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플라스틱 전담 법률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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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25일 포장재의 재활용을 촉진하는 ‘포장재 재질 및 구조 평가 제도(재활용 등급제)’ 시행에 따라 분리배출 표시 예외 포장재를 제외한 모든 포장재는 ‘재활용 어려움’ 등급을 받았을 때 제품 표면 한곳 이상에 의무적으로 표기해야 한다. 소비자가 재활용이 용이한 제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환경부는 화장품 용기에 대해 판매된 용기의 10%를 화장품 업체에서 회수한다는 조건으로 2025년까지 ‘재활용 어려움’ 표시를 면제해주는 협약을 화장품 업계와만 맺어 논란을 빚었다.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2021년 11월 25일 서울 잠실 롯데칠성음료 본사 앞에서 플라스틱 쓰레기로 배를 채운 대형 물고기를 보여주며 기업의 플라스틱 감축을 요구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2021년 11월 25일 서울 잠실 롯데칠성음료 본사 앞에서 플라스틱 쓰레기로 배를 채운 대형 물고기를 보여주며 기업의 플라스틱 감축을 요구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배신감과 분노를 느낀 시민들이 나서 ‘야합’을 응징했다. 시민사회가 강력한 캠페인을 벌인 결과 2021년 3월 24일부터 화장품 용기에 ‘재활용 어려움’ 표시를 시행했다. ‘재활용 어려움’ 등급 표시 의무 면제 기준은 2025년까지 회수율 30%, 2030년까지 70%로 상향 조정했다.

김이학영 여성환경연대 활동가는 “화장품 회사 앞에서 벌어진 두 번의 ‘화장품 어택’ 직접 행동, 1만명이 넘는 서명 캠페인 등 6개월 동안 시민들이 화장품 용기의 ‘재활용 등급제’ 적용을 요구하며 개선을 촉구한 결과”라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개별 화장품 회사가 제출한 역회수) 계획의 현실성과 적절성 등을 고려해 승인 여부를 결정하고 승인했을 때 실제 계획대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모니터링하는 방식”이라며 “화장품 용기를 따로 회수함으로써 플라스틱 재활용 폐기물을 선별하는 과정에 들어가는 종합적인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재활용이 어려운 화장품 용기가 다른 플라스틱 폐기물과 섞여 전체적인 재활용 품질이 낮아지거나 재활용을 어렵게 만드는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공병 수거가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현재 화장품 용기 역회수 제도에 참여하고 있는 기업 중에는 이 제도 시행 전부터 사용한 용기를 회수한 기업이 있는가 하면 환경부로부터 역회수 계획을 승인받는 것과 별개로 ‘재활용 어려움’ 표시를 유지하겠다는 기업도 있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역회수 제도가 자리를 잡으려면 소비자가 화장품 용기를 쉽게 반납할 수 있도록 브랜드숍, 대형 유통업체 등 판매점을 통해 공병을 수거하도록 의무화하는 등 실효성 있는 공병 수거 체계가 뒤따라야 한다고 환경단체들은 지적한다.

더 중요한 것은 공병 수거가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용기의 재질을 바꾸지 않는다면 아무리 역회수를 잘해도 재활용이 어려운 상황을 개선할 수 없다. 복합재질의 포장재를 단일 재질로 바꾸는 등 용기 소재를 단순화해 생산 단계에서부터 재활용이 아닌 재사용이 가능한 용기를 만들어내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녹색연합이 2021년 6월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화장품 용기 시민 모니터링에 참여한 100여명의 시민이 자원순환을 위해 가장 필요한 변화로 고른 것도 ‘기업의 재활용 가능한 재질로의 개선’(80.2%)이었다. 그다음으로 ‘리필 활성화’(10.1%), ‘역회수’(9.7%) 순이었다.

뚜렷한 변화는 아직 없다. 우려한 대로 기업이 제출한 계획에 비해 역회수 실적이 매우 부진한 상태다. 플라스틱 폐기물의 전반적인 상황을 피부로 접하는 재활용 선별업계에서는 전체적인 재활용 플라스틱의 재질 개선이나 재활용품의 선별 용이성이 나아지지 않았다고 한다.

통계자료를 통해 확인된다. (사)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에 따르면 2019년 화장품 용기 총출고량의 74.5%인 4만7700t이 ‘재활용 어려움’ 등급에 해당했다. 화장품 용기 역회수 제도 시행 이후에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는데, 2021년 6월 ‘화장품 어택 시민 행동’은 전체 조사 대상 화장품 용기 중 재활용이 어려운 비율이 68.5%, 재활용 여부를 모르는 비율이 12.8%였다고 밝혔다.

