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최태원 회장에 과징금 8억원 부과…시정명령도 향후 금지명령에 그쳐
공정거래위원회가 2012년 계열사 시스템 관리·유지보수 일감을 몰아준 SK C&C에 최근 약 34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서비스업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공정위의 첫 번째 제재였다. 일감 몰아주기를 처벌하려면 ‘정상가격’ 산정이 관건이다. 시스템 관리·유지보수와 같은 서비스 거래는 이 과정이 매우 까다롭다. 같은 상품의 경우, 다른 거래에 비해 얼마나 유리한 조건에서 거래했는지 입증하기 쉽지만, 서비스는 세세한 계약 조건에 따라 가격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결국 공정위는 대법원에서 SK C&C에 패소했다. 이후 공정위의 서비스업 일감 몰아주기 제재는 전무했다.
약 10년이 흘렀다. 공정위가 이번에는 최 회장을 직접 겨냥했다. 회사의 사업기회를 가로챘다는 혐의였다. 이전까지 총수 개인이 사업기회를 제공받았다는 이유로 제재한 사례는 없었던 만큼 향후 공정위의 사건처리에 시금석이 될 만한 사건이었다. 최 회장에게 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향후 공정위가 적극적으로 그룹 총수의 사업기회 유용을 제재할지를 놓고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최 회장이 얻은 이익에 비해 과징금 규모가 적고 시정명령조차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8억원에 그친 과징금
이번 공정위 제재를 두고 비판이 쏟아진 대목은 과징금 규모였다. 공정위는 최 회장이 2017년 매입한 실트론의 주식 가치가 2020년까지 약 3년 만에 1967억원 상승했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은 8억원에 그쳤다. 사실 1967억원이라는 상승분도 보수적인 산정이었다. 2017년 대비 2020년의 실트론 1주당 가치 상승분 9988원에 최 회장이 보유한 1970만1000주를 곱해 나온 금액이다. 이는 상속·증여세법에서 일감 몰아주기 과세를 할 때 사용하는 계산 방식이다. 현행 상속·증여세법은 특수관계법인과의 매출액이 정상거래비율(대기업 30%, 중견기업 40%, 중소기업 50%)을 넘으면 수혜법인의 지배주주에게 증여세를 부과하고 있다.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사실상 부의 이전이 이뤄진다고 보고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이 같은 산정 방식은 실트론의 미래가치는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실트론은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 제품을 공급하는 국내 유일의 웨이퍼 생산업체로 지난해 SK하이닉스 등 국내 계열사와의 거래액(2734억4700만원)이 국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33.3%로 높았다. 삼성전자, 인텔, TSMC 등 글로벌 IT기업과도 거래하면서 2016년 1조2026억원이었던 자산 규모가 지난해 3조4751억원으로 3배가량 불어났다.
이같이 ‘알짜회사’인 실트론을 상장하면 주주한테 막대한 이익이 발생한다. 특히 상장 후 그룹 지주회사인 SK㈜와 합병을 하면 최 회장의 지배력이 더욱 공고해지는 효과도 누릴 수 있다. 최 회장은 SK㈜ 주식의 18.4%를, 실트론은 총수익스와프(TRS) 방식을 통해 29.4%의 지분을 각각 갖고 있다. 실트론이 다른 계열사와 합병을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SK㈜ 가치 상승에 영향을 미친다.
공정위는 과징금을 결정할 때 이러한 미래가치는커녕 보수적인 상속·증여세법상 가치 산정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매출액을 확인할 수 있는 기업에 한해 사업기회를 가로챘다는 이유로 과징금을 매길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서다. 매출액이 없는 개인에게는 정액 과징금 20억원 내에서만 부과할 수 있다. 공정위는 뒤늦게 제도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미래가치를 기대하고 일감을 몰아준 총수일가에게 얼마나 억지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면죄부에 그친 시정명령
공정위의 시정명령이 향후 금지명령에 그쳤다는 점도 이번 제재를 ‘솜방망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시정조치 운영지침’을 보면 공정위는 시정조치로 위반행위의 중지명령, 주식처분명령, 계약조항 삭제명령, 시정명령 사실의 공표 등을 부과할 수 있다. 사업기회 제공의 법 위반 규모를 따지기 어렵다면 주식을 처분하도록 명령하는 방법도 가능했던 상황이다. 그럼에도 공정위는 SK㈜와 최 회장에게 장래에 이와 유사한 사업기회를 제공하거나 사업기회 제공을 지시 또는 관여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수준의 시정조치 명령만 내렸다. 경제개혁연대는 “현재의 불법을 사실상 눈감아 주겠다는 것이나 다름없고, 결국 공정위 스스로가 불법을 바로잡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포기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공정위가 주식처분명령에 소극적인 만큼 유일한 대안은 주주대표 소송밖에 없다. 감사나 감사위원회가 회사를 대표해 소를 제기할 수 있지만, 총수의 입김이 절대적인 상황에서 이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경제개혁연대도 “지분 8.16%를 보유한 국민연금을 포함해 SK㈜의 지분을 보유한 주주들은 최태원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해 SK㈜가 사업기회를 (실트론에) 몰아줌으로써 발생한 손해가 모두 회사에 귀속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주주대표소송은 상법에 기댄 조치다. 국내는 주주대표 소송이 활발하지도 않다. 2011년 상법에 회사기회 유용을 금지하는 조항을 도입할 당시 소송 남발의 우려도 있었지만, 이후 10년이 넘도록 소송은 단 1건에 그쳤다. 주주를 통한 견제가 바람직하지만, 소수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지 않는 국내 여건상 공정거래법에 따른 실효성 있는 시정명령은 반드시 필요하다. 총수 고발 문턱이 높아진 점도 고려해야 한다. 총수를 고발하려면 직접 지시를 했다는 증거가 필요한데 일감 몰아주기 유형이 다양해지고, 또 은밀하게 진행되면서 총수의 직접 지시 여부를 파악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최근 제재 사례를 봐도 과징금과 시정명령이 대부분이다. 고발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기업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최 회장은 증권사와 총수익스와프(TRS) 방식을 맺어 실트론 주식을 간접적으로 사들였다. 2022년 8월의 계약 종료 이전에 최 회장이 실트론의 주식을 팔라고 SK㈜에 청구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보인다. 당장, SK측은 “SK㈜가 경영판단에 따라 포기한 잔여지분을 최 회장이 취득한 것이라 사업기회 제공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잔여지분도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인수했는데 공정위가 납득하기 어려운 결론을 내렸다”면서 “의결서를 받아 본 뒤 필요한 조치를 강구할 방침이어서 현 단계에서 ‘사업기회 제공’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실트론의 시장가치는 반도체 호황에 따른 일시적 현상일 뿐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도 강조했다. 공정위가 앞으로도 회사의 사업기회를 가로챈 총수를 계속 제재해나갈 것인가. 공정위의 의지가 시험대에 섰다.
<박상영 산업부 기자 s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