램-반인반수 아이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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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인반수의 아이는 현실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존재들’에 대한 알레고리다. 누굴까. 자폐아들이다.


제목 램(Lamb)

제작연도 2020

제작국 아이슬란드, 스웨덴, 폴란드

상영시간 106분

장르 호러

감독 발디마르 요한손

출연 누미 라파스, 힐미르 스나에르 구오나손, 비욘 흘리뉘르 하랄드손

개봉 2021년 12월 29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수입/배급 오드(AUD)

오드(AUD)

오드(AUD)

동물을 키워본 사람은 안다. 울음소리와 표정, 행동이 의미하는 바가 뭔지를. 사람이 이른바 영장류(靈長類)에서도 지배자의 위치에 선 것도 그런 공감 능력 때문이다.

<램>의 주인공 부부가 사는 곳은 인적이 드문, 아니 거의 없는 아이슬란드의 북쪽 끝 오지다. 아름다운 풍광이지만 살기에 척박한 땅이다. 이곳에서 부부는 양을 치면서 산다. ‘식구’가 있다면 고양이 한마리와 양치기 개 한마리. 어느 크리스마스이브 야심한 밤, 알 수 없는 존재가 그들의 농장에 나타난다. 양들은 뭔가 불안한 눈초리로 그 존재를 바라본다.

얼마의 세월이 지난 후, 부부는 새끼 양을 받는다. 그런데 그냥 양이 아니다. 반인반수(半人半獸), 정확히 말하면 머리와 한쪽 팔은 양이고 나머지는 인간의 몸을 한 생명체다. 부부는 이 뭐라고 말하기 모호한 아이에게 ‘아따’라는 이름을 붙이고 아이처럼 방에서 키운다. 부부는 ‘아따’를 특별한 의미를 지닌 존재라고 생각한다.

총 3장으로 나뉜 영화의 1장의 끝부분에서 왜 부부가 ‘아따’를, 이를테면 신이 자신들에게 준 선물로 생각했는지가 드러난다. 아버지는 묘지를 방문하는데 비석에는 ‘아따’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즉 잃어버린 자신들의 아이(아마 딸로 보인다)를 대신해 절대적인 존재가 그들 부부에게 보낸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홀연히 부부에게 나타난 존재

이들만이 고립된 생활을 한다면 문제없겠다. 그런데 방해자가 나타난다. 우선 아따와 부부가 거주하는 방앞으로 날마다 찾아오는 3115번 표지를 달고 있는 양. 양은 창밖에서 애처롭게 울부짖는다. 아마 어미로서 자식을 돌려달라는 하소연일 것이다. 마리아(누미 라파스 분)는 끝없이 울부짖는 양을 향해 “그만해!”라고 소리를 내지른다. 그래도 계속되는 어미의 탄원에 총을 들고 쏴죽인다. 또 하나의 방해자. 남편의 친형이다. 그는 마리아가 아따의 친어미를 죽인 사건의 목격자다. 동생 부부가 친자식처럼 키우는 ‘그것(it)’(여기서는 괴물 또는 다른 존재라고 하기도 애매하니 서구권 공포영화의 용례대로 그것이라고 해두자)과의 관계가 정상적이지 않은 것을 목도하고 마리아가 들었던 그 총으로 들판에서 아따를 죽이려고 시도하다가 그만둔다. 그리고 그 역시 아따와의 관계를 받아들인다. 부부와 아따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그들의 삶에 끼어든 남편의 형. 그들의 운명은?