플라스틱을 재활용하기 어려운 현실은 비단 화장품 용기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부분의 플라스틱 폐기물은 재활용이 어려움에도 여전히 많은 양을 생산해 사용 후 폐기하고 있다. 2019년 그린피스가 발표한 보고서 ‘플라스틱 대한민국, 일회용의 유혹’을 보면 2017년 국내 합성수지 생산량은 수입과 수출을 포함해 1442만t이다. 그중 국내에서 사용하고 폐기한 양은 전년도 축적량까지 합쳐 총 796만t에 달한다. 2013년(604만t)과 비교하면 폐기량이 4년 사이 30% 넘게 증가했고, 이 추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전태완 국립환경과학원 자연순환연구과장은 “플라스틱은 과거부터 사용이 편리하고 다양한 용도로 활용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지구상에서 가장 널리 사용하는 물질”이라며 “이러한 이유로 플라스틱은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관리 미흡으로 환경에 오랜 시간 동안 축적돼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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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해안쓰레기 81.2%가 플라스틱

이렇게 오랜 시간 축적된다는 특성으로 인해 플라스틱 폐기물은 주요 해양쓰레기가 된다. 해양환경공단의 ‘2020 국가 해안쓰레기 모니터링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국내에서 발생한 해안쓰레기의 81.2%가 플라스틱 쓰레기인 것으로 드러났다. 전 세계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 및 재활용 추이를 보면 더욱 심각하다. 1950년에서 2015년까지 전 세계가 생산한 플라스틱 제품은 83억t에 달한다. 이중 재활용된 양은 6억t으로 전체 양의 7% 수준에 불과하다. 적절히 처리되지 못하고 바다로 흘러 들어간 플라스틱 폐기물은 ‘쓰레기 섬’을 형성한다. 전 세계의 쓰레기 섬 중 가장 큰 규모인 태평양의 거대 쓰레기 지대에는 현재 약 18억개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모여 8만여t에 달하는 거대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다.

바다로 흘러 들어가지 않고 적절히 수거된 국내 플라스틱 폐기물의 대부분은 소각 처리한다. 여기에는 ‘단순 소각’과 ‘에너지 회수’가 포함된다. 에너지 회수란 소각의 일종으로 플라스틱을 고형 연료로 변환한 후 태워서 열에너지를 회수하는 방식이다. 한국 플라스틱 폐기물 재활용 처리 비율로 알려진 60%라는 수치는 에너지 회수 방식을 포함한다. 플라스틱 재활용하면 국민 대다수가 떠올리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플라스틱 재활용의 일반적인 이미지에 부합하는 처리 방식은 ‘물질재활용’이다. 물질재활용이란 플라스틱의 물성을 변화하지 않고 다시 플라스틱 제품으로 재생해 이용하는 방법이다. 그린피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물질재활용률은 20% 안팎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국내에 물질 재활용 공식 통계가 없어 기존의 자료를 기초로 추정한 결과다. 전체 플라스틱 생산량이나 사용한 양의 20%가 아니라 플라스틱 수거·선별 시설이 회수한 양의 20%다.

포장재 재질 및 구조 등급 표시 제도를 시행한 이후에도 물질재활용률은 나아지지 않았다. 제도 시행 약 1년이 지난 2020년 12월 한국일보가 보도한 ‘대한민국 재활용 보고서-플라스틱의 생로병사’를 보면 수집업체, 선별업체 그리고 마지막 관문인 처리업체에서 각각 들어온 물량의 46%, 35%, 15%를 폐기한다. 이 세 단계만 거쳐도 총 재활용 폐기물의 70%를 중도에 재활용하지 못하고 폐기처분하는 셈이다. 분리배출을 잘하더라도 수거 및 선별 단계에서 재질의 다양성으로 인해 재활용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분리배출 이후 선별 단계에서 육안으로 해당 품목의 재활용 여부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서울 용산구에 있는 한 아파트의 플라스틱 쓰레기 / 김기범 기자

