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가족법을 개정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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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정부와 국회는 건강가정기본법과 생활동반자법 등 민법 개정을 함께 추진 중이다. 이 법안의 골자는 다양한 유형의 가족이 법적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미혼모와 그 자녀로 구성된 한부모가정은 물론 노숙인 자조모임 등 피가 섞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 ‘가족’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제도적 지원을 도모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법안은 현재 국회 내 보수계열 의원 및 보수종교계 반대로 논의가 보류 중이다. 이 법이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미국 뉴욕의 크리스토퍼공원에 있는 게이 커플과 레즈비언 커플 조각상 / 권도현 기자

미국 뉴욕의 크리스토퍼공원에 있는 게이 커플과 레즈비언 커플 조각상 / 권도현 기자

전통적으로 가족의 정의는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가 중심이다. 정부의 가족정책과 가족지원 프로그램의 근거법인 건강가정기본법은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기존의 가족법은 종족 유지를 위한 친족 공동생활 형태, 신분의 승계(承繼), 신분에 기인하는 재산의 승계를 규율하는 실체법(實體法), 즉 민법 제4편 친족과 제5편 상속법을 지칭한다. 그러나 가치관의 변화와 다양한 삶의 방식이 생겨남에 따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족의 의미는 변화하고 있다.

우선 개인의 권리와 행복, 자율성이 강조됨에 따라 결혼에 대한 인식에 큰 변화가 있다. 통계청에서 실시한 ‘결혼 필요성 및 적정 결혼 시기’ 조사에 따르면 꼭 결혼해야 한다는 답변은 42%에 불과했다. 결혼해야 한다는 의견이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고, 혼인율은 하락하고 있다. 통계청 혼인 통계에 따르면 조혼인율(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이 1996년에 9.4건이었는데 2020년에 절반 아래인 4.2건으로 떨어졌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나아가 동거나 사실혼, 동성혼, 비혼모, 대안가족은 물론 반려동물까지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등장했다. 예를 들어, 비혼동거가 사실혼의 형태로 법률혼을 대체하는 가족구성임을 확인할 수 있다. 비혼동거(사실혼) 실태조사 결과 20~30대에서 ‘아직 결혼하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해서’, ‘곧 결혼할 것이라서’ 등의 항목이 동거 이유로 많이 제시된 반면 40~50대에서는 ‘형식적인 결혼제도에 얽매이기 싫어서’, 60대 이상에선 ‘결혼 전 소득이나 자산을 독립적으로 사용하거나 관리하기 어려워서’ 등이 높게 나타났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동거 자체가 이미 자연스러운 선택지가 됐다는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혼인 관계보다 비혼동거 관계의 파트너 만족도가 더 높고 성별 차이가 적었다는 결과 역시 주목된다. 평균수명의 연장 및 인구 고령화와 더불어 최근 60대 이상 연령대에서 동거 비율이 매우 높아지고 있으며, 60대 이상에서 동거기간 10년 이상 비중이 43.8%로 조사된 것은 유의미하다. 동거 이유로 모든 연령대에서 예외 없이 ‘별다른 이유 없이 자연스럽게’가 1순위 응답이었다는 사실은 시대상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비혼 동거가족은 보호받지 못해

현재 한국의 가족법 체계는 전통적인 혼인 및 유교적 혈연주의 중심으로, 점점 더 다양해지는 비혼인 생활의 공동체 관계와 이를 추구하는 국민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가족 체계에 속하지 않는 가족은 법적·제도적 지원과 보호를 받지 못하고 정책적 차별을 받을 수 있기에 헌법이 보장하는 ‘법 앞의 평등’, ‘자기 결정권’, ‘국가에 의한 가족생활의 보장’, ‘행복을 추구할 권리’ 등을 침해받는다는 지적이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동거 경험이 있거나 현재 동거 중인 만 18~49세 25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생활비, 소유물, 임신, 출산, 양육 등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비해 동거 상대방과 계약서나 각서를 작성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 46.6%가 ‘약간 필요하다’, 11.9%가 ‘매우 필요하다’고 답했다. 거의 60%가 그 필요성을 느꼈다.