홍보사는 미국에서 이 영화의 배급사인 A24의 선택을 굉장히 강조하고 있다. <유전>(2018), <미드소마>(2019) 그리고 <미나리>(2020)를 선택했던 영화사가 ‘초이스’한 호러영화이니 믿고 보라는. 돌이켜보면 <유전>이나 <미드소마>는 확실히 훌륭했다. 오랜만에 부들부들하는, 낯선 두려움을 안겨주는 영화들이었다. 그렇다면 <램>도? 수입사 측이 선전하는 것처럼 공포영화로 이 영화를 기대하고 영화관에 들어가는 관객이라면 아마도 실망할 것이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자세히 쓰지 않겠지만 영화는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라는 의구심과 주인공에 대한 동정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느닷없이 끝난다. 깜짝 놀라거나 비주얼적으로 끔찍한 고어 장면도 없다.

앞서 <미나리>의 예에서도 보이듯, A24라는 영화사가 주목하는 것은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있는 낯선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독립영화들이다. 공포영화적인 클리셰 전개를 염두에 두고 극장문에 들어선 관객이라면 분명 실망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공포영화라기보다 판타지영화

호러영화라기보다 상위장르인 판타지로 이 영화를 보고 싶다. 반인반수의 아이는 현실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존재들’에 대한 알레고리다. 누굴까. 자폐아들이다. 아따는 분명 부모가 지시하는 말을 어느 정도 알아듣고, 몸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드러내지만 말은 하지 않는다. 인간이지만 고기능적 언어로 소통하기 힘든 존재(여기서 몇년 전 사회복지관에서 두 살짜리 꼬마를 창밖으로 던져버렸다는, 어느 자폐청년이 벌인 끔찍한 사건을 떠올린다)다.

아이는 축복처럼 마리아에게 왔다가 어느 날 홀연히 떠난다. 생각해보면 2021년 전 예수도 그랬다. 특별한 존재다. 많은 자폐가정 부모가 뒤늦게 깨닫는 것처럼.

왜 양이었을까

경향자료

경향자료


왜 양이었을까. 서구 문명에서 양은 대속(代贖)의 의미로 자주 치환된다. 속죄양이라는 말이 단적이다. 실제 가축화된 양은 겁이 많아 떼로 몰려다니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양치기 개 한마리가 수십, 수백만마리의 양을 통제할 수도 있다. 당장 떠오르는 것은 스릴러 영화 <양들의 침묵>(1991)이다. 희대의 식인캐릭터 한니발 렉터가 보기에 조디 포스터가 맡고 있는 FBI 훈련생 스털링은 끔찍한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안고 있다. 그는 어려서 아버지는 총에 맞아 죽었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스털링은 그런 자신의 척박한 환경과 싸워 이겨내며 안정된 직장인 연방수사관 자리를 얻지만, 한니발은 몇 번의 대화만으로 스털링 내면의 불안을 간파해낸다. 그리고 그런 스털링의 내면을 상징하는 한 사건에 관해 대화한다. 스털링은 어떤 꿈을 자주 꾸는데 그건 어린 시절의 경험이다. 몬태나목장에서 달아나던 스털링은 양들의 비명을 듣는다. 그래서 양들을 구해주기 위해 문을 열어줬지만, 양들은 도망가지 않았다. 스털링은 양 한마리라도 구하기 위해 들고 뛰지만 이내 보안관에게 붙잡힌다. 한니발 렉터는 스털링에게 묻는다. “아직도 꿈속에서 양의 울부짖음이 들리느냐”고.

<양들의 침묵> 이전까지 조디 포스터의 대표작은 <택시 드라이버>(1976)다. 그는 영화에서 로버트 드니로가 구하겠다고 집착하는 어린 창녀역을 맡았다. 스털링 캐릭터는 <엑소시스트>의 악령 들린 소녀 린다 블래어가 캐릭터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했던 것처럼 <택시 드라이버>의 아이리스에서 벗어나기 힘든 조디 포스터에게 남겨진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역할도 했다. 스털링이 시달리는 양들이 비명을 지르는 악몽은 죄책감과 속박, 절대적인 악을 직면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을 상징한다. 감옥에 갇힌 식인살인마는 역설적으로 그런 트라우마를 이용해 어쨌든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어냈고.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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