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동물공장’이 돼가는 동물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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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식 축산은 최소 비용으로 달걀, 우유, 고기 등 축산물의 생산량을 최대화하기 위해 동물을 한정된 공간에서 대규모로 밀집 사육하는 방식이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동물 사육 및 축산물 생산 공정을 기계화·자동화해 공장식 축산이라 부른다. 한국은 높은 인구밀도와 농지 부족으로 농업에서 집약적 생산구조를 취했다. 농지 부족에도 축산업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사육밀도의 급격한 증가가 자리한다. 2006년 이래 축산업은 한국의 농업 총생산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쌀을 넘어서면서 사실상 가장 중요한 ‘식량산업’이 됐다. 한국인의 1인당 육류 소비는 1970년 5.2㎏에서 2020년 무려 54.3㎏으로 증가했다.

경기도의 한 도축장 앞에 서 있는 축산운송차량 / 김흥일 기자

경기도의 한 도축장 앞에 서 있는 축산운송차량 / 김흥일 기자

2021년 국내에서 닭 10억3564만마리, 오리 4928만마리, 소 93만마리, 돼지 1838만마리 등 약 11억423만마리의 동물을 식용으로 도축했다. 대부분 공장식 축산으로 사육했다. 유사한 농업조건 또는 경제 수준의 다른 어떤 나라보다 밀집성이 큰 한국의 축산현장에서는 재활용 또는 재순환하지 않는 축산폐기물이 넘쳐나 수질오염의 원천이 되고 있다. 항생제 오남용이 주로 축산에서 이뤄져 한국인의 항생제 내성률은 OECD 국가의 5~7배에 이른다. 농장 내 만성화한 가축 질병에 더해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 같은 대규모 동물 전염병이 점점 빈발하는 추세다.

오늘날 가축의 삶은 본래의 모습에서 매우 멀어져 있다. 축산동물은 인간의 필요에 따라 개량되고 분화해 산업적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데 가장 적합한 형태가 됐다. 동시에 생산성 향상을 위해 인위적으로 조작된 환경에 노출된다. 닭은 원래 자연상태에서는 1년에 6~12개의 알을 낳았으나, 현재는 1년에 300개까지도 낳는다. 그린피스는 “공장식 축산이 효율적으로 식량을 생산하는 방법이라고 기업들이 주장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현재 지구상 토지의 4분의 1 이상을 가축사료를 생산하기 위해 사용하는데, 이 땅은 사람들이 먹을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땅이며, 1㎏의 닭고기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3.2㎏의 사료가 들어간다”고 지적했다.

비윤리적 축산환경 공장식 축산의 대명사는 스톨(stall)과 배터리 케이지(battery cage)다. 스톨(stall)은 돼지를 사육할 때 사용하는 매우 좁은 우리를 말한다. 주로 임신한 돼지를 가둬두는 폭 70㎝, 높이 120㎝, 길이 190㎝ 정도의 케이지를 가리킨다. 스톨은 돼지의 몸 크기에 꼭 맞아 그 안에 있는 돼지는 몸을 돌릴 수도 없는 상태로 늘 같은 방향을 바라봐야 한다.

어미돼지를 이런 스톨에 가두는 이유는 좁은 공간에서 최대한 높은 생산성을 끌어내기 위해서다. 임신이 가능한 암컷 돼지는 스톨 안에서 임신과 출산을 반복한다. 새끼가 젖을 뗀 후 일주일이 지나면 또다시 임신할 수 있다. 스톨 안에서 돼지는 3~4년 동안 임신과 출산을 6~7회 반복한 후 도축된다. 자연상태에서 돼지의 수명은 15년가량이다.

비좁은 철창에 갇혀 옴짝달싹 못 하면서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은 돼지는 정면에 보이는 다른 돼지의 꼬리를 물어뜯는 이상 행동을 보인다. 이 때문에 스톨 사육을 위해서는 돼지의 이빨과 꼬리를 새끼 때 미리 자른다. 2020년 한국은 임신한 돼지의 스톨 사육을 교배 후 6주 이내로 제한하고 그후에는 다른 개체와 어울릴 수 있는 군사 공간을 제공할 것을 의무화했지만, 이마저 즉시 적용은 신규 농가에 한해서다. 기존 농가는 10년 적용 유예를 받았다.

배터리 케이지(battery cage)는 달걀을 얻기 위한 공장식 축산에서 닭을 키우는 공간이다. 일반적으로 케이지 한개의 크기는 가로 50㎝, 세로 50㎝, 높이 30㎝이다. 축산법 시행령에 따라 최대 9단까지 쌓아 사용할 수 있다. 한 케이지에 산란계 6~8마리를 사육하며, 보통 1마리당 사육 면적이 A4용지 5분의 4 남짓할 정도로 과밀한 사육 형태다. 좁은 공간에서 닭의 활동량을 최소화해 사료 섭취량을 줄일 수 있다는 걸 배터리 케이지의 이점으로 꼽는다.