코카콜라가 미국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헌 판결을 환영하며 만든 무지개색 로고 / 경향신문 자료사진

코카콜라가 미국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헌 판결을 환영하며 만든 무지개색 로고 / 경향신문 자료사진

정서적 유대감과 관계의 안정성 측면에서 비혼동거 관계가 법률혼 관계와 유사한 성격을 보이지만, 주변으로부터 인정받는 정도에서는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나아가 ‘동거하는 부부의 자녀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인한 문제보다 ‘교육비 등의 혜택’, ‘보호자 지위 인정’ 등의 문제를더 부정적인 경험으로 인식하는 사실에서 제도적 차원의 사회적 논의가 시급해보인다. 나현진 변호사는 “사실혼에서 재산분할청구권이 인정돼 이혼할 때 본인 기여도에 따라 재산분할을 청구할 수 있기는 하지만, 상속은 인정하지 않아 상속에 관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성연애 중인 박현수씨(가명·24)는 “이성커플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가족으로 인정받고 싶은데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해 오는 상실감이 있다”고 말했다. 가족법 개정은 아직 사회적 합의가 부족해 동성혼 합법화로 우려되는 사회적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 동성혼을 현행 혼인제도에 바로 포섭하는 것에 앞서 생활동반자법을 통해 동성결합에 법률상 권리를 부여하는 방법이다. 차별금지법이나 동성혼 법제화를 대체하는 방식으로 퀴어 인권을 저하시키자는 게 아니라 함께 추진해 당장의 시급한 문제를 최소화하고 사회적 파장을 완충하자는 취지다. 독일의 ‘생활동반자법’은 등록된 동성커플에 혼인재산제, 부양권, 혼인 해소 요건, 연금수급 대상 규정 등 일정한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동거가족 및 다양한 생활공동체가 겪는 정책 소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생활동반자제도 도입을 중심으로 법률 제·개정, 돌봄의 권리와 경제적 권리의 보장, 그리고 사회적 인식 개선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돌봄의 권리 보장을 위해서는 생활동반자의 의료 보호자 자격 인정, 장례 권리 인정(연고자 기준 확대 및 사전 지정제)을, 경제적 권리 보장을 위해서는 공공임대주택 입주자격 및 주택자금 지원사업 대상 확대, 직장 내 복리후생제도의 가족 범위 확대, 가족 다양성 포용 기업의 사례 확산과 직장 내 조직문화 개선 사업(컨설팅·교육 콘텐츠 제작·관리자 교육·우수기업 인증제도 반영 등)을 고려해볼 수 있다. 인식 개선을 위해서는 기초자료 구축(다양한 가족을 파악할 수 있는 통계 생산 등), 교육 및 캠페인(교육 프로그램 개발·미디어 모니터링)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다른 나라의 생활공동체 관련 법

프랑스에서는 1999년 11월 5일에 혼인과 비슷한 공동생활을 새롭게 규율하는 연대의무협약(PACS·pacte civil de solidarite)을 입법했다. 프랑스 민법 제515조에 의하면 PACS는 이성 또는 동성의 성년인 두 사람이 공동생활을 영위할 목적으로 체결하는 계약이다. 직계존속과 직계비속 사이거나, 직계의 인척 사이거나 3촌 이내의 방계혈족 사이는 계약이 불가능하다. 두 사람 중 적어도 한명이 혼인 관계에 있거나 이미 다른 사람과 PACS가 성립돼 있어도 불가능하다. PACS는 어떠한 친족 관계도 발생시키지 않고 오로지 재산상의 효과만 있다는 점에서 혼인과 다르다. 이들은 재산 관리 및 지출 부담, 소득 신고 등을 공동으로 할 수 있고, 혼인한 부부와 사실상 동일한 세금 공제의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며, 당사자가 사망할 때도 혼인과 같은 규정을 적용한다. 그러나 상대방의 사망으로 인한 상속권은 없다.

김정숙 여사가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미혼모자 생활시설 ‘애란원’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해 한부모가족들을 격려하는 모습 / 청와대 제공

김정숙 여사가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미혼모자 생활시설 ‘애란원’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해 한부모가족들을 격려하는 모습 / 청와대 제공

공포 이후 10년 동안 신고 건수가 70만건이었고, 체결한 당사자는 100만명 정도 돼 PACS는 현재 프랑스 사회에서 성공한 제도로 평가받고 있다. 혼인율이 낮았고, 동성커플의 실질적인 공동생활 보장 요구가 있었다는 사실을 통해 PACS 체결이 이들의 요구에 부합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PACS는 법 제정 당시 많은 법학자, 국민이 우려를 표했지만 결국 프랑스 사회에 잘 정착했다는 점에서 참고할 만하다. 한국 역시 혼인율이 낮아지고 사실혼율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PACS에 동성결합을 제도 안에 포섭하고자 하는 의도가 강하게 개입했기 때문에 동성애를 바라보는 인식이 프랑스보다 보수적인 우리나라에서 바로 적용하기 어려울 수 있다. 우선 비혼 동거가족에 초점을 맞춰 적용해야 한다는 반론이 있다.

