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행성대를 소재로 한 과학소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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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행성대로의 우주여행에서 얻는 것들

과학자들은 소행성대를 인류가 우주에서 다양한 지하자원을 손쉽게 얻게 될 보급원으로 여긴다. 지구나 화성처럼 중력우물을 헤쳐 나오느라 천문학적인 연료를 쓰지 않아도 되고 화성과 목성 사이 고루 분포해 있어 보다 먼 외계로 나아가는 데 징검다리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제까지 알아낸 파편적인 정보만으로도 이 꼬맹이 천체에서 우주선 제작에 쓸 광물자원과 연료 그리고 물을 조달한다는 발상이 전혀 뜬금없지만은 않다. 2019년 미국 무인탐사선 ‘오시리스-렉스’가 소행성 ‘베누’에서 그리고 2020년 일본 무인탐사선 ‘하야부사2’가 소행성 ‘류구’에서 암석 파편과 흙을 채취해 지구로 가져왔다. 2029년에는 소행성 ‘아포피스’가 지구에서 불과 3만1000㎞ 떨어진 곳까지 접근하기에 한국천문연구원 또한 탐사선을 띄울 예정이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소행성 탐사선 오시리스-렉스가 지난 2019년 1월 19일 촬영한 소행성 베누의 암석 파편 분출 모습 / 미국항공우주국(NASA)·애리조나대학·록히드마틴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소행성 탐사선 오시리스-렉스가 지난 2019년 1월 19일 촬영한 소행성 베누의 암석 파편 분출 모습 / 미국항공우주국(NASA)·애리조나대학·록히드마틴

눈치 빠른 과학소설이 소행성들의 잠재가치를 일찌감치 알아채지 못했을 리 없다. 19세기 말 벌써 그런 징후가 나타났다. 줄 베르느의 <엑터 셀바닥의 태양계 여행과 모험>(1877)과 가렛 P. 서비스의 <에디슨의 화성정복>(1898), 그리고 줄과 미셀 베르느의 <황금 유성의 추격>(1908) 등을 보면 소행성에 귀중한 중금속들이 묻혀 있으리란 (인류의) 기대를 엿볼 수 있다. <황금 유성의 추격>은 지구에 추락할 소행성이 야기할 환경재앙보다는 그것이 온통 금투성이라 지구촌 경제를 결딴낼까 우려하는 웃지 못할 상황을 그린다.

심지어 작가들의 상상에서 소행성대는 외계 식민개척을 위한 전진기지나 식민지로 비약한다. 그래서 소행성대가 자원수탈 대상에 그치지 않고 화성 너머 외행성 권역에 둥지를 튼 신흥 권력집단의 근거지로서 지구정부를 압박하는 이야기들이 다수 나왔다. 수십년간 장수를 누려온 재패니메이션 <건담> 시리즈는 바로 이러한 테마를 보다 대중 취향에 맞게 업데이트한 버전이다. 과학소설에서 ‘소행성에서의 광물채굴’ 아이디어는 그 표면에 돔 도시를 짓거나 안쪽 깊이 큼직한 공동(空洞)을 파내 공기를 채우고 보조추진 장치로 자전 속도를 높여 인간이 살기에 적당한 인공중력까지 만들어 가미한 항구적 주거지로 발전한다. 살가운 환경과는 거리가 멀지만, 정주에 성공한 이곳 주민들은 고유의 생존문화를 향유할 뿐 아니라 강한 자긍심과 독립심 탓에 지구정부와 수시로 갈등을 빚는다. 위기가 닥치면 지구에서 손을 쓰기 한참 전 고사될 운명인지라 그간 SF에서 그린 소행성대 주민들은 19세기 미국 서부개척시대 광산개발업자들의 이미지와 중첩된다. 이와 같은 스테레오 타입은 벤 보바의 <소행성 전쟁> 연작(2001~2007)처럼 최근작들에까지 면면히 이어진다. 상대적으로 외진 입지의 소행성들은 범죄나 정치적 이유로 도주한 자들 또는 이단사상을 신봉하는 분파들의 은신처가 되기도 한다. 앨프리드 베스터의 걸작 <별들은 나의 목적지>(1956)가 단적인 예다.

소행성대를 소재로 한 과학소설들이 예나 지금이나 인기를 끄는 가장 큰 이유는 소수문화와 이단자 집단을 보는 주류사회의 편견을 무너뜨리고 환기하는 데 유용한 플롯이기 때문이다. 앨빈 토플러의 말마따나 SF는 열린 사회를 지향하는 문학이다. 그러니 통제와 효율을 표방하는 지구의 중앙정부와 자율과 개성을 중시하는 소행성대 주민들 간의 갈등은 바로 우리 사회에 내재한 신구세력 간 해묵은 갈등의 또 다른 변주와 같다.

<고장원 SF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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