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서 펼쳐지는 피아노 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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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감독 크리스 크라우스가 연출한 영화 <피어 미뉴텐>(Vier Minuten)이 발표된 것은 2006년이다. 여죄수 감옥에서 피아노를 가르치는 여든 살 음악선생 트라우드 크뤼거가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제니 폰뢰벤을 만나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실존주의적 시각을 반영하고 있는 영화는 파괴적인 천재 피아니스트를 연기한 한나 헤르츠스프룽과 비밀을 간직한 노년의 피아노 선생 모니카 블라이브트로이의 연기로 열정적으로 포장돼 그해 독일과 유럽 지역의 영화제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정동극장 제공

정동극장 제공

뮤지컬 <포미니츠>는 바로 그 영화를 원작으로 만든 한국산 창작 뮤지컬이다. 배우로도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양준모가 예술감독을 맡았는데, 영화를 처음 보는 순간부터 작품의 무대화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는 후문이다. 아무래도 크고 작은 뮤지컬 작품에서의 풍부한 무대 경험이 작품의 선택과 방향성에 대해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연출은 <여신님이 보고 계셔>로 유명한 박소영이, 극작은 <검은 사제들>의 강남이 참여했다.

화려한 캐스팅은 마니아들의 입맛을 자극한다. 크뤼거 역의 김선경과 김선영이 특유의 절제되고 과하지 않은 연기로 무대의 완급을 노련하게 담아내는 와중에 제니 역의 김환희와 김수하가 뿜어내는 날것 그대로의 열정과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에너지가 무대의 펄떡거리는 생명력을 보여준다. 제목에서도 이미 눈치챌 수 있는 것처럼 마지막 4분의 연주는 왜 영화가 굳이 무대로 옮겨와야 했는지에 대한 제작진의 의도를 한치의 아쉬움도 없이 고스란히 드러낸다. 숨 막힐 듯 이어지는 피아노 독주의 압도감은 스승을 향해 한껏 과장된 제스처로 감사함을 전하는 제니의 인사와 술이라곤 한방울도 입에 대지 않던 크뤼거가 술병째 벌컥 들이키며 내는 극도의 찬사와 어우러지며 대미를 장식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객석 관객들이 소리없이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내는 풍경은 곡절 많은 창작 뮤지컬의 무대화를 향한 실험정신을 반영한 것 같아 벅차다. 코로나19도, 팬데믹도 무대인들의 예술정신마저 갉아먹을 수 없다는 무언의 항변 같아 진한 뒷맛을 곱씹게 만든다.

무대만의 환상을 구현한 피아니스트 조재철과 오은철의 등장은 꽤 영리한 선택이다. 때로는 대화하듯 또 때로는 협주하듯 무대 속 배우와 어우러지며 전개되는 피아노 선율은 관객들이 기대하는 이 작품의 수준을 적절한 수위에서 타협하고 수용하게 만든다. 특히 어설픈 녹음과 과장된 연기가 아니라는 점은 그야말로 큰 위안을 건넨다.

작품을 기획한 정동극장의 변신과 실험에는 기립박수를 보낸다. 예술은 끊임없는 도전과 변화에서 그 생명력을 잉태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만든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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