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 젓가락 괴담 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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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을 통해 본 미스터리한 세계

<쾌: 젓가락 괴담 경연>은 일본, 대만, 홍콩의 다섯 작가가 젓가락 괴담을 주제로 집필한 작품집이다. 부제의 ‘경연(競演)’이 내세우는 그대로 삼국의 작가들이 젓가락이란 다소 협소한 소재를 각자 얼마나 특별한 상상력으로 구현했는지 기대할 법하다. 그러나 실은 옴니버스 그 이상으로, 굳이 ‘경연’을 덧붙인 부제 역시 독자의 선입견을 이용한 교묘한 장치에 가깝다. 뜻밖에도 다음 작품으로 넘어갈 때마다 경연보다는 협연에 가까운 진짜 정체가 드러나는데, ‘젓가락님’이란 초상현상으로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하모니는 그래서 더더욱 괴담과 미스터리의 매력을 십분 배가한다.

<쾌: 젓가락 괴담 경연> 한국어판 표지 / 비채

<쾌: 젓가락 괴담 경연> 한국어판 표지 / 비채

첫 테이프를 끊은 미쓰다 신조의 ‘젓가락님’은 매일 밥에 젓가락을 꽂고 84일간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아이들의 장난 같은 의식을 다룬다. 의식을 거듭하면 어느 순간 젓가락님이 화답하는데, 그 증거로 소원을 빈 사람의 팔에는 물고기 모양의 붉은 모반이 나타나면서 괴상한 꿈을 꾸게 된다. 꿈속에서 그는 날마다 어떤 교사에서 깨어나는데, 그곳엔 9명의 동급생이 있고 꿈을 꿀 때마다 한명씩 차례로 살해된다. 꿈이 암시하는 불길한 징조는 소원에도 불온한 기운을 더하며 괴담 특유의 충격적인 결말로 마무리된다.

처음엔 일본의 대표적인 호러 미스터리 작가인 미쓰다 신조치고 조금은 싱겁고 무난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던 게 사실이다. 특유의 기괴한 분위기는 충분히 즐길 만했지만, 과연 이어지는 작품과 ‘경연’을 벌일 만한 수준인가 의문이 들었다. 실제로 이어지는 쉐시쓰의 ‘산호 뼈’는 학창 시절 산호로 만들어진 젓가락을 지니고 다니던 동급생의 이야기를 퇴마 전문 도사에게 상담하는 형식으로 훨씬 눈길을 끈다. 대대로 전해진 산호 젓가락에 왕선군이라는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동급생은 자신의 불행을 젓가락에 투사했는데, 그 젓가락을 숨김으로써 그를 해방해주려 했던 여자의 내밀한 고백이 마침내 화해와 치유로 끝을 맺는다. 학창 시절의 아련한 감각에 영적 세계를 직조한 분위기는 이미 대만 대표의 손을 들어주기에 충분했다. 이어지는 예터우쯔의 ‘저주의 그물에 걸린 물고기’는 밥에 젓가락을 꽂은 각미반 저주가 실은 한 유튜버 그룹이 창작한 기담임을 라이브 방송에서 고백하는 순간 그중 하나가 사망한다. 두 작품 모두 저주는 가짜여도 인간의 악의만큼은 진짜라는 말로 내내 불편한 진실을 좇는다.

네 번째 작품인 ‘악어 꿈’은 이 작품집의 백미로, 몇가지 외에 특별한 접점이 없던 모든 작품을 하나로 꿴다. 마치 작가 샤오샹선이 젓가락 괴담의 실체를 뒤쫓는 메타픽션 형식을 취하면서 앞선 작품들을 한 원천으로 수렴할 뿐 아니라 ‘젓가락님’의 꿈속 사건에도 정확한 진실을 부여한다. 무엇보다 민며느리제의 희생자로 보이는 누군가의 처절한 고백이 앞선 캐릭터들과 매칭되는 순간 만들어내는 충격은 실로 대단하다.

그러니까 다른 작품의 절반도 되지 않는 분량의 ‘젓가락님’은 실은 이어지는 작품의 토대였다. 게다가 마지막 찬호께이의 ‘해시노어’가 앞 작품의 속편 혹은 후일담을 자처하면서도 모험소설과 판타지 장르를 표방하는 그대로, 작품의 결은 제각각이지만 괴담에 숨겨진 의미에 접근하는 태도는 모두가 괴담 미스터리 장르의 정수를 자처할 만하다. 점과 점이 만나 선이 되고 면을 이루고 마침내 면과 면이 맞닿아 3차원이 되듯, 작가들의 뛰어난 역량으로 빚어낸 릴레이 소설이 온전히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냈다.

<강상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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