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과학적 사회’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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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당선됐다. 단일화를 통해 안철수 후보의 과학기술강국 어젠다가 윤석열 정부에서 구현될 가능성도 열렸다. 방향은 알 수 없지만, 과학기술은 윤석열-안철수 연합정부 체제에서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윤석열 정부의 과학기술

윤석열 당선인의 과학기술정책 중 가장 큰 특징은 현장전문가의 의견을 중시하겠다는 철학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대통령직속 과학기술위원회를 설립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재명·안철수 후보의 과학기술부총리제에 부정적이다. 과학기술부총리제는 현 과기정통부 장관에게 더 큰 권력을 쥐여주는 방식이고, 과학기술위원회는 청와대가 직접 과기정책의 사령탑이 되겠다는 의미다. 둘은 상당히 다르다.

과학기술인들의 오랜 바람에 더 가까이 다가간 방식은 과학기술위원회다. 백악관의 과학기술정책실이 미국 과학기술정책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기도 하다. 한국 과학기술의 새로운 질적 도약을 위한 싱크탱크가 필요한 시점에 관료들로 이뤄진 과기정통부에 권력을 더 쥐여주는 것보다는 대통령이 직접 과학기술정책의 방향성을 챙기는 것이 효율적이다. 특히 한국 과학기술의 정체 원인 중 하나가 고질적인 관료주의라는 점을 생각할 때, 과기부총리제는 혁신이 아니라 보신주의 정책만 양산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모든 후보 중 윤석열 당선인만 ‘과학기술에 바탕을 둔 국정 의사결정’이라는 철학을 정책에 명시했다. 문재인 정부와 탈원전을 두고 갈등했던 그는 “정치적 목적으로 과학기술정책을 흔드는 사태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점을 정책에 못 박았다. 그의 과기정책에는 지난 수십년 과학기술계가 애타게 부르짖던 염원이 여럿 담겼다. 우선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연구환경 조성’이라는 점을 정책기조에 명시했다. 쇼비즈니스 같은 과학기술정책 기조와 관료주의 속에 단 한 번도 이뤄지지 못했던 국정기조였다. 이 정책의 적은 과학기술 관료들이다. 한국 과학기술 관료들은 과학기술자를 인질로 삼아 자신의 성과를 채우는 집단으로 타락했다. 과연 윤석열 정부가 관료주의를 어떻게 극복하고, 기강을 세울지 지켜볼 일이다.

마지막으로 윤 당선인은 미래를 선도할 연구를 장기 지원하고, 특히 “청년 과학인을 위한 도전과 기회의 장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윤 당선인은 “신진 연구자를 위한 지원 확대”와 “청년이 중심이 되는 과학기술 연구 시스템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런 공약이 실제로 실현되길 바란다. 이미 연구경력의 정점을 지난 극소수의 과학자들에게 엄청난 연구비를 지원하면서, 노벨상을 목표로 삼는 한국의 기초과학연구원(IBS) 같은 연구소는, 윤석열 당선인의 과기정책과 결이 다르다. 윤 당선인이 정책을 실현해 IBS가 청년 과학기술인들이 모험적 연구에 매진하는 용광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대통령직속 과학기술위원회의 역할

정부의 정책은 정치적 의사결정의 일종이다. 그런 정치적 의사결정은 과학적 근거에 기반을 둬야 한다. 권력을 가진 집단의 의사결정이 과학적 근거를 따르지 않거나 왜곡한다면, 그 결과는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일 수 있고, 나아가 파시즘에 이를 수도 있다. 과학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은 보편주의, 집합주의, 무사무욕, 조직된 회의주의라는 4가지 규범이 과학자사회의 에토스(성격·관습)로 작동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그는 이런 과학적 에토스가 파시즘에 의해 위협받는 민주주의 사회를 이끌어갈 수 있는 새로운 원칙이라고 천명했다. 칼 포퍼 또한 과학의 개방성과 반증 가능성을 통해 과학의 가치가 열린 민주주의 사회의 핵심 가치가 돼야 한다는 머튼의 열망을 공유했다.

한때 과학지식의 상대성을 주장하던 과학사회학자 해리 콜린스는 30년간 중력파를 연구하는 물리학자들을 쫓아다니며 그들의 의사결정과정을 연구했고, 이를 <중력의 키스>라는 책으로 완성했다. 2015년 중력파를 공식적으로 검출한 그날, 미국 라이고 중력파 관측소에서 과학자들과 함께 환호했던 그는, 중력파 연구단의 유일한 비과학자였다. 그는 과학자사회를 인류학적으로 탐구하는 과정에서 과학을 “민주주의의 등대”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를 찾아냈다. 과학자사회가 “불확실성에 대처해 끊임없이 답을 찾아 시도하고 오류를 수정하고 증거에 기반해 토론하고 합의하며 상호 신뢰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학의 모습” 속에서, 콜린스는 민주주의의 원형을 찾았다. 과학자사회는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며 진리를 찾는 진실성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작은 사회였다.

콜린스는 로버트 에반스와 함께 그의 이런 생각을 <과학이 만드는 민주주의>라는 책으로 발표했다. ‘선택적 모더니즘’이란 우리가 과학의 가치를 선택함으로써 민주주의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믿음을 뜻한다. 그는 과학 속에서 “전문성 존중, 관찰 존중, 정직성, 진실성, 무사무욕, 보편주의, 조직된 회의주의, 반증과 개방성, 재연 가능성” 등의 가치들을 찾을 수 있고, 이런 가치를 비트겐슈타인이 지적한 ‘삶의 형식’으로 구현할 때, 브렉시트처럼 21세기 서구국가들에서 나타나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해결할 가능성이 열린다고 말했다. 콜린스가 책을 발표하고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됐다. 서구민주주의 국가들은 백신을 거부하는 시민사회의 저항 속에 당황했다. 어쩌면 선택적 모더니즘은 서구보다 동아시아에서 먼저 달성할 수 있는 목표인지 모른다.

나는 그런 사회를 ‘과학적 사회’라고 부른다. 과학에서 찾은 가치들이 삶의 양식이 되고, 그런 삶의 양식으로 민주주의가 더욱 건강해지는 사회에서, 우리는 더 이상 백신 반대론자들을 방치하거나 법으로 처벌하는 극단적 방법 외에도, 이들의 반대를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설득하고 숙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선택적 모더니즘의 관점에서 세월호 사태를 다룬 홍성욱은 세월호 사태에서 과학적 전문성을 발휘할 여지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고, 정치와 법이 과학기술의 영역을 훼손했음을 지적한다.

해리 콜린스는 현대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벌어지게 되는 과학기술과 정치를 둘러싼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부엉이’라는 그룹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부엉이는 고개를 좌우 180도로 돌릴 수 있다. 전문성을 지녔으면서도 기술적 문제를 정치적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게 돕는 존재들, 현장의 과학기술자들과 과학기술학자 그리고 전문성을 지닌 시민사회의 대표들이 바로 부엉이들이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정치적 판단이 기술적 판단을 왜곡하지 않기를 바라며, 부엉이들의 아름다운 회합을 좀 보고 싶다.

과학기술과 정치를 둘러싼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전문성을 지녔으면서도 기술적 문제를 정치적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게 돕는 존재들이 필요하다. 현장의 과학기술자들과 과학기술학자, 그리고 전문성을 지닌 시민사회의 대표들이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정치적 판단이 기술적 판단을 왜곡하지 않기를 바란다.

<김우재 낯선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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