배터리 케이지 안의 닭은 스톨 안의 돼지처럼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아 서로를 공격하기 때문에 돼지의 이빨을 잘라내듯이 닭의 부리 또한 잘라낸다. 배터리 케이지를 쓰는 양계장에서는 고질적인 진드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반사로 닭에게 살충제를 직접 뿌린다. 2017년 살충제 달걀 파동은 이러한 맥락에서 발생했다.
2018년 9월부터 산란계 및 종계 케이지의 적정사육면적을 마리당 0.05㎡에서 0.075㎡로(대략 A4용지 0.8배 넓이에서 1.2배 넓이로) 상향 조정한 축산법 시행령 개정안을 신축 계사에 적용하고 있지만, 기존 농장은 2025년 8월 31일까지 적용을 유예받았다.

도축용 가축을 수송하는 차량인 ‘닭차’ 어리장 안에 실린 닭들 / 김원진 기자

도축용 가축을 수송하는 차량인 ‘닭차’ 어리장 안에 실린 닭들 / 김원진 기자

항생제 과용과 침묵의 팬데믹 공장식 축산은 항생제 오남용이라는 문제를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동물이 스트레스로 면역력이 저하된데다 좁은 공간에 밀집돼 감염병을 쉽게 전파하기 때문이다. 2016년 영국의 한 연구에서는 슈퍼박테리아(항생제 내성균)에 의한 전 세계 사망자가 연간 70만명에 이른다고 분석하면서, 2050년이 되면 한해 1000만명이 슈퍼박테리아 감염으로 사망할 것으로 예측했다. 암이나 다른 주요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 예측 수치를 넘어선다.

아시아권은 전 세계적으로 항생제 내성이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높은 지역에 속한다. 그중에서 한국의 항생제 내성률은 세계적으로 손꼽을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상황이다. 한국은 2019년 기준 1인당 인체 항생제 사용량이 OECD 국가 중 3위이고, 인구 대비 항생제 매출은 OECD 국가 중 2위다. 축산 분야에서 사용하는 항생제가 인간을 비롯한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아직은 명확하지 않지만, 항생제 내성균은 ‘침묵의 팬데믹(the silent pandemic)’이라 불리며 유엔, 세계보건기구(WHO), G20 등 여러 국제회의에서 다룰 만큼 이미 전 지구적인 이슈가 됐다.

가축 전염병 상시화·토착화의 가장 큰 이유는 공장식 축산이다. 이은환 경기연구원 생태환경연구실 연구위원은 “공장식 축산의 밀집사육은 가축 개체 간의 거리가 짧다는 점뿐 아니라 그 때문에 가축이 스트레스를 받고 면역력이 저하된 채로 있다는 점에서 바이러스나 병원균이 확산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한다”며 “가축 전염병의 상시화·토착화는 농장주에게는 경제적 손실을, 정부에게는 세출 부담을, 국민에게는 보건상의 위험을 안긴다”고 말했다.

살처분은 동물 살해라는 윤리적 문제를 일으키지만, 윤리 차원에 한정하지 않는다. 2010년부터 2019년까지 가축 전염병으로 인한 살처분 비용으로 들어간 세금은 4조원에 육박한다. 정작 중요한 사전예방적 방역체계 구축에는 예산을 충분히 투입하지 못하는 등 예산 및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을 왜곡하는 상황이 벌어져 국가 재정 측면의 문제가 되고 있다.

2017년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로 전국의 산란계 32.9%를 살처분하는 동안 동물복지 인증 농장에서는 103만3000마리 가운데 1만3000마리(1.1%)만 살처분했다. 89개 농장 중 단 한곳이었다.

연도별 농업·축산 분야 온실가스 배출량 / 경향신문 자료

연도별 농업·축산 분야 온실가스 배출량 / 경향신문 자료

기후위기·생태계 파괴에 큰 책임 축산 분야의 물 사용량은 전 세계적으로 인간이 사용하는 양보다 8% 이상 많으며 이중 대부분은 가축이 먹는 사료작물을 기르기 위한 것이다. 알려진 대로 공장식 축산은 기후위기와 생태계 파괴에 큰 책임이 있다. “햄버거 하나를 먹을 때마다 아마존 열대우림 1.5평이 사라진다”는 얘기는 중남미의 농장주가 소를 키울 공간을 확보하고 동물 사료로 쓰는 곡물을 재배하기 위해 숲을 불태운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공장식 축산은 전 세계 산림 벌채의 가장 주된 원인이다.

축산업은 전 세계 곡물 수확량의 3분의 1을 소비한다. 축산지와 가축의 사료로 쓰는 농작물을 재배하는 면적을 합하면 지구상 가용 토지 면적의 30%에 이른다. 그린피스 추산에 따르면 축산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체 온실가스 배출 가운데 18~20% 정도다. 2021년에는 지구 온실가스 배출의 무려 87%가 축산업과 관련돼 있다고 주장하는 미국의 비영리단체 Climate Healers의 연구가 나왔다. 이 보고서가 내놓은 87%라는 값은 축산업의 온실가스 배출이 전체의 51%라고 주장한 세계적 환경연구소 월드워치의 2009년 11·12월 보고서보다 훨씬 더 나아간 주장이다.

