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이번 대통령선거에서도 세금과 관련된 공약은 거의 없다. 종합부동산세나 국토보유세도 부동산 문제를 다루는 차원에서 언급됐을 뿐 국가재정의 측면에서 세제개편의 필요성을 논하는 것은 아니었다. 후보들이 언급하는 부동산 세제도 구체성이 부족한 수수께끼 같은 내용이라서 언론이 전문가들에게 물어가면서 이리저리 해석하느라 바쁘다. 비교적 최근에 선거를 치른 미국과 독일에서는 대조적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정책과 함께 재정과 조세 이슈가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공약으로 다뤄졌으며, 유권자들의 표심을 가르는 기준이 됐다. 치열한 선거과정을 거쳐 미국에서는 소득상위계층과 자산소득의 과세강화를 공약으로 내세운 민주당의 바이든이 대통령으로 당선됐고, 독일에서는 소득상위계층 과세강화를 주창한 사회민주당(SPD)과 녹색당 그리고 이에 반대하는 자유민주당(FDP)이 같이 연합정부를 구성하는 선거결과를 얻었다. 이들 나라와 달리 세금이슈는 우리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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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이후 한국경제가 재정정책을 통해 극복해야 할 과제는 많다. 우선 코로나19 위기는 아직 진행형이다. 탄소중립적인 방향으로 산업 및 생활에너지 체계를 전환하려면 향후 상당 기간 큰 규모의 재정투입이 필요할 것이다. 4차 산업사회의 진전으로 노동의 환경은 변모할 것이며, 이미 심각하게 진행된 소득양극화 사회를 완화하기 위한 사회안전망 투자와 관련해서도 재정수요는 지속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조세제도 분배 효과 더 크도록 개편해야
세금은 재정수요의 조달수단으로서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탄소 발생을 줄이기 위한 에너지 전환과정에서 세금은 그 자체로 에너지 가격체계를 새롭게 구성하는 시스템 요소가 된다. 노동유인을 위한 근로장려세제로서도 작용한다. 세금은 또한 복지지출 측면의 정부 노력을 보완해 소득양극화와 부의 세습을 완화해준다. 누진적 소득세, 자산소득의 종합과세, 상속세, 부양가족이 많은 가구를 위한 소득세 공제체계의 개편 등을 통해 갈등을 줄이고 사회가 더 공정하며 지속가능해지도록 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우리나라에서 조세부과 과정에서의 분배적 효과가 재정지출 측면에서 이뤄지는 분배 효과보다 미진한 것은 사실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연구한 결과를 보면 그렇다. 한국의 조세수입 구조에서 소득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주요 선진국에 비해 작기 때문이다. 또 비중이 작으면서도 공제제도에서 상대적으로 소득상위계층에게 유리한 보험료 공제, 교육비 공제 등이 많이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조세제도를 좀더 분배적 효과가 크게 발생하도록 개편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민주주의 운영의 경험이 오래된 나라들에서는 시민의 일상생활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조세와 재정의 이슈들이 선거의 중요한 공약으로 제시된다. 선거를 치르면서 정치가들과 정당은 제도개편의 방향성이 담긴 공약을 제시하고 이를 기준으로 시민이 정당과 정치인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한 오랜 과정을 거치면서 현재의 조세와 재정제도가 성립된 것이다. 제도개혁을 위한 시민과 정치권의 집중적인 의사소통이 선거과정에서 이뤄지는 것이고 시민의 집단적 의사결정이 선거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거위 깃털을 뽑듯이 고통을 최대한 느끼지 못하도록 세금을 징수하는 것을 선호한다. 아마도 이런 시각에서 정치인들은 선거에서 세금을 가능한 언급하지 않으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세금을 언급하는 것은 경험적으로 득표에 불리하므로 당선을 위해 그것이 유리하다고 보는 것이며, 증세가 필요하다면 당선 이후에 공론화 과정을 가능한 한 짧게 가지고 전격적으로 세제개혁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이 효율적이라고 정치인들이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그렇다면 실패는 예정된 것이다.
대선 공약 없는 세제개혁은 실패로 귀결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까지 시간이 남아 있던 후보 시절, 불평등한 사회를 바꾸는 정책수단으로 세제개혁에 상당한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조세에 대한 관심은 대선에 가까워지면서 중요한 선거공약에서 빠지며 선거운동은 득표관리 체제로 전환됐다. 취임 후 문 대통령은 언론의 세제개혁에 대한 질문에 조세개혁특위를 만들어 여론을 반영해 추진하겠다고 미루다가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때 재정개혁특위를 만들었다. 조세에 대한 관심을 희석하기 위하여 재정개혁특위로 이름을 바꾼 것이다. 그리고 재정개혁특위에서 위원들의 활동은 대체로 기재부의 관리하에 진행됐다. 위원의 구성부터 의제의 제안, 회의 과정에서 기재부 세제실장의 참석과 개입 등. 물론 청와대 정책실의 묵인하에 이뤄진 것이다. 결과적으로 재정특위의 부동산 관련 세제에 대한 개편제안은 미약한 정도의 종합부동산세 강화와 임대사업자에 대한 세제 특혜를 거의 건드리지 못하는 수준에 그쳤다. 그나마도 당시 기재부 장관이었던 김동연씨가 수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언론에 크게 반복 보도된 바 있다. 이러한 정책결정이 부동산 시장에 제공한 시그널과 영향은 그 이후의 부동산 시장의 양상이 잘 말해준다. 금융정책 측면에서의 대출규제 실패와 함께 부동산 세제는 부동산 시장에서의 실패를 야기한 가장 중요한 정책 분야다. 주택 공급 측면에서의 실패는 상황을 악화시키는 데 크게 영향을 주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경험한 부동산 시장의 급격한 가격상승은 물론 상당 부분 예외적인 외부경제 환경에 따른 것이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 어떻게 코로나19 경제위기를 상상할 수 있었겠으며, 그로 인한 초저금리 수준을 전망할 수 있었겠는가? 이 초저금리와 금융완화는 한국의 또 다른 특수한 상황인 수도권 인구집중이라는 요인과 겹치면서 주지하는 수준의 주택가격 상승을 야기했다. 외부환경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만약 금융과 세제에서 정책적 준비가 잘 돼 있었다면 우리가 문재인 정부에서 경험한 수준의 가격상승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에서 방어할 수 있었을 것으로 판단한다.
조세개혁은 대선에서 공약으로 제시해 인정받지 않고는 임기 중에 실현할 수 있는 동력을 얻기 힘들다. 공약에서 명백하게 밝히지 않은 내용을 갑자기 내밀고 개혁하겠다고 할 때 강력한 조세저항이 생긴다. 임기 중에도 총선, 지방선거, 보궐선거는 계속 닥쳐온다. 공약으로 제시한 내용을 세제개혁으로 실현하는 경우는 예측된 내용이므로 심리적 저항은 훨씬 약할 것이다.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공약을 기피하는 경향은 현재의 후보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 시절보다 더 강해보인다. 실패를 반복하는 사회는 발전이 없다.
<김유찬 전 조세재정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