양’ 구입은 무리였다. 오리지널 정품 ‘양’을 구입하지 않고 ‘보증된 리퍼’ 제품, 즉 다른 사람이 5일 동안 사용하고 반품한 제품을 구입했다. 보증기간이 아직 3년이 남아 있다고 믿는 그는 수리를 의뢰하려 차이나타운의 가게를 찾아간다. 이미 그 가게는 어항과 물고기를 파는 가게로 바뀐 지 오래다. ‘형제자매회사’의 공식인증 수리센터로 가져가 보지만 그 수리센터에서는 12가지 주요고장 증상만 다룬다. 역시 코어에 해당하는 부분은 고칠 수 없어 형제자매회사로 보내야 한다. 게다가 일단 들고 왔으면 진단비만 250달러를 내야 한다. 리퍼 제품이라든가, 본사가 인정하는 공식수리점, 그리고 터무니없는 서비스 비용…. 어떤 글로벌 스마트폰 기업이 생각나지 않는가. 시대의 총아를 받는 혁신제품이 휴머노이드로 넘어간 미래의 어떤 시점에도 그 글로벌 기업의 지탄받는 사업방식은 그대로 남은 모양이다.
고장난 로봇이 남긴 상실감
물론 영화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근미래에 빗댄 현실풍자가 아니다. 남겨진 세 가족은 어느날 갑자기 그들 곁에서 사라진 ‘양’의 부재로 상실감을 겪는다. ‘양’의 메모리를 보기 위해 제이크는 ‘테크노 박물관’을 방문한다. 거기서 ‘양’에 얽힌 비밀을 알게 된다. 휴머노이드 로봇 도입 역사의 초기엔 매일매일 짧게 ‘양’의 눈(정확히는 카메라일 것이다)에 남은 영상을 기록하게 돼 있었다. 사생활 보호 이슈로 이 기능이 사라졌지만, 구조가 간단한 ‘문화테크노 양’은 그 기록장치를 가지고 있는 초기모델이었다. 차이나타운에서 뒷거래로 구입한 그 휴머노이드는 사실 방대한 기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영화가 다루고 있는 주제는 뭘까. ‘존재의 유한성’과 ‘정체성’이다. 꽤 무겁고 철학적인 주제다. 지난 5월 16일 열린 시사회에 앞서 감독 코고나다의 인사 영상을 틀어줬다. 영화를 보면서 혹시 이 영화는 감독의 자전적 경험이 투여된 영화가 아닐까 생각했다. 다인종 사회인 미국에서 아시아계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수도 없이 곱씹은 흔적이 영화 곳곳에서 보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정체성은 보통 ‘마이너리티 정체성’이다. 아무리 성공하더라도 주류사회에는 절대 편입할 수 없는, 사회의 다수는 결코 눈치챌 수 없는 투명벽이 자신과 ‘그들’을 갈라놓고 있음을 살아가는 순간순간마다 온몸으로 실감할 수밖에 없는 그런 비주류의 삶.
휴머노이드에 투영된 비주류의 삶
그런 감독의 경험은 테크노 로봇 ‘양’에 투여된다. ‘4인 가족’의 일원이지만 한편으로 인간 가족 구성원으로 온전히 녹아들 수는 없다. 사람이라면 존재이유(Raison d’etre)에 대한 고민에 빠질 법도 한데, 이 로봇은 신념은 가질 수 없도록 프로그래밍돼 있다. 신념은 다른 말로 믿음이다. 논리적 근거가 없는, 다시 말해 1과 0의 숫자로 환원되지 않은 기본 전제다. 인간 감정의 상당수가 믿음에서 비롯된다. 사랑이 대표적이다. ‘양’이 남긴 기록(의인화해본다면 기억)을 살펴본 제이크는 이 휴머노이드가 자의식에 눈뜬 게 아닐까 생각하는 듯하다. 정말 그랬다면 테크노를 생산한 형제자매회사의 진짜 이름은 알고 봤더니 터미네이터를 만들어낸 스카이넷으로 바뀔 참이고.
영화에 깔린 기본 정서는 존재했던 이가 사라지면서 남은 공간의 슬픔 내지는 허무의 정서다(영화가 인용하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들에 기본적으로 깔린 정서다). 그가 천착하는 정체성이 한국계가 아닌 중국과 일본을 포함한 ‘동북아시아’라는 점이 흥미롭다. 감독의 개인사가 궁금하다.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노래는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2001) 주제곡 ‘글라이드(glide)’다. 영화의 엔딩에서 ‘양’을 그리워하며 미카는 ‘양’이 가르쳐 준 그 노래를 부른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소설이자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은 ‘양’이 입은 노란 티셔츠의 가슴 부분에 적혀 있다(사진). 제이크는 ‘양’이 기록하고 있는 과거 영상에서 그 티셔츠를 발견한다. 클럽에서 춤추는 에이다 옆에서 한 흑인 여성이 그 셔츠를 입고 있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 셔츠를 발견하는 순간 흐르는 음악은 다시 ‘글라이드’다. 이와이 슌지의 영화와 소설 그리고 주제곡은 단순히 기표로만 사용되고 있을까.
그렇지 않아 보인다. 앞서 이 영화가 모색하고 있는 테마 중 하나가 정체성이라고 했다. 노래 글라이드의 가사 “나는 ○○이 되고 싶어(I want to be…)”는 ‘정체성’의 관점에서는 뛰어넘을 수 없는 어떤 것이다. 동양인이 열심히 노력한다고 피부가 흰 백인이 될 수는 없다.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배려심을 가진 로봇이 현실세계에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될 수는 없고. 영화는 ‘양’의 친구 에이다의 입을 빌려 “그러니까, 양은 인간이 되고 싶었던 건가요”라고 묻는 제이크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정말 인간다운 질문이군요. 양은 자신이 중국인인지, 아시아인의 특징이 뭔지 항상 궁금해했어요. 미카에게 중국인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했고.” 그러니까 그 역시도 ‘차이니스 펀 팩트’(중국상식전문)에 특화된 문화테크노인 ‘양’ 자신의 정체성을 벗어나지 않은 행동이었다는 것이다. 양은 인간이 아니다. 코고나다라는 ‘아시아계’ 영화감독이 ‘평균적인 백인 미국인’이 아니듯.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