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의 웰스토리 제재는 성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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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 현대글로비스 부당지원 사건과 닮은꼴로 귀추 주목

2001년 2월 현대기아차그룹에 물류를 전담하는 계열사가 세워졌다. 정몽구 명예회장과 정의선 회장 부자가 100% 출자한 회사는 그룹 계열사의 일감을 독식하면서 파죽지세로 성장했다. 그룹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25억원을 출자해 만든 회사는 19년 뒤 매출액 16조5199억원 규모로 탈바꿈했다. 현대글로비스의 성공스토리다. 이른바 일감 몰아주기다.

육성권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국장이 6월 24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삼성웰스토리에 사내 급식 몰아준 삼성그룹 부당지원행위 제재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육성권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국장이 6월 24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삼성웰스토리에 사내 급식 몰아준 삼성그룹 부당지원행위 제재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07년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같은 일감 몰아주기에 제동을 걸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현대제철 등 주요 계열사가 물류 일감을 몰아줬다고 보고 수백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현대차는 시정명령 및 과징금 부과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서울고등법원은 사업 물량 몰아주기는 부당지원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거래가격이 현저하게 부당하지 않더라도 막대한 물량을 몰아줄 경우에라도 부당지원으로 볼 수 있다고 인정했다. 현대차는 상고했지만, 대법원 판결이 나기 직전 돌연 취하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대법원 판례로 남게 되면 부담이 될 것이라 판단해 돌연 취하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물량 몰아주기로 성장한 두 회사

10여년 전 현대차의 이 같은 결정이 삼성에 도움이 될까. 최근 사내급식 일감을 전부 몰아주는 방식으로 웰스토리를 부당지원했다는 혐의를 받은 삼성그룹이 제재를 받았다. 부당지원 사건 중에 역대 최대 과징금인 2349억원이 부과됐다.

이번 사건은 2007년 글로비스에 대한 부당지원 건과 여러 면에서 비슷하다. 흔히 부당지원 사건에서는 총수일가가 소유한 회사와 내부거래를 통해 상당한 이득을 제공한 점을 입증하려면 거래가격이 현저하게 부당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이를 위해 시장에서 형성되는 정상가격과 실제 총수일가가 소유한 회사와의 거래의 차이를 밝혀야 한다. 모든 거래는 저마다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가격을 단순 비교하는 것만으로는 무의미해 번번이 정상가격 산정에 제동이 걸렸다. 특히 거래하는 상품이 서비스인 경우에는 정상가격 산정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 공정위가 서비스 관련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제재 실적이 드문 이유다.

반면 몰아준 일감의 물량 자체가 막대한 규모인 경우에는 정상가격을 산정할 필요가 없는 경우도 있다. 글로비스가 이 같은 경우에 속한다. 당시 글로비스의 매출액 대부분은 내부거래에서 발생했으며 계약 방식도 수의계약으로 이뤄졌다. 공정위는 웰스토리도 유사하다고 판단했다. 실제 2013년 4월부터 지난 6월 2일까지 8년 넘게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전기, 삼성SDI 등 4개사가 사내급식 물량 전부를 수의계약으로 웰스토리에 몰아줬다. 육성권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과거 물량 몰아주기 사건으로 글로비스를 지목하며 “글로비스 일감 몰아주기 케이스가 규모성 부당지원행위에서 판단기준을 어떻게 정립해야 하는지 크게 쟁점이 됐던 사건이다. 총수일가 지분율이 높은 물류회사 글로비스를 만들고 현대차 계열사들이 그룹 내 모든 사내 물량을 글로비스와 계약해 몰아준 사건으로 그 사건에서도 정상가격 산정은 없었다”고 말했다.

두 회사 모두 경영권 승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점도 비슷하다. 웰스토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에버랜드의 사업부 중 하나였다. 에버랜드 내에서 안정적으로 수익을 거둘 수 있는 곳은 웰스토리가 사실상 유일했기 때문에 그룹 차원에서 일감을 몰아줬다고 공정위는 판단했다. 특히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웰스토리의 기업가치 상승은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합병비율 산정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삼정회계법인 평가보고서를 보면 안정적인 일감을 바탕으로 웰스토리는 2조8000억원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받았다. 이는 삼성바이오로직스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규모다. 매년 수백억원 규모의 배당금액도 현금이 부족한 총수일가에게는 단비 같은 역할을 했다.

다만 글로비스 사건은 현대차의 갑작스러운 상고 취하로 대법원 판례로 남지 못했다. 공정거래 분야 전문가들은 만약 글로비스 건이 대법원 판례로 남았다면 향후 삼성과의 소송전에서 공정위가 혐의를 입증하는 데 더 쉬웠을 것으로 보고 있다.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망 벗어나

이들 회사는 물량 몰아주기로 성장한 것 말고 공통점이 또 있다. 두 회사는 2014년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 도입을 앞두고 각각 다른 방법으로 규제에서 벗어났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과 부친 정몽구 명예회장은 지분 매각을 통해 43.4%의 지분을 규제 기준보다 0.1% 부족한 29.9%까지 낮췄다.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대상은 총수일가 지분율이 30% 이상인 상장사(비상장사는 20%)이다.

웰스토리는 자회사를 설립하는 방식으로 감시망에서 벗어났다. 이재용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에버랜드의 사업부 중 하나인 웰스토리는 규제 도입을 앞두고 2013년 12월 급식·식자재 유통사업 부문을 물적 분할했다. ‘총수일가→삼성에버랜드’에서 ‘총수일가→삼성물산→삼성웰스토리’로 바뀐 것이다. 현행 총수일가 사익편취는 총수일가의 간접 지배에 대해서는 따로 규제하지 않는다.

규제에서 벗어나자 삼성전자 사내식당 전면 대외개방 움직임도 제동이 걸렸다. 당초 급식부문 대외개방 여부를 추진하려 했지만 규제에서 벗어나자 재검토 후, 삼성전자 4개 식당만 부분 개방하기로 했다. 이마저도 미래전략실의 개입으로 무산됐다. 공정위 관계자는 “규제에서 벗어나자 태도를 돌연 바꾼 것은 제재를 피했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공정위는 이번 사건에서 부당지원 행위 금지 조항을 적용했다. 부당지원은 사업자가 계열사의 이익을 몰아주기 위해 자금이나 자산 등을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는 것을 말한다. 총수일가로의 흘러간 부의 부당성만 입증하면 되는 ‘총수일가 사익편취’와 달리, 공정거래 질서를 훼손했는지 여부를 따로 밝혀야 하는 부담이 있다.

유사한 두 사건이지만 결정적인 차이도 있다. 공정위는 글로비스에 과징금만 부과한 것에 비해 웰스토리는 그룹 수뇌부인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을 고발했다. 공정위는 형사고발 여부를 결정할 때 지원 의도를 가장 먼저 고려한다. 이번 사건에서 공정위 사무처(검찰 격)는 그룹 승계를 위해 계열사를 동원해 웰스토리를 부당 지원했다는 점에서 지원 의도가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부당지원의 이익은 모두 총수일가에게 향하지만, 증거를 남기지 않기 때문에 이를 입증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사무처 입장에서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다만 공정위 전원회의(법원 격)는 웰스토리에 대한 부당지원과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간에 연결고리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공정위의 형사고발 카드는 법원에서 통할까. 아니면 반쪽짜리 제재에 그칠까. 공정위 제재 이후에도 웰스토리 사건을 계속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박상영 경제부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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