비대해진 축산업이 기후변화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는 분석에 따라 소위 ‘방귀세’라는 일종의 탄소세 아이디어가 나왔다. 실제로 에스토니아는 2008년 방귀세를 도입했고 아일랜드는 소 한마리당 18달러, 덴마크는 소 한마리당 110달러의 방귀세를 부과하고 있다.

EU·미국, 공장식 축산 금지 확산 중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2022년부터 ‘CAFO(밀집형가축사육시설, 즉 공장식 축산시설)’에서 키운 축산물의 유통을 금지한다. 2018년에 동물보호단체 주도로 발의해 유권자 63%의 찬성을 받은 ‘캘리포니아주 주민발의안 12호’를 시행한다. 이 법안에 따르면 기존 공장식 축산 농가는 사육공간을 2배 가까이 넓혀야 한다. 지키지 않으면 캘리포니아주에서 축산물을 유통하지 못한다. 중요한 사실은 이 법안이 캘리포니아 안에서 생산한 축산물에만 적용하는 게 아니라 주 바깥에서 들여오는 것에도 적용한다는 점이다. 캘리포니아에 앞서 매사추세츠주도 공장식 축산을 통해 생산한 축산물의 유통과 판매를 금지한 상태다.
유럽연합(EU)은 1999년부터 단계적으로 산란계의 배터리 케이지 사육을 금지해 2012년에 이르러 완전히 금지했고, 2013년에는 임신한 돼지의 스톨 사육을 금지했다. 최근에는 2027년까지 가축을 우리에 가둬 사육하는 관행을 단계적으로 폐지해나가겠다고 밝혔다. EU는 향후 EU로 육류를 수출하는 나라에 같은 기준을 요구할 계획이다. 가축을 방목하지 않고 우리에 가둬 키웠다면 EU로 육류를 수출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송정은 강원대학교 비교법학연구소 환경법센터(동물법센터) 선임연구원은 “동물복지 입법·정책의 생산과 관련해 유럽에선 동물보호단체 등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고, 계속해서 상황과 문제를 알리려는 노력이 있었다”며 “한국에서도 그러한 목소리가 더 커지면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형태의 동물 관련 법과 정책을 시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에 위치한 한 도축장의 계류장 모습 / 김흥일 기자

경기도에 위치한 한 도축장의 계류장 모습 / 김흥일 기자

고기 양극화? 공장식 축산 금지가 고기 가격을 급격히 상승시켜 고기의 양극화 문제를 심화한다는 점이 가장 주요한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안치용 ESG연구소장은 “공장식 축산을 금지하면 고기의 양극화는 필연적이지만 지금의 공장식 축산이 장기적 관점에서 경제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지속가능한 해법이 아니라는 데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무항생제 축산, 친환경(유기) 축산, 동물복지 축산 인증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유효한 대안은 식물성 대체육과 배양육이다. 우리에게 ‘콩고기’로 잘 알려진 식물성 대체육은 식물에서 추출한 단백질을 이용해 식육과 비슷한 형태와 맛이 나도록 제조한 식품을 의미한다. 육류보다 자원의 사용량과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임과 동시에 대량생산이 쉽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제조 후 제품 환경변화의 영향을 덜 받으며 품질 유지기한이 길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가격은 식품 가공산업에 적합하다.

식물성 대체육에 비해 생소한 배양육은 살아 있는 동물의 줄기세포를 채취한 뒤 배양해 생산하는 동물성 단백질을 의미한다. 1999년 네덜란드에서 연구를 시작해 현재 실험실에서 시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단계까지 왔다. 배양육은 기존 축산보다 토지 사용량, 온실가스 배출량, 에너지 소비량을 대폭 줄일 수 있어 친환경적이다. 장기적으로 축산업을 일정 부분 대체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한국도 이제 공장식 축산 금지에 적극적으로 속도를 내야 한다. 지금의 공장식 축산 대신 어떤 형태를 축산업의 새로운 표준으로 만들지는 앞으로 더 논의할 필요가 있다. 분명한 것은 현재의 공장식 축산은 절대로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가야 할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다. 안치용 소장은 “문명 설계를 변경하는 거시적인 접근이 시급하게 꼭 필요하지만 시민 차원에서는 세계시민들의 각성 아래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실천하고 알리는 등 실천의 작은 연대를 수행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공동기획 주간경향·ESG연구소·(사)ESG코리아·감신대 생명과평화연구소>

<청년ESG프로젝트팀 김나현 서울여대 저널리즘학과 3학년·손채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현예린 연세대 지속개발협력학과 4학년, ESG연구소 안치용 소장·이윤진 연구위원>

청년이 외친다, ESG 나와라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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