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가지 시각으로 밝혀낸 하나의 진실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천혜의 절벽에 자리한 캉티뉴쓰 호텔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피살자는 호텔 사장인 바이웨이둬. 절벽 아래 호수를 따라 조성된 산책로에서 새벽 운동을 하던 중 총을 맞아 사망했다. 상황은 단순하지만 범인의 종적은 묘연하다. 산책로로 들어서는 길은 하나뿐인데 산책로 입구 CCTV에 찍힌 이는 피살자 외엔 아무도 없다. 맞은편 호수에서도 배는 일절 목격되지 않았다. 말하자면 살인 현장이 호수와 절벽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밀실인 셈이다. 마침 단짝 친구의 약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호텔에 투숙 중이던 푸얼타이 교수는 호텔 안 인물들이 숨긴 관계와 밀실의 비밀을 파헤친 다음 이내 범인을 지목한다.
사전 정보 없이 <그랜드 캉티뉴쓰 호텔>을 읽는다면 기발한 구조보다는 우선 본격 미스터리의 전형적인 무대와 괴짜 탐정이 건네는 유쾌한 기운에 마음을 빼앗길 게 분명하다. 과거 여러차례 경찰수사에 협조하며 세간에 명탐정으로 알려진 푸얼타이는 명백히 셜록 홈스를 모델로 한 인물이다. 단지 관찰하는 것만으로 실상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가 하면, 때때로 다른 사람의 기분 같은 건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내키는 대로 행동한다. 이를테면 겉모습만 보고 어떤 사람인지 추리해달라던 인물의 숨겨진 상처까지 개의치 않고 헤집어낸다. 또 자신은 경찰이나 검사가 아니라 자칭 ‘범죄연구가’이기 때문에 법정에서 어떻게 판결 나든 진실만 알아내면 그만이라며 범인의 자백으로 일단락된 결말에 자족하기도 한다.
푸얼타이가 활약하는 건 고작 책의 제1장에 불과하다. 얼핏 완벽해보이지만 그럼에도 찜찜하게 남은 몇개의 빈틈은 전 4장에 걸쳐 서서히 메워진다. 특히 제2장은 전혀 다른 주인공인 뤄밍싱을 앞세워 또 다른 살인 사건을 다룬다. 앞선 푸얼타이의 추리에 미묘한 완결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영리하게 시선을 돌린다. 전직 경찰인 뤄밍싱은 경찰 재직 시절의 정보원이 목숨을 위협당하자 비밀리에 숨겨주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는 은신처에서 잔인하게 살해당한다. 유능한 경찰이던 뤄밍싱이 불명예 퇴직 후 완전히 몰락해 다시금 위태롭게 사건의 배후에 접근하다 마침내 캉티뉴쓰 호텔로 흘러오기까지를 다룬 2장은 그만큼 앞선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색채를 띤다. 에두르지 않고 하드보일드 탐정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사뭇 처절한 분위기마저 풍기는 까닭이다.
이어지는 3장은 변호사 거레이를 통해 또 한 번 내막을 들춘다. 거레이는 의뢰인의 불륜 증거를 수집하다가 호텔로 흘러들어와 새로운 진실을 찾는 탐정이 된다. 마지막 4장에서는 인텔 선생이라 불리는 괴도의 시점에서 마치 스파이소설 같은 분위기로 퍼즐을 완성한다. 등장인물 간 내연관계는 오래전 호텔 인근 마을에서 일어난 가스 폭발 사고의 오랜 내상만큼이나 복잡다단하게 얽혀 있다. 장을 거듭하며 남는 뒷맛은 탐정 역을 이양하며 만들어내는 새로운 맛으로 개운하게 정리한다. 푸얼타이를 얼치기 탐정으로 남기지도 않는다. 조류학자라는 본업에 근거해 근방에 서식하는 새의 행태와 사건현장의 연관성에 주목했던 흥미로운 추리에 더해 끝까지 방관자인 체하며 실은 교묘한 승리자로 자리하기 때문이다. 대만이라는 다소 이질적인 배경마저 특별한 분위기로 수렴한 덕에 애피타이저부터 디저트에 이르기까지 코스마다 더더욱 독특한 별미를 맛볼 수 있다.
<강상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