독일에서 2001년 8월 1일 시행한 ‘생활동반자법(Lebenspartnerschaften)’은 동성애자가 다른 파트너와 법적으로 ‘등록된 동반자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법이다. 동성의 관계만을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프랑스의 PACS와 다르다. 2인 사이에서만 성립할 수 있고, 다른 사람과 동시에 동반자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이 관계가 성립하면 두 사람은 서로를 부양하고 지원하며 공동생활체를 형성하고, 공통의 성을 가질 수 있으며, 부부재산제와 유사한 법정 재산제를 따라야 한다. 동반자가 사망했을 때 혼인 배우자처럼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다. 그러나 동반입양과 순차적 입양이 불가능하고, 동반자 관계 후 노령연금 조정이나 사망 후 연금 관련 규정이 없다는 점에서 혼인과 다르다.

일본의 ‘파트너십 증명제도’는 동성결합 관계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로, 동성 간 파트너십 인증서의 법적 효력 여부와 범위에 따라 시부야 방식과 세타가야 방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시부야 방식은 ‘남녀평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를 추진하는 시부야구 조례’에 따라 동성커플을 법적으로 보호하며, 세타가야 방식은 지자체장의 권한으로 동성결합 관계에 파트너십을 인정한다. 시부야구의 ‘파트너십 증명’은 법적 구속력이 없지만, 구(區) 내에서 혼인 가구와 동일한 혜택을 받을 수 있고, 가족용 구영 주택 입주가 가능하며 파트너의 수술동의서 작성이 가능하다. 프랑스나 독일과 달리 지방자치단체에서 시작한 제도로, 다양한 가족 구성원의 행복추구권을 지방자치단체가 보장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호주의 연방 가족법(Family Law Act)은 1975년에 생긴 법으로 사실혼 관계를 법제화했다. 2008년에 개정돼 이성 관계뿐 아니라 동성 관계를 포함하고 있으며, 사실혼을 공동으로 생활하는 커플로 설명하며 상호 혼인 관계에 있거나 가족관계에 있지 않은 성년 두 사람으로 정의한다. 업무상 재해에 보상을 받을 수 있고, 사회보장을 받을 수 있으며, 재산분할과 상속을 인정받을 수 있다. 둘 중 한명이 다른 사람과 혼인이나 사실혼 관계에 있어도 새로운 사실혼 관계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스웨덴은 1987년에 ‘동거인의 공동 주거에 관한 법률’로 이성커플의 재산과 주택의 분배를 보호하고, ‘동성 간 동거에 관한 법률’로 동성 커플을 보호했고, 2003년에 ‘동거법(Sambolag)’으로 통합했다.

자발적 비혼모를 선택한 일본인 방송인 사유리가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 / 경향신문 자료사진

자발적 비혼모를 선택한 일본인 방송인 사유리가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 / 경향신문 자료사진

다양한 가족의 수용을 위해

동성애 관련 동반자법을 시행하는 나라가 많지만 한국에 곧바로 들여올 수 있을지는 논의가 필요하다. 동성애에 관한 한국사회의 인식 수준은 논외로 하더라도 동성커플의 법적인 지위에 관한 논의가 미진한 상황이어서, 우선은 동성애자의 법적 지위를 보호하려는 논의를 선행해야 한다. 이후에야 동성애자의 동반자법 도입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동거가족에 대한 인식 개선도 마찬가지다. 앞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동거인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4.6%가 동거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가 ‘호의적이지 않다’고 답했고, 43.7%가 ‘약간 호의적이지 않다’고 했다.

설문조사 대상자 중 13%가 결혼제도나 규범 등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혼인 대신 동거를 선택했다고 한 것은 눈여겨봐야 한다. 혼인제도가 적용되는 것을 원치 않아 혼인 대신 동거를 선택한 생활공동체가 존재할 수 있기에 새로운 생활공동체를 가족의 형태와 똑같이 규정하거나 기존의 가족 체계를 아예 뒤엎는 게 아니라 가족과 같은 또 다른 하나의 단위로 인정하고, 그들을 위한 새로운 법을 논의해 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김장식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는 “종교적으로 그리고 자연법적으로 사람들이 규정해놓은 가족의 개념이 있기 때문에 그런 관념을 존중하지 않고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기존의 가족과 동일하게 묶어 가족법을 적용하면 또 다른 피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민법의 가족 개념을 건드리기보다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실질적으로 보호하는 제도를 따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성애자와 사실혼 및 비혼 관계의 동반자 법을 시행하고 있는 국가는 많지만, 아직 이 셋을 제외한 형태의 동거가족과 대안가족 그리고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가족을 위한 법을 검토하고 있는 사례는 거의 없다. 따라서 동성애와 사실혼에 그치지 않고 더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고려하며 법 제정을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

<공동기획 주간경향·ESG연구소·(사)ESG코리아·감신대 생명과평화연구소>

<청년ESG프로젝트팀 이찬희 연세대 언더우드학부 경제학과 2학년·장효빈 숙명여대 화학과 4학년·김나현 서울여대 저널리즘학과 3학년, ESG연구소 안치용 소장·이윤진 연구위원>

청년이 외친다, ESG 나와라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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