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지난 연말 18개 성의 당서기를 교체했다. 가장 큰 특징은 대부분이 이공계 박사 전문가 출신이라는 점이다. 18명 중 15명이 이공계를 나왔고, 이들 중 13명이 석·박사 학위를 가진 현장 과학기술자 출신이다. 이들의 전공은 방위산업, 우주산업, 의료, 원자력 등으로 중국이 기술전쟁을 위해 투자하는 분야에 집중돼 있다. 인구 1200만의 쑤저우시에는 1971년생 차오루바오를 당서기로 임명하며 소위 ‘치링허우’라 불리는 1970년대생 정치지도자들의 등장을 알렸다. 아마도 이들이 시진핑 이후 최고지도자 후보가 될 것이다.

중국의 덩샤오핑, 후진타오, 시진핑 주석 모두 이공계 출신이다. 최근 항저우시 서기로 임명된 1970년생 류제도 이공계 박사다(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 / 경향신문 자료사진·연합뉴스·구이저우성 당위원회
2000년대 초반 한국이 이공계 위기론으로 시끄러울 때, 많은 과학기술자가 중국을 부러워했다. 중국 정부 지도층 대다수가 이공계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모두 공대 출신이고, 시진핑 주석도 칭화대 화학공학과를 나온 이공계 인재다. 시 주석이 공학에 강한 애착을 보인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2014년 한국을 처음 방문한 그는 서울대에서도 공과대학을 직접 지정해 단 한 번의 강연을 했다.
국내에서 이공계 위기론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중국처럼 이공계 정치지도자를 원하던 한국 과학기술계는 소망을 이루지 못했다. 한국의 이공계 대학원은 텅 비어가고 있다. 그 사이 물리학 박사로 독일의 최고 지도자가 된 메르켈 총리는 16년의 장기집권을 통해 독일을 세계 최고의 강국으로 올려놓고 퇴임했다. 중국은 어느새 한국을 가뿐히 넘어 미국과 과학기술패권을 다투는 초강대국으로 성장했다. 겨우 20년, 한국이 비웃던 중국의 과학기술력은 바로 그 20년 사이에 쫓아갈 수 없을 정도로 비약했다. 이제 누구도 중국의 과학기술굴기를 비웃지 않는다.
‘중리경문’과 중인계급
한국은 과학기술정책의 수립과정에서 과학기술자를 배제하는 유일한 국가다. 어쩌다 과학기술정책 관료의 대부분을 경제학·행정학·경영학 전공자로 채웠는지 모르지만, 박정희 시대 이후 한국의 과학기술정책은 이들 문과 출신의 과학기술정책 관료와 정치인들의 합작품이라고 봐도 된다. 물론 이들 사이에는 연구보다 정치에 더 관심이 많은 정치과학자가 하이에나처럼 몰려든다. 녹색성장, 창조경제, 4차 산업혁명은 모두 그런 정치과학자와 관료들이 정치인들에게 과학기술정책을 빙자해 헌사한 쇼비즈니스다.
그 과학기술 관료 중 일부는 이공계 위기를 겪으며 중국을 부러워하던 과학기술계에 대놓고 이렇게 말했다. “이러한 배경의 이해 없이 결과적인 현상에만 주목하며 중국의 예와 한국의 예를 비교하는 것은 이공계 위기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 진단에 큰 오류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를 요한다.” 2004년 박희제가 쓴 ‘중국의 이공계 강세 현상에 대한 고찰’이라는 논문의 문장이다. 박희제는 위스콘신 주립대 사회학 박사다. 서울대에서 중국 국무원 연구로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은 김윤권은 ‘중국 기술관료의 형성과 변화’라는 2010년 논문에서 “그러나 주의할 점은 조삼모사식이나 대증요법식의 이공계 혹은 문과 중심의 우대정책을 추진한다면, 작금의 이공계 기피나 문과 출신 공직 구성 비율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썼다.
그들의 분석이 틀렸다는 뜻이 아니다. 중국은 1950년대 문과를 중요시하고 이과와 공과를 경시하던 중국교육의 전통과 철저히 결별하기 위해 ‘중리경문(重理輕文)’, 즉 이과를 중요시하고 문과를 경시하는 정책을 펼쳐나갔고, 1960년대 시작한 문화대혁명과 맞물려 중국에서 인문사회학 계열의 학문이 위축될 수밖에 없었던 독특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박희제도, 김윤권도 중국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한국에 이공계 우대 정책을 펴는 건 위험하다는 신중한 조언을 논문에 담았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2000년대 초반 한국이 중국의 흉내라도 냈더라면, 어쩌면 우리는 시진핑이나 메르켈처럼 이공계 출신이면서 당당하게 변호사, 검사와 대통령 권력을 두고 겨루는 정치인을 마주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중국의 이공계 출신 정치지도자를 부러워하던 한국의 과학기술계는 이공계 출신 정치인을 배출하지 못했다. 각 선거캠프에서 메타버스, 인공지능, 디지털 대전환 같은 화려한 과학기술 용어가 등장하고 있지만, 과학기술자가 그 공약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과학사가 박성래의 말처럼 여전히 한국에서 과학기술자란 양반 눈치나 보며 자기 배나 부르면 만족하는 중인세력일 뿐이다.
현능정치가 주는 교훈
캐나다의 정치학자 다니엘 벨은 <차이나 모델: 중국의 정치지도자들은 왜 유능한가>라는 책에서 중국의 독특한 정치체제를 ‘현능(賢能)정치’라고 불렀다. 현능정치란 능력뿐만 아니라 덕성을 가진 정치지도자를 선발하는 중국식 정치적 능력주의를 뜻한다. 이 책은 서구민주주의 체제와 다른 중국 정치체제의 정당성을 찾지 못하던 중국 학계에 단비가 됐고, 중국의 지식인들은 벨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현능정치라는 개념으로 중국식 정치체제의 합법성을 이론화했다.
중국에서 현능정치가 작동하는 이유도, 현능정치가 과연 민주주의보다 우월한 체제인지 여부도 아직 확실하게 판명 나지 않았지만, 적어도 중국이 정치관료들을 양성하는 시스템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다. 중국에서 최고 정치지도자가 되는 과정은 치열한 경쟁의 연속이다. 700만명의 영도간부 중 성부급에 이르는 사람은 14만분의 1에 불과하고, 이들 중 극소수만이 정치국원 25인에 들게 된다. 이 과정에서 모든 정치관료는 풍부한 현장경험을 지닌 전문가가 된다. 벨은 바로 이런 정치관료의 훈련시스템이 중국식 현능정치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흔히 한국의 혁신을 가로막는 가장 큰 방해물이 관료주의라고 한다. 혁신이 일상인 과학기술 분야에서 관료주의는 어마어마한 독이다. 과학기술 분야만큼 중국식 현능주의 모델의 관료를 뽑는 일이 절실한 분야도 없다. 과학기술계 현장의 다양한 경험이 정책의 곳곳에 스며들 때, 한국의 과학기술은 다시 중국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다니엘 벨의 책은 ‘대의민주주의의 덫과 현능정치의 도전’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그는 선거민주주의를 최선의 정치체제로 숭배하는 서구의 지식인들과 시민들에게 세계를 좋은 민주체제와 나쁜 집권체제로 나누는 것의 문제점을 알리려 했다. 히틀러도 트럼프도 모두 선거로 뽑힌 정치지도자였다. 서구식 민주화에 성공하고도 역대 최악의 비호감 선거를 치르고 있는 한국은 과연 정말 중국의 현능주의에서 아무것도 배울 게 없을까?
<김우재 낯선 과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