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리들리 작, 신유청 연출의 <빈센트 리버>에는 빈센트 리버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빈센트는 몇달 전, 동성애자들이 비밀리에 만난다는 화장실에서 참혹하게 살해된 채 발견된 남자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이미 죽어버린 빈센트 대신, 무대 위에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를 사랑했던 두 사람이 등장해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미혼모로 빈센트를 낳아 기른 그의 엄마 아니타와 빈센트를 깊이 사랑했던 소년 데이비. 극은 서로 전혀 몰랐던 두 사람이 어색하게 만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달 컴퍼니 제공
이제 막 낯선 집으로 이사를 온 아니타는 빈센트가 죽은 이후 어딜 가든 자신의 주변을 맴도는 소년 데이비를 집으로 부른다. 데이비는 자신이 빈센트의 시신을 처음 발견한 목격자라고 주장하지만, 단순한 신고자라고 보기에는 수상할 정도로 아니타의 곁을 얼쩡거리며 빈센트의 죽음에 집착한다. 아니타 역시 단번에 그가 아들과 모종의 관계에 있었음을 알아차린다. 하지만 이제 막 처음 만난 두 사람의 대화는 다정하고 애틋하기보다는 위태롭고 어딘지 모르게 날이 서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빈센트의 죽음 이후, 두 사람은 한 번도 마음 편히 잠을 청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타는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몰랐던 아들의 성적 지향을 알게 됐다. 보수적인 마을 분위기에 빈센트는 무고한 피해자가 아니라 ‘혐오스러운’ 동성애자로 낙인찍혀 오히려 비난을 받게 되고, 아니타는 아들의 죽음을 애도할 틈도 없이 낯선 곳으로 떠나와야 했다. 데이비 역시 겉으로 내색할 수 없는 상실감과 죄책감으로 고통받으며 불면의 밤을 보내왔다. 이런 최악의 상황 속에 만난 두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빈센트에 대한 기억을 펼쳐놓는다. 아니타는 빈센트의 어린 시절과 성격을, 데이비는 빈센트와 어떻게 만나 좋아하게 됐으며 빈센트가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 털어놓는다.
그날 밤 사건은 아니타의 예상보다 훨씬 잔인하고 참혹하지만, 이 작품의 초점은 단순히 그날 밤의 진실을 밝히는 데 있지 않다. 작품의 시선은 빈센트를 누가, 왜 죽였는지 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두 사람이 어떻게 그를 기억하면서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는가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빈센트가 죽은 지 18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아니타는 아들의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고, 큰 소리로 울어본 적조차 없다. 불면으로 시달리며 신경안정제를 먹는 데이비 역시 마찬가지다. 충분히 애도하지 못한 슬픔은 그 자체로 더 큰 슬픔과 고통을 낳는다.
이렇듯 <빈센트 리버>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두 사람이 서로를 통해 그 부재를 마주하고 감각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죽은 이를 잊지 않고 온전히 기억하는 것이 진정한 애도의 방식임을 생각할 때, 이들의 대화, 나아가 이 연극은 빈센트를 기리고 애도하는 하나의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7월 11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블랙.
<김주연 연극평론가>