서울 용산구에 있는 한 아파트의 플라스틱 쓰레기 / 김기범 기자

설계 단계서부터 재활용 고민 필요

이렇게 낮은 물질재활용률을 높이려면 제품 설계 단계에서부터 재활용을 고민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어느 단계를 거치든 재활용이 용이하도록 제품을 설계하고 제도를 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립환경과학원 전태완 과장은 “자원순환사회 전환의 첫 단계로서 폐플라스틱의 선순환 관리를 위해서는 폐기물 단계만이 아니라 플라스틱 제품의 생산, 유통·소비, 폐기물의 배출·처리단계 등 전 과정(Life Cycle)을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소라 기후대기안전연구본부 연구위원은 “생산 단계에서 제품을 설계할 때 재활용등급제 기준 ‘최우수 등급’ 혹은 ‘우수 등급’으로 설계해야 그 제품이 어느 단계를 거치든 재활용이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재활용이 용이한 제품이 늘어난다고 해서 즉각적으로 물질재활용률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폐기 시에 재활용되지 않는 품목이 섞이면, 분리배출을 잘하더라도 수거 및 선별 단계에서 재활용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 연구위원은 “배출 단계에서 재활용이 불가능한 제품들이 섞여 배출되는 것에 더해 수집 및 운반비가 많이 든다는 이유로 품목별로 나눠 수거하는 대신 한 번에 모두 수거해가는 사례가 많다”며 “이렇게 하면 다음 선별 단계에서 부하가 많이 걸리는 동시에 재활용이 안 되는 품목들이 계속 섞이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당장 물질재활용률이 높아지지 않더라도 꾸준히 재질 개선 노력을 기울이며, 동시에 수거 및 선별 시스템을 개선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다.

유럽과 일본 사례에 견주어보니

생산, 배출, 수거, 선별 단계로 이어지는 플라스틱 선순환 메커니즘을 구축하려면 정부의 플라스틱 관련 법률을 둘러싼 정책과 전략이 더욱더 체계적이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상우 충남대학교 환경보건학과 교수(저탄소자원순환연구소 소장)는 “한국은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의 일부 법률 조항에서만 플라스틱 문제를 다루고 있어 이를 실질적 자원으로 이용하기 위한 순환체계가 잘 이뤄질 수 없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논문 ‘포괄적인 폐기물 관리로 나아가는 EU의 플라스틱 전략’에서 “EU는 플라스틱 폐기물의 예방과 관리를 위해 큰 틀에서 ‘폐기물 기본 법률’ 그리고 ‘포장폐기물 법률’과 ‘일회용 플라스틱 법률’을 통해 체계적이고 포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도 EU처럼 폐기물 관련 법률인 ‘순환형 사회형성 추진 기본법’을 운영하고 있다. 순환형기본법 역시 폐기물 전반에 관한 기본원칙을 담고 있다.

반면 한국은 플라스틱 문제를 별도의 입법으로 다루고 있지 않다. 박 교수는 논문 ‘SDGs시대의 폐기물 정책: EU·일본의 플라스틱 법률 제·개정 동향’에서 “EU와 일본이 포장재에 관한 별도 법률이 있음에도 각각 2019년 6월(EU)과 2021년 6월(일본)에 플라스틱 관련 법률을 별도로 제정했다는 건 정책적 의지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며 “실제 정책이나 전략에 담긴 내용을 충실히 이행하려는 법제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밝혔다. 포장폐기물 법률이 존재함에도 별도의 플라스틱 관련 법률을 제정한 EU와 일본의 사례에 견줘보면, 플라스틱 자원순환을 위한 한국의 정책적 의지와 사회적 논의는 현저히 부족한 셈이다.

플라스틱 법률로 미래사회 토대 마련

플라스틱 법률의 부재 속에서 플라스틱 폐기물에 초점을 맞춘 시민사회의 목소리는 계속 나오고 있다. 김이학영 여성환경연대 활동가는 “분리배출이 잘되는 제품을 생산하고 (더 실질적인) 역회수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기업에 요구해야 한다”며 “대용량 단위의 리필제품을 개발·보급하고 재사용하는 품목 역시 다양화하는 등 리필 재사용 체계 또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소라 연구위원은 “플라스틱 통계를 전 과정으로 관리하는 ‘플라스틱 통합 정보체계’를 통해 소재나 재질, 제품의 개선을 다시 피드백해 전달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플라스틱 폐기물 법률 제정은 플라스틱 선순환 구조를 바로 세움으로써 미래사회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전태완 과장은 “유럽과 미국을 포함한 OECD 37개 회원국 및 세계 모든 나라가 플라스틱으로 인한 환경 문제를 예민하게 인식하고 있고, 자원순환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가장 먼저 폐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게 공통된 입장”이라고 전했다. 박상우 교수는 “법률 제정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지만, 촘촘하게 법률 조항을 구성함으로써 체계적인 관리나 순환을 이루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동기획 주간경향·ESG연구소·(사)ESG코리아·감신대 생명과평화연구소>

<청년ESG프로젝트팀 김현식 연세대 경영학과 4학년·복건우 연세대 행정학과 4학년·현경주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3학년, ESG연구소 안치용 소장·이윤진 연구위원>

청년이 외친다, ESG 나와라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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