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재정정책의 지향과 실현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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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경제에서 재정 규모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재정지출이 커지고 넓은 분야에서 사용하면 재정을 통한 국가의 활동이 국민의 삶의 어려운 부분을 살펴주는 역할을 더 잘할 수 있다. 재정의 포용성 증가다. 거시경제로는 기업과 가계로 구성된 민간부문에서 투자나 소비가 위축될 때 정부가 소비나 투자를 늘려 국민경제의 균형을 찾아주는 역할을 한다. 정부, 기업과 개인이 개별 경제주체로서가 아니라 국민경제적 관점에서 적절한 수준으로 소비와 저축, 투자를 하는지가 중요하다. 가계가 저축을 많이 하고 소비를 하지 않으면 정부가 가계에서 빌려 소비를 해주고 경제 전체의 수요를 늘려줘야 한다. 경제위기에서 실업 및 매출감소로 소득이 부족한 가계가 많아지면 가계부채가 늘어난다. 정부가 재정을 통해 소득을 보전하거나 일자리를 만들어 가계를 도우면 가계부채 대신에 정부부채가 늘어나지만 정부의 부채관리비용, 즉 이자율이 가계의 부채관리비용보다 낮으므로 경제 전체로는 더 안전해진다. 국민경제가 지속가능한 성장추세를 이어가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커지는 재정 규모에 우려도

재정 규모가 커지니까 사회 일각에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재정준칙을 통해 정책적 선택영역을 미리 좁히는 것은 자기 발에 스스로 족쇄를 거는 행위다. 국가부채의 적정수준과 재정준칙의 역할을 놓고 해외의 시각도 바뀌는 중이다. 재정준칙 도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교과서적 역할을 수행했던 유럽연합(EU) 안정성장협약의 내용은 EU 개별국가들이 그동안 모두 120회 정도 위반했으나 EU는 단 한 번도 유효한 강제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보수적으로 재정을 운영하는 대표적인 나라로서 재정지출을 늘리라는 미국의 요구를 공개적으로 수십 번 들어온 독일도 최근 태도 변화를 보이고 있다. 새로 출범한 ‘신호등(사민당·녹색당·자민당) 연립정부’가 코로나19 위기에 사용하려고 책정했으나 불용으로 남게 된 600억유로(약 80조원) 규모의 예산을 에너지전환 분야에 투입하고자 추경예산안을 만들어 2021년 12월 13일에 통과시켰다. 위헌 소지에도 이렇게 한 것은 에너지전환 분야에 예산이 매우 필요한데도 안정성장협약의 규정 때문에 새롭게 예산을 마련하기가 어려워서다. 코로나19 위기의 긴급성은 안정성장협약에서 예외를 인정해주나 에너지전환은 장기적·점진적으로 이뤄지므로 예외를 인정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를 계기로 재정준칙이 꼭 필요한 결정도 어렵게 만드는 족쇄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유럽은 이 협약의 폐지를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경기대응정책은 통상 거시경제의 균형을 고용상황에 비춰 판단한다. 실업자가 늘고 일자리가 부족하면 경제 전체의 수요가 부족한 것으로 보고 통화정책이나 재정정책을 통해 수요를 늘리려고 노력한다. 이처럼 경기대응정책이 단기적인 시계에서 운영하는 정책이라면 장기적인 시계에서 운영하는 경제정책에서는 성장과 경제혁신이 중요하다. 기업의 생산성 향상과 품질혁신을 통한 경쟁력 확보가 지속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고용유지가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균형적인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 기업이 단기적 이익만 좇으면 경제 전체로서는 노동소득분배율이 낮아지면서 내수부족으로 기업의 이익기반이 무너지며 경제의 지속적 성장이 불가능해진다. 기업의 장기적 이익추구도 결과적으로 어렵게 된다.

혁신을 위한 국가의 역할을 바라보는 시각도 크게 변했다. 주류경제학에서 혁신은 민간기업의 영역으로 보고 단기적 경기변동 대응 정도를 국가의 주된 역할로 봤다. 반면 최근에는 국가가 민간의 혁신을 유인할 수 있고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에도 국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마리아나 마추카토 같은 경제학자는 국가가 혁신과 공공가치의 창출을 주도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의 재정정책은?

우리의 재정정책을 돌아보자. 오랜 기간 역대 정부는 복지 분야보다 기업이나 경제지원에 재정의 큰 부분을 사용했다. 특정 정부에 국한된 일이 아니었다. 지금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수준에 비춰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을 경제와 산업지원에 사용하면서도 복지 분야의 지출은 상대적으로 낮다. 재정을 투입한 만큼 국가는 혁신을 주도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을까?

국가가 혁신을 일으키기 위해 재정을 사용한 것과 기업과 산업을 위해 투입한 것을 무 자르듯이 명확히 구분해내기는 물론 어렵다. 둘은 분명 다르다. 혁신은 긍정적 외부효과를 유발할 수 있는 투자대상을 선정해 국민 세금을 사용하는 것이다. 조세 및 재정 인센티브 체계가 작동해 기업이 하지 않았을 투자를 하게 만들고 국내기업의 국제경쟁력 향상과 고용의 증가를 만들어낸다. 반면에 기업이 그들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해 이미 계획 중인 투자에 세금혜택을 주는 것은 국가의 세수감소에 비해 추가적인 긍정적 효과가 없으니 단순한 세금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제도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운영 현실에서 볼 때 우리의 재정지출은 기업의 혁신적 투자를 유발하지 못하는 구조다. 지원대상 선정과정에서 기업이 요구하고 정부가 수용한다면 기업은 당연히 그들에게 이익이 되고 그러므로 투자하려고 내심 계획하고 있던 투자대상을 지원해달라고 제안할 것이다. 해외에서 도입하는 고도기술수반사업도 정부가 조세지원을 제공하는데, 고도기술수반사업 선정은 경총과 대한상공회의소를 통하거나 대기업의 의견을 직접 받아 정부가 결정하는 방식이다. 기업이 대규모 시설투자를 앞두고 우려를 정부에 전달하면 정부는 시설투자에 대한 투자세액공제율을 높이고 투자세액공제제도의 대상 범위를 해당기업에 유리하게 손질한다. 정부에 의견을 전달하면 그에 맞게 세법이 개정되는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기업은 한국에 물론 극소수일 것이다. 그러나 그 극소수의 초대기업에 유리하게 세법은 수정되고 있다. 이는 혁신이 아니고 그 정반대로 사회에 부정적인 경제적 효과를 유발하는 현상, 즉 ‘정경유착’이라고 불러야 한다.

재정지출이 포용성 관점에서 유효하려면 복지, 노동, 교육 등 각 분야에서 사용하는 재정의 비중을 늘리지 않으면 곤란하다. 반면 혁신성장을 위해서는 재정 규모를 키울 필요가 없다. 재정의 큰 부분은 포용적 경제를 위해 복지에 사용하고, 기업과 경제를 위해 사용하는 재정의 작은 부분은 혁신적 행위 유발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유찬 전 조세재정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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