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쿠라우-미심쩍은 마을을 잠식하는 핏빛 사육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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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이라는 명목하에 가차없이 파괴되는 전통이나 편의와 위생을 앞세워 불합리한 것으로 치부되는 다양한 문화에 대한 연민과 그리움은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이자 중요한 동기다.

제목 바쿠라우(Bacurau)

제작연도 2019

제작국 브라질

상영시간 131분

장르 미스터리, 스릴러

감독 클레버 멘돈사 필로, 줄리아노 도르넬리스

출연 우도 키에르, 소냐 브라가, 바르바라 콜린, 토마스 아퀴노, 실베로 페라라

개봉 2021년 9월 2일

등급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사 진진

㈜영화사 진진

2시간이 훌쩍 넘는 상영시간의 전반 1시간은 바쿠라우 마을의 다양한 일상을 보여주는 데 할애된다. 겉으로는 남녀노소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평범한 마을이지만, 성매매가 당연하게 행해진다거나, 평화로운 저녁시간 마을 광장에선 아이들을 포함한 모든 마을 사람이 모여 끔찍한 범죄사건 르포를 마치 문예영화 보듯 하는 등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모로 범상치 않은 이곳만의 기운이 쌓여간다.

그 사이사이에 외부에서 침입한 것이 분명한 존재들로부터 비롯된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 사건들이 분절돼 끼어드는데, 이는 마을 사람들의 독특한 생활방식과 맞물리며 긴장감을 유발하면서도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갈지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중반 고지를 넘어선 이후 내리막에 들어서면서부터 영화는 마치 중력에 이끌리기라도 하듯 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멈추지 않는 가속은 결말에 이르러 제어할 수 없는 지경의 폭주를 만들어내고 정서적 충격을 제공한다.

바쿠라우는 ‘밤에만 사냥하는 새’를 뜻한다. 평소에는 자신의 몸을 숨기고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생물이지만, ‘밤’은 생존본능을 일깨우고 폭력성을 촉발하는 방아쇠가 된다. ‘밤’이 지니는 의미는 말 그대로 태양이 지고 난 시기를 의미할 수 있겠지만, 영화에서는 죽음까지 각오해야 하는 나락(奈落)의 은유로 보인다. 그래서 ‘밤에만 사냥하는 새’가 품고 있는 의미는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나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 속담과 일맥상통할 수 있다.

브라질 북동부 출신 감독의 시선

클레버 멘돈사 필로 감독은 브라질에서도 가난과 무지의 편견으로 폄하되는 북동부 헤시피 출신이다. 그는 한 사회가 가진 나름의 전통과 가치가 첨단 문명과 자본주의로 대표되는 몇몇 서양국가의 잣대로 구분되고 평가되는 시선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의문을 가져왔는데, 이런 그의 고찰은 일련의 작품들 속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데뷔작 <네이버링 사운즈>(2012)는 평범한 주택가를 배경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주민들의 모습을 흥미롭게 그린다. 마을의 안전을 자처하며 등장한 엉성한 사설보안업체는 주민들의 일상에 쉽게 녹아들지 못해 사업의 고전을 면치 못하지만, 뜻밖의 결말을 유도한다. 두 번째 장편 <아쿠아리우스>(2016)는 낡은 아파트에 사는 노부인의 일상과 과거의 기억을 차분하게 소환한다. 잘생기고 야심 찬 젊은 개발업자의 등장은 그의 평온한 노년에 파장을 일으키지만, 실질적이고 치명적 위협은 뜻밖의 지점에서 발견된다.

섬세한 은유와 상징으로 채워진 풍자

그의 작품에서는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몇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구문명과 신자본주의에 대한 맹렬한 반감의식과 노골적 견제다.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가차없이 파괴되는 전통이나 편의와 위생을 앞세워 불합리한 것으로 치부되는 다양한 문화에 대한 연민과 그리움은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이자 중요한 동기다.

또 하나는 이야기의 급격한 전환이다. 보통사람들의 평범한 모습으로 시작하고 이를 관찰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이 할애되지만, 종국에 이르러서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사건이나 진실이 짧고 강렬한 결말을 이끌어낸다.

이런 특색을 하나로 묶어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찾는다면 ‘경계’라 할 수 있다. 작게는 개개인으로부터 시작해 거시적으로는 인류, 범우주적인 영역 안에서 끊임없이 쌓여만 가는 ‘경계’에 대한 의문과 본질에 대한 물음은 결국 브라질 한 지역뿐 아니라 어디에서라도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철학이라는 점에서 그의 영화는 더 큰 평가를 받을 만하다.

여기에 날이 선 듯 사납고 삐딱한 유머와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성(性)적 에너지, 참신하고 다양한 음악의 활용 역시 그의 작품 모두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이다.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을 능수능란하게 제련해 관객들에게 경이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연출가임이 분명하다. 뒤늦게나마 그의 신작을 극장에서 접할 수 있게 된 것은 한국관객들에게 큰 선물이라 하겠다.

뒤늦게 한국에 소개되는 ‘브라질의 봉준호’

zimbi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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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에 열린 칸영화제를 전한 뉴스 중 가장 큰 화제는 비경쟁부문 공식 초청작으로 선정된 한국영화 <비상선언>과 주연을 맡은 두 배우 송강호와 이병헌이었다. 송강호는 한국 남자배우 최초(한국배우 최초는 2014년 전도연, 한국영화인으로서는 다섯 번째)로 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에, 이병헌은 한국배우 최초로 폐막식의 여우주연상 시상자로 위촉됐다. <비상선언> 역시 한국 최초의 항공재난영화라는 수식과 함께 일찍부터 관객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는 작품이었던 터라 이번 칸영화제는 여러 면에서 ‘한국 최초’가 언급된 해가 됐다. 더불어 봉준호 감독도 특별 초청돼 개막선언에 참여했다.

이번 경쟁부문 심사위원에는 송강호를 비롯한 다양한 국가의 영화인 9인이 선정됐는데, 그중에는 <바쿠라우>의 감독 클레버 멘돈사 필로도 포함됐다. 1968년 브라질 북동부 헤시피에서 출생한 그는 대학 졸업 후 영화평론가와 기자로 일했다. 1990년대 자신의 회사인 ‘시네마스코피오’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영화 작업을 시작했는데 주로 다큐멘터리와 단편영화 작업을 이어 나갔다. 드디어 2012년 첫 장편 극영화 <네이버링 사운즈>로 데뷔하며 곧바로 세계적 주목을 받게 되는데, 그를 거장의 반열에 올린 두 번째 작품 <아쿠아리우스>에 이어 이번 작품 <바쿠라우>가 세 번째이자 첫 공동작품이니 꽤나 과작을 하는 감독이라 하겠다.

클레버 감독의 작품은 뚜렷한 사회의식을 저변에 깔고 있지만, 형태적으로는 대중에게 익숙한 장르영화의 형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변화를 끊임없이 추구한다는 점에서 봉준호 감독의 작품들과 닮은꼴이라 비교하는 평가가